두 분, 어떻게 만났어요?

오프라인과 온라인, 관계의 벽이 무너지다

by 자유로운 풀풀

"그런데 두 사람 어떻게 만난 거야?"


몇 년 전, 남자 친구(지금은 남편)와의 결혼 소식을 전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물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남편과 나는 자차 3시간 30분의 거리에 떨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통점도 없었다. 직업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고, 대학 동문도 아니었다. 제아무리 연결고리를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호기심 가득 한 사람들에게 대답했다.


"아, 인터넷 소개로요."


사람들의 황당하다는 표정.

우리가 결혼했던 2014년 정도에는 소개팅 어플이 한창 활개를 띠었다. 매스컴에서는 '소개팅 어플을 통해 이루어지는 조건만남'을 떠들어댔다. 그런 상황에서 '인터넷 소개'로 만났다니. 반듯해 보였던(?) 나와 남편이 인터넷으로 만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 "진짜?"라고 되묻기도 했다.


남편과 나는 인터넷으로 만났다. 더 정확하게는, 동종 직업의 사람들이 모인 카페 회원이었던 지인이 남편과 나를 소개해주었다.


"풀풀아, 지난번에 네 소개글을 그 카페에 올렸거든. 근데 네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있더라고! 내가 연락처 줄테니까 한 번 만나볼래?"


참 신기한 건, 양 쪽 주선자도 서로를 모르는 상태였다는 거다. (물론 지금도 모른다.) 주선자도, 당사자도 일면식도 없는 상황에서 남편과 나는 전화번호를 주고받았고, 카톡으로 첫 만남을 약속했다. 그리고 8개월 뒤, 우린 결혼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어떻게 알게 된 거야?"


핸드폰 대화를 들여다보며 낄낄대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아, 인터넷 카페에서. 지금은 블로그로."


나의 짤막한 대답에 남편의 눈이 동그래졌다. 7년 전, 나의 결혼 소식을 듣던 사람들의 것과 흡사하다. 연락할 친구가 없다며 친정부모님과 남편만을 의지했던 1년 전과 지금의 나는 다르다. 거실에서 답답한 속을 쓸어내리다가도, '띵동' 울리는 알람에 폰을 열면 언제든 친구가 있다. 어떤 말이든 툭툭 털고, 힘을 주고받을 수 있는 따스한 사람들이다.


내 주변의 관계들은 서서히 변했다.


7년 전, 낯선 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쌍둥이 육아로 더욱 고립됐다. 친했던 친구들은 서서히 멀어졌고, 그나마 유지되는 인연도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과 육아휴직 중인 나는 시간을 맞추기도 애매했다. 만날 수 있는 여건도 안됐지만, 더 소원해졌던 이유는 따로 있다. 결혼 전에는 직장생활, 연애, 쇼핑 등 친구들과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편하게 나누었다. 결혼 후 각자 상황이 달라지니, 돈과 관련된 이야기는 서로 조심하게 되고, 임신 및 육아 또한 함부로 이야기 나누기가 어려워졌다. 돈, 자식 문제는 무척 예민하니까. 연예인 이야기나 쇼핑 또한 관심이 멀어지니 친구들과의 단톡에서 할 말이 없어졌다. 관심사가 달라지니 소중하다 여겼던 인연들도 소원해졌다.


무척 외로웠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관심 가는 카페 몇 군데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눈팅만 하던 내가, 댓글을 쓰고. 댓글만 쓰던 내가, 속 이야기를 적었다. '좋아요'와 '댓글'로 소통하던 사이가 발전하여 오프라인으로 만나게 되었고, 우린 절친이 되었다. 서로 사는 곳이 달라 줌으로만 이따금 얼굴을 보지만, 매일 나누는 단톡 방과 블로그에서 우린 누구보다 찐한 우정을 나눈다.




"오늘 글 썼어요. 용기 내서 발행 꾹~!"


'띵동' 알림이 울렸다. 어플을 켜서 확인해본다. '좋아요'와 '댓글'이 달렸다.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요즘 나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아니, 새로운 모임이 더 정확하겠다. 한 모임은 포스팅을 쓰는 곳이고, 다른 한 모임은 글쓰기를 하는 곳이다. 인터넷 세상에 발을 들여놓자, 나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올라왔다. 경험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졌고, 좀 더 잘해보고 싶어 강의를 듣고 피드백을 받는 모임에 참여했다. 만족도는? 별 다섯 개! 두 모임에 참석하며 배우기도 배웠지만, 더 좋았던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인간관계의 폭이 훨씬 더 넓어졌다는 것이다. 나아가선, 삶을 바라보는 시야 또한 더욱 넓어졌다.


클릭하여 보게 되는 글은 쓴 사람의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글쓴이의 여러 모습들 중 한 모습이 표현될 뿐이다. 그마저도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힘의 충동들로 동일성을 상실'한다. 비슷할 수는 있지만, 성장하는 한 사람의 일부분만이 나타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단톡 방에 머물면, 글을 쓰는 그들의 이면도 생각하게 된다. 한 사람을 다각도에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이 쌓이다 보니, 내가 가진 편견의 시선이 얼마나 두터웠는지를 깨달았다. 이전에 나라면 색안경을 끼고 대했을 사람들조차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댓글에 '좋아요~' 한마디만 남기고 가는 사람들에게도 애정이 생긴다. "저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활동하는구나.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축복까지 하게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만남과 이동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색다른 만남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소수의 유저들만 사용하던 온라인 모임들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확대되고, 다양해졌다.


온라인 모임은 많은 장점을 지닌다. 공간의 제약이 없고, 시간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녹화본 제공 등을 통해 시간적 제약도 무너뜨릴 수 있다. 아쉬움은 단톡 방이나 카페, 블로그 등으로 소통하며 날려버린다. '쉴 틈 없이 울리는 알람'이란 단점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선 '끈끈한 유대감'이 현실을 견뎌낼 힘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데는 제한 또한 없다.

오프라인, 온라인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각각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사람들은 자신을 발전시키고 세워간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중심, 거기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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