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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Jun 22. 2022

여섯 살 아이의 첫 공개 수업

다섯 살에 기관 생활을 시작한 두 딸은 코로나 상황으로 여섯 살이 되어서 학부모 공개수업을 했다.

일주일 전부터 '엄마, 아빠를 유치원에 초대할 거야.'라며 들떴던 아이들.

채소가게에서 판매될 채소를 만들며 연신 자랑을 늘어놓던 아이들.

아이들의 첫 공개수업이 어제 실시되었다.


공개수업 전


은이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눈을 떴다.

"엄마, 오늘 유치원 올 거지?"

눈을 비비며 품에 안겨드는 아이를 안고 말했다.

"그럼, 오늘 은이가 엄마 초대해 줬잖아."

연이도 10분 일찍 거실로 나왔다.

"엄마, 오늘 언제 와?"

아이 손에 물컵을 쥐어주며 말했다.

"오후 네 시에 갈게. 수업 끝나고 선생님들이랑 이야기 나누고 같이 집으로 돌아올 거야."

아이들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누가 와도 괜찮은데 딱 한 명만 올 수 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설렌 아이들과 달리 나의 마음은 불안하고 떨리기만 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잘 생활할 것이라 믿었지만, 나의 부족함이 만천하에 공개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 공개수업 싫다. 흑.


드디어 공개수업


공개 수업이 시작됐다.

5분 전, 어린이집 식당에 모여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교실로 이동했다.

당근팀과 가지팀으로 나뉘어, 분할 수업을 실시했다.

난 가지 팀. 두 아이 모두 가지팀이다.


교실로 들어갔더니 반 아이들이 채소 가게 앞에 서서 인사를 한다.

잽싸게 두 아이를 찾았다. 

은이는 계산대 앞, 연이는 당근, 블루베리 바구니 앞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다.

은이 앞으로 가니 장바구니를 들고 물건을 사 오면 계산을 해 준다고 속삭이듯 말한다.

손을 마주 잡고, '보고 싶었어.'라고 속삭이니 온몸을 베베꼬며 '나도 보고 싶었어.' 애교를 부린다.

연이 앞으로 갔더니 엄마인 듯 손님인 듯 헷갈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당근 얼마예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던 연이가 말했다.

"일천 원이에요."

"당근 하나, 블루베리 하나 주세요."

당근과 블루베리를 꺼내 장바구니에 담아주는 연이의 손을 잡았다.

'우리 연이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속닥거리니 제법 의젓한 표정으로 미소 짓는다.

"엄마, 저기 다른 곳에서 물건 사서 계산하면 돼."

와우, 엄마는 애들이 예뻐서 장사고 뭐고 안중에도 없는데 두 딸이 엄마에게 알려준다.

다른 채소 매장 앞에서 물건을 고르고, 은이 앞으로 갔다.

"계산해 주세요."

아뿔싸. 은이 옆에 다른 친구도 함께 있었는데 적극적인 그 친구가 나의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을 잽싸게 가져갔다.

은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장바구니를 슬쩍 당겨보지만, 친구는 '내가 할 거야.'라고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한다.

장바구니에 담긴 카드 모형을 잽싸게 꺼내 은이에게 건넸다.

"은이 선생님, 계산해 주세요."

은이의 표정이 조금 풀린다.

장을 한 번 보기는 아쉬워 연이의 당근, 블루베리 가게로 가서 몇 가지를 더 산 뒤 은이의 계산대로 갔다.

엄마가 두 번, 세 번 와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자 이제야 만족한 듯한 은이.

연이는 '이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엄마에게 알려줘야지.'란 언니다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산 물건들을 모형 캠핑장으로 가져와서 요리를 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생님들의 손길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다.

다음, 음악 수업 전 시간이 조금 남아 책 한 권을 함께 읽었다.

연이는 선생님의 질문에 번쩍번쩍 손을 들었고, 은이는 내 품 안에 파고들며 이야기를 들었다.

실감 나는 선생님의 구연동화에 나도 푹 빠져들었다가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음악 수업 시간.


오르프슐레 수업이 진행되었다.

외부강사 선생님이 진행해 주시는 오르프 수업은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코다 손 기호를 이용하여 인사를 하고, 리듬감 있는 말과 다양한 타악기로 아이들의 음악  감수성을 일깨운다.

고운 선생님의 목소리와 친절한 미소에 아이들이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아이들이 피아노에 급 관심을 보이기에 계이름 스티커를 구매해 두었는데, 이게 다 어린이집 활동과 연계되어 일어난 시너지구나 싶으니 마음이 뿌듯했다.

두 아이는 선생님 옆으로 둥글게 앉아, 인사 노래, 악기 연주 활동 등에 즐겁게 참여했다.

이런 외부 수업에 대해 '필요가 있을까'하는 회의적인 마음이 한편에 있었는데, 직접 참여해 보니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전문가의 힘은 위대하다. 하하.


마지막 수업은 대집단 활동.

모든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함께 모여 채소 및 과일 음식을 소개하는 활동이다.

수줍음 많은 은이가 제발 걸리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빌었다.

조촐한 수박주스 사진도 낯부끄러웠다.

아, 요리 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올라오는 시간.

채소 요리 소개가 끝나고, 과일 요리 소개가 들어갔다.

토마토 주스였던 연이는 발표 뽑기에 걸리지 않았다. 다행이다.

은이 순서만 잘 넘기면 된다.

"은이."

앗, 선생님이 은이의 이름을 불렀다. 

나가기도 전에 온몸이 베베꼬이기 시작하는 은이를 데리고 선생님 앞으로 나갔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아흑.

선생님은 친절한 목소리로 질문을 해 주시고, 은이는 내 몸과 하나가 되다 못해 파고들고, 난 은이의 귀에 대고 답을 전했다.

듣다 못한 한 아이가 '수박을 믹서기에 갈아요!'라며 대신 답을 해주기도 했다.

1시간보다 더 긴 1분의 시간이 흐르고, 자리로 돌아오니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공개수업 후 간담회


아이들에게 간식 먹고 만나자며 손을 흔들고,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은 옆 교실에 다 함께 모였다.

어린이집에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과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이었다.

졸린 눈을 부릅뜨고 간담회 자리를 지켰다.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

공개적으로 질문하기엔 내 아이 디스 같아 하지 못했다.

간담회가 종료되고 정리하는 틈에 선생님께 살짝 다가가 여쭈었다.

"선생님, 은이 말이에요. 수줍음이 너무 많아서..."

"네, 어머님.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오셔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평소에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목소리가 좀 작긴 하지만 발표도 잘해요."

"네, 감사해요. 그런데 혹시 공개적으로 말 못 하는 그런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아, 안 그래도 다른 선생님께 전해 듣고 제가 손사래를 쳤잖아요. 절대 아니에요 어머님. 은이는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아요."

환한 선생님의 미소에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교실을 나왔다.

아, 어린이집 선생님들 월급을 세 배는 올려드리고 싶다.


공개수업이 끝나고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폴짝거리며 교실 밖을 나왔다.

엄마도, 친구들도 다 함께 하원하니 신이 난 아이들.

저녁 7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집에 갈 생각이 없다.

눈가에 피로함이 조롱조롱 매달렸는데도 피로한 줄 모른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양치질을 하려는데 은이가 눈에 눈물이 맺히며 말한다.

"엄마, 그런데 나는 오늘 엄마들이 다 쳐다보는 게 너무 싫었어. 너무 부끄러웠어."

아, 아이는 대집단 활동 시간에 수박주스를 발표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눈물을 보니 나도 덩달아 울컥했다.

'요 어린것이 이렇게 부끄러웠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아, 우리 은이 많이 부끄러웠어?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

힝힝 거리며 은이가 입을 삐죽거린다.

"이렇게 부끄럽고 싫었는데도, 나가서 끝까지 발표했네? 우리 은이 진짜 용감하다. 정말 멋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발표를 더 하지 못해 엉덩이를 들썩였다.

나의 마음은 어느새 그 아이들에게 부러움을 던지고 있었다.

그 사이, 수줍음 많은 내 아이는 부끄러움을 딛고 끝까지 발표를 해 냈다.

부끄러웠지만, 해야 하는 것이니 울지 않고 끝까지 해 낸 아이가 대견했다.

은이는 혼자만의 싸움을 이겼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했다.

은이가 먹고 싶다던 배즙을 갈았다.

쓱싹쓱싹 갈리는 배의 속살을 바라봤다.


"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린 시절 나는 무엇이든 잘한다고 칭찬받는 아이였다.

뭐만 하면 '역시 넌 잘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속마음이 무엇이었는지 따위는 누구도 묻지 않았다.

나가서 발표를 잘하니까, 시키는 대로 잘하니까 '그럼 됐지 뭐.'라는 시선을 받았다.

부모님도 그랬다.

잘 해내는 나를 보며 아빠는 말했다.

"그래, 너니까 해내지. 나는 못한다."

잘 해내는 나를 보며 엄마는 말했다.

"그래. 그런데 이건 조금 고치면 더 좋을 것 같아."


원래 잘하거나, 더 노력하거나.

둘 중 하나의 생각 외에는 받아들일 틈이 없었다.

열심히 달리고 걷던 나는 쉼과 고꾸라짐을 견디지 못했다.

그럴 힘이 없었다.


아이들의 공개수업을 떠올려 본다.

연이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유치원 생활을 엄마에게 알려주어 뿌듯했다.

은이는 엄마와 함께 한 유치원 생활이 즐거웠다.


연이는 나를 의식하지 않고, 평소 하던 대로 발표하고 악기를 연주했다. 엄마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던 대로 참여했을 뿐이다.

은이는 주변이 너무 의식되었다. 발표만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하필 걸려버렸다. 엄마들의 시선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지만, 그 시간을 견뎠다. 힘들었던 마음을 엄마에게도 털어놓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나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마음껏 자랑하고 싶었고,

엄마와 아빠에게 힘든 것들도 다 이야기하고 싶었다.

수줍음 많고, 하고 싶은 것 많고, 해보고 싶지만 때론 용기가 모자라 망설이는 복잡한 마음들을 다 이야기하고 싶었다.

실수하고, 넘어지고, 버벅거리지만 엉터리라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쁘다는 말을 원했다.


엄마로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생각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어떤 말과 행동을 바라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 여기,

아이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싶다.

지금 여기,

아이와 나의 좋음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싶다.





또 다른 이야기는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에서 확인해보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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