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리 가! 엄마는 내 맘도 모르고! 엄마, 미워!"
아이와의 잠자리 전쟁이 시작됐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제 누워서 책 읽자.'는 메시지만 들으면 온갖 말을 쏟아냈다.
'불을 끌 거다, 물을 달라, 이건 왜 이렇냐'에서 시작한 투정은 쌍둥이 자매의 말 따라 하기로 번졌다.
그냥 투정으로 끝나면 될 것을, 내가 꿈쩍도 하지 않으니 곁에 있는 자매를 건드리는 거다.
한 명의 투정이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텐데, 둘이서 동시에 짜증을 내니 들린 말을 흘릴 수가 없었다.
양 쪽 귀에 박히는 아이들의 놀림의 말과 징징거림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언성이 높아졌다.
고함을 질렀다가, 애를 울렸다가, 나도 울다가, 부둥켜안았다가 난리 블루스를 치기를 며칠.
어제, 아이들 하원을 하며 담임선생님과 이런저런 말들을 나누었다. '대체 왜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따끔하게 혼을 좀 내달라.'는 나의 말에 선생님을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 시기 여자아이들 마음을 갈대니까요.
띠용.
우리 애만 그런 게 아니라니, 이게 당연한 것이라니!
선생님께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를 드렸다.
그날 저녁,
아이의 짜증이 다시 시작됐다.
책 안 읽을 거다, 책 읽을 거다, 불 끌 거다, 불 켤 거다 등등 온갖 변덕스러운 말들을 초단위로 내뱉었다.
'그래, 그래.'로 응수하며 돌부처가 된 나를 보던 아이는 '엄마를 때릴 거야!'라며 날 자극했다.
고개를 휙 돌려 아이를 봤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혼재된 아이의 눈빛.
"때리는 건 안돼."
단호하게 응수하고 시계를 보았다.
저녁 9시 35분.
10시까지 25분을 견뎌보기로 했다.
아이와의 대치상황에선 주관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객관적으로 바꿔 읽어낸다.
1분이 1시간 같은 육아 전시 상황에선 1분을 1분으로 바라보는 시선 전환이 필요하다.
'드라마도 한 시간 집중하는데, 이깟 25분쯤이야.'란 마음으로 버티기 작전에 돌입했다.
아이는 온갖 말을 쏟아냈다.
엄마 미워, 엄마 싫어. 엄마 때릴 거야, 엄마 나가.
그러던 아이가 갑자기 등을 돌리고 누워 잠잠해졌다.
천정을 보고 망부석처럼 누워있다가 눈알을 슬쩍 굴려 시계를 보았다.
3분이 경과했다.
30분 같던 시간이 고작 3분이라니.
괜찮다, 할만했다.
아이는 다시 몸을 휙 돌려 나에게 몸을 기댔다.
엄마 미워, 엄마 싫어. 난 엄마랑 안 살 거야. 난 아빠랑 은이랑 살 거야.
가만히 듣고 있으니, 어젯밤 내가 정신줄을 놓고 쏟아낸 말을 아이가 그대로 뱉어내고 있었다.
자기가 듣고 속상했던 말들을 다 토해내는 중이었다.
아이의 말을 진심이 아니라 속상함으로 읽고 나니, 아이의 말들이 귀엽게까지 여겨졌다.
'앞으로 말조심해야지.' 하는 반성과 함께.
아이는 다시 등을 휙 돌리더니 잠잠해졌다.
슬쩍 시계를 보니 3분이 지났다.
아이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큰 대꾸 하지 않으니 10분 이상이었던 토해냄이 3분으로 훅 줄었다.
아이의 투정이 3분에서 2분으로 줄어들고, 1분으로 줄어들 즈음.
아이가 말했다.
"난 엄마가 좋아. 엄마가 제일 좋아."
응? 이게 뭐지?
당혹감을 들키면 다시 시작될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응수했다.
"응, 엄마도. 엄마도 연이가 제일 좋아."
아이가 곧 잠들었다.
조금 전의 일들을 생각했다.
'이 시기 여자 친구들 마음은 갈대'라던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순간, 머릿속에 섬광처럼 한 단어가 떠올랐다.
양가감정!
작년, 한참 심리상담책들에 빠져있을 때 즈음 자주 접했던 단어다.
우리는 한 대상에 대해 상반되는 감정을 종종 경험한다.
좋은데 싫고, 사랑하는데 밉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감정을 겪을 수 있는데, 부모들은 아이를 향한 상반되는 감정을 수용하기 어려워한다.
부모라면 아이를 사랑함이 마땅하고, 사랑하면 행복하고 즐거움이 당연하다 여기고, 양육에서 오는 힘듦, 피곤함, 지침 등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분열된 감정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부모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이는 어린아이에게도 해당된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 엄마가 너무 좋은데 밉기도 하고, 아빠를 너무 사랑하지만 무섭기도 했을 것이다. 늘 좋기만 하고, 늘 무섭기만 하지는 않았다.
이런 감정들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터부시 하는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은 부모에 대해 '좋은 감정'만을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감정은 무시하며 속으로 꾹 눌러둔다.
눌러둔 감정들로 인한 죄책감은 자신을 향한 화살로 되돌리며, '난 나쁜 아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며칠간 (사실은 일주일도 넘은 것 같다.) 잠들기 전 30분 동안 감정 토해냄을 하는 아이의 마음도 이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피로한데 졸리지는 않고, 눕기 싫은데 앉기는 싫고, 뭔가 불만족스러운데 딱히 이유를 찾을 수 없던 아이.
그러니, 엄마가 좋은데 엄마가 밉고. 엄마를 사랑하는데 엄마에게 서운했던 일들이 떠오르며 너무나도 미워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건,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가 건강하게 정서를 발달시키고 있다는 의미였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과정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생각했다.
부모로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조건적인 사랑!
육아서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용어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던 그와 상관없이 사랑을 실천하라.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1. 너의 어떤 감정이든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한다.
2. 아이의 감정에 어른으로서 휘둘리지 않는다.
3. 해서는 안 될 행동은 제지한다. (아이가 가질 죄책감을 막아준다.)
4. 아이의 발달을 이해하고, 부모로서 성장하려는 노력을 지속한다.
정리가 되니 머릿속에 심플해졌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아이의 변덕스러움에 어찌 1도 흔들리지 않고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완벽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괜찮다.
아이는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배워서 실천' 엄마를 보고
스스로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배워서 실천'할 테니.
잘 자라는 아이를 믿는다.
잘 자라날 나를 믿는다.
또 다른 이야기는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에서 확인해 보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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