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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Oct 09. 2022

혹시 나도, 가스라이터?

밀리의 서재에서 책을 검색하다가, [가스 라이팅]이란 책을 발견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심장이 뛰었다.

이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은데, 읽고 나면 뒷감당이 되지 않을 듯 한 느낌.

바로 읽을 용기는 나지 않아, 책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내 서재'에 담아두었다.


'가스 라이팅'이란 다섯 글자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난 누군가에 의해 가스 라이팅 당했다.

키워준 부모님에 의해, 가르쳐 준 선생님에 의해, 날 위한다는 친구에 의해, 날 좋아한다는 이성에 의해 조종당했다.

미디어에 소비되는 이미지에 의해, 책 속의 권위자에 의해 조종당했다.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모든 행동은 가스 라이팅의 흔적이었다.


자신에게 질문했다.

내가 쓰고 있는 글, 운영하는 독서모임을 통해 누군가를 가스 라이팅 하고 있진 않을까?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학급의 아이들을 가스 라이팅 하고 있진 않을까?

'너를 위해'라는 이유로 남편과 자녀를 가스 라이팅 하고 있진 않을까?


모든 사회성의 출발은 가족 관계다.

좋든 싫든 가족은 사회 구성의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가족 안에서 나는 장녀이자 영웅이었다.

어떤 이는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넌 소녀가장이야.'라고 했다.

부모의 의지나 행동과 상관없이 나의 내면에서 규정한 나의 모습이다.

난 원칙이 확고하고, '옳다'고 여기는 것 또한 확실했다.

그렇기에 반대의 힘, 일탈의 욕구와 불합리하다 여겨지는 권위에 불복종하는 에너지 또한 높다.

그렇지만, 부모를 잘 돌보아야 한다는 무의식의 욕구가 반영되어 갑자기 상황과 타협하거나 도망치기까지 한다.

이런 내가 교사가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가스 라이팅 당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가스 라이팅 하지 않기 위해
어떤 생각을 중심에 두어야 할까?


교사, 엄마라는 페르소나를 가진 사람으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간단하게 두 가지 답이 떠올랐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말할 때는 상대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둘 것.

상대가 어떤 대답을 하든 '가치'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존중할 것.


이를 위해 나의 불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또한 내가 인지하는 세상의 경계를 깨기 위해 배우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가 아닌 타인이 중심이 되어 살아가는 한, 우린 모두 가스 라이팅 당하거나, 가스 라이팅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를 향한 진짜 존중', '상대를 향한 진짜 존중'을 떠올리며 개인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설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당장 나부터,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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