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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Dec 09. 2022

아이들의 서열

아이들의 잔인함과 순수함

어떤 면에서 아이들은 잔인하다.

무리 지은 사람들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자기 위와 아래를 정확하게 구분한다.

교실과 운동장, 학원에서의 권력관계는 아이들 사이에서 미묘하게 자리 잡은

계층 사다리다.

물론 이 사다리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유효할지는 미지수지만

유년기에 경험한 사다리 앞에서의 무력한 느낌은 무의식에 자리 잡아

한 인간의 정서를 괴롭게 만든다.




우리 반 아이들이 축구를 하다가 고학년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한 적이 있다.

운동장 옆에 서서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난 고함을 지르며 아이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만! 그만하라고! 이리 와!"


한 남자아이가 넘어진 다른 아이의 등을 발로 때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한데 모아 무슨 일인지 물어보자

맞은 아이는 자신이 왜 맞은지도 모르고

때린 아이는 '프리킥이 아닌데 프리킥이라고 했다'는 이유를 말했다.

상황을 수습하고,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교실로 돌아왔다.


이 일은 며칠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어린이집에서 은밀한 폭력을 겪었던 딸이 말했다.

(물론 아이는 그게 폭력 인지도 모른다)

 

"엄마, 그런데 00이랑 **이가 보석을 찾아야만 한데. 지난번에는 **이가 대장이었는데, 그다음은 00이었어."


이런저런 말을 조합하고, 지난 나의 관찰을 종합해보니.

네 명의 친구가 친한데,

한 명이 대장놀이를 하자고 했고,

대장은 **이, 00이, 연이, 은이의 순서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한다.

대장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누구가 하자는 대로 하기"라고 여섯 살 아이들의 말로 표현했다.

**이, 00 이가 대장을 하였고, 우리 집 두 딸은 아직 대장을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했다.

언제까지 대장 기간이 정해져 있는지도 없고,

어떤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여섯 살 아이들의 잔인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아이들에게는 '친구랑 재밌으려고 노는 건데 기분 나쁜 대장놀이는 안 해야 한다'며 말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맞다.

하지만 아이들은 잔인하다.


어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들이 자연스럽게 행하는 폭력을 폭력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재밌어서 한다는데 있다.


어른이 되어 전두엽이 발달하고, 판단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겨서

부정적 동기든 긍정적 동기든 폭력을 하려는 충동을 조절하는 힘이 생기면

쉬는 시간에 일어나는 계급 간의 폭력이나

놀이 시간에 일어나는 권위를 만드는 폭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더욱 치밀한 전략 게임으로 발전한다.)


아이들은 

어른을 통해 습득되는 언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계급이 있고, 권위가 있음을.


가정에서 절대적인 권위자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경제력을 쥐고 있는 쪽, 살림을 책임지고 교육을 담당하는 쪽.

드러나는 권력자와 숨어있는 권력자는 다르기도 하다.

겉으로는 목소리 큰 사람인 듯 하지만

알고 보면 조용히 희생자 모드로 아이들을 조종하는 양육자도 있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그래서 이 모든 분위기를 그대로 답습한다.

그리고 교실에서 이것을 자신들의 방법으로 실현한다.


이건

잘 노는 아이들을 그냥 웃으며 바라보아서는 모를 일이다.

잘 노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주고받는 대화와 행동을 제대로 분석해야

그들 사이의 고착화된 힘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 사슬을 끊어주는 어른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야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훈육할 수 있다.

(그래서 교사의 권위도 필요하다. 아이들을 교사 편한 대로 조종하거나 이용하려는 권력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건강한 마음을 발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며 모범을 보이는 권위.)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을 교사가 통제할 수는 없다.

그들 사이의 자율성과 주도성을 존중하며 마음 깊이 담겨있는 귀한 마음을 끄집어내는 교육은

가정과의 연계지도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양육자의 권위로 훈육할 수 있다.

하지만 바깥에서 아이가 겪고 돌아온 일은 속수무책이다.

심각한 사안이 아니라면 (사실 일의 경중을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 생각한다. 미미한 시작이 불러올 결과를 생각하면 처음부터 잘 대처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지켜보거나, 교사와 상담하거나, 상대 부모와 이야기하거나 필요시에 직접 개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아이들 권력의 사다리에 내 아이가 발을 디디지 않도록

'사다리'라는 고압적인 분위기에 젖지 않도록

단단한 가정교육이 필요하다.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

엄마로서 내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실천해야 할 일이다.

나에게 사랑받고 존중받은 아이는

그 귀한 느낌을 알기에

부당한 느낌이 무엇인지도 알 것이다.


아이들은 잔인하다.

하지만 순수하다.


아이들은

무리에서 살아남으려는 학습된 본능으로 말하고 행동할지라도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올바른 태도로 아이들을 대하면

어른보다 조금 더 빨리 변화한다. 

 

오늘,

엄마로서 교사로서

만나는 아이들을

존중하며 바라보려 노력해야겠다.


나부터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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