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조회수가 내게 남긴 것

그러니, 오늘도 글을 쓴다

by 자유로운 풀풀

2021년 6월 30일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2021년 7월 5일, 그러니 어제까지 매일 글 한 편을 발행했다. 하루에 두 편을 쓴 날도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루 종일 글감이 둥둥 떠 다녔다. 아이들이 잠든 후, 노트북을 펼쳐 식탁 의자에 앉으면 새로운 글감이 떠올랐다. 결국 쓰고 싶었던 글감을 미루고,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타 타탁 쳤다.


브런치는 매력적이다. 글을 쓰는 화면 또한 그렇다. 스마트폰으로 볼 때는 알지 못했다. 노트북 화면으로 보는 브런치 글쓰기 화면은 아주 담백하다. 사진, 그림 같은 건 넣고 싶지 않을 만큼. 흰 여백과 검은 글자들이 내 마음을 비추는 듯하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난 브런치와 일주일간 사랑에 빠졌다.


브런치 작가가 된 후, 하루, 이틀까지는 발행 버튼을 누르는 것이 너무나도 망설여졌다. 이렇다 할 영향력도 없는, 이런저런 말을 끄집어낼 뿐인 평범한 나의 글이 비루했다. 읽어주는 사람 없는데, 세상에 꼭 나를 까발리는 기분도 들었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지만, 모두가 볼 것 같았다. 사흘째 날이 되자 탄력이 붙었다. 신이 났다. 오르지 않는 조회수는 글을 솔직하게 만들었다. 혼자 먹는 요리는 당근을 한 움큼 더 넣어보기도 하고, 빼 보기도 한다. 어차피 나만 먹는 거니까. 혼자 쓰고 혼자 읽는 글도 가볍게, 무겁게 이리저리 하고픈대로 쓴다. 평가 내릴 누군가가 없으니까. 평가자가 없는 열린 공간에 나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은 정말 신명 나는 일이었다. 매일 글을 쓰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아이들이 잠든 후, 식탁 의자에 앉아 어둑한 거실을 배경으로 하얀 브런치 화면에 글자를 채우는 시간이. 타다다닥 두드리는 타자 소리는 나의 생각보다 더 빠르게 명랑하게 내 귀를 때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오늘 아침, 브런치 알림이 울렸다. "내 글을 라이킷 해준 고마운 분이구나"하고 확인을 눌러보았다.


조회수 1000 돌파!


오잉? 이게 머선일인고? 내 글의 조회수가 1000이 넘었다고? 10이 아니고? 급히 발행된 글을 눌러 그래프 모양을 클릭하니 조회수가 1000이 넘었다. 7월 4일 주말 저녁에 참회하는 심정으로 적은 "왜 주말엔 화가 나지?"글이 월요일 메인 어느 지점(찾지를 못했다)에 노출된 것이다. 대박사건! 좋은 일은 알리면 복을 나누는 거란 신념(이라 쓰고 자랑이라 읽는)에 따라 단톡 방에 자랑을 했다. 축하를 주고받고 볼일을 보던 중, 브런치 알림이 다시 울렸다. 설레는 맘으로 알림을 확인했다.


뜨헉! 이거 뭐지?


어젯밤 쓴 글이 조회수 1000을 돌파했다. 시작되는 장마에 밀려오는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기도하는 심정으로 적은 "장마에 대처하는 육아맘의 자세"가 어딘가에 또 노출이 된 것이다. 이틀 연속, 두 개의 글이 어딘가에 노출이 되다니! 기적 같은 일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일주일 만에 난 엄청 크고 단 열매를 맛보았다. 행복했다. 즐거웠다.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어주었고, '읽어볼 만한 글'이라며 노출을 시켜준 것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눈물도 흘렀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고,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어플을 열어 조회수를 자꾸 확인한다. 오늘은 어떤 글을 써야 읽힐만한 글로 인정받을까 고민한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타인이 읽을만한 글 사이에서 중심 추가 자꾸 이동한다. 솔직한 마음을 어떻게 그럴싸하게 포장할까 연구한다.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 나는 딱 이 상태였다. '글을 쓰고 나누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함으로 글을 쓰던 나'가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여 내게 득이 되게 만들지를 고민하는 나'로 바뀌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난 '글을 꽤 괜찮게 쓰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었다.


조회수 1000을 찍은 두 글이 내게 남긴 것은 '압박감'이었다. 댓글 한 줄에도 마음이 설레는 브런치 초보에게 조회수 1000은 다음 글에도 이만큼을 해야 한다는 성적표로 다가왔다. (고백하는 지금, 두 손이 부끄러움에 오그라 든다.) 알아차렸으니 됐다. 이제 다시 쓰면 된다. 잘 써낸 글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담은 솔직한 글을 쓰면 된다.




돌이켜보니 삶의 패턴이 그랬다.

성적이 오르면, 노력한 나를 칭찬하고 즐기면 될 것을 "다음엔 더 잘해야지" 했다.

취업을 했으면, 시간을 견뎌낸 나를 다독이고 감사하면 될 것을 "승진해야지" 했다.


나의 노력으로 인한 '좋아 보이는 결과'를 '당연한 결과'로 간주했다. 노력했으니 잘 된 것이고, 노력하지 않았으니 잘 안 된 것이라 자책했다.

노력해도 잘 되지 않으면? 세상을 탓하고, 그 사람을 미워했다. 나는 100을 했는데 50밖에 나오지 않은 것은 당신들 탓이라 손가락을 돌렸다.


스스로를 무엇이든 해내고야 마는, 해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완벽,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말았다.


초연해지면 자유로워진다.
내 업적이 나를 규정하지 않으면 압박감이 사라진다.
내가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
-수도자처럼 생각하기 / 제이 셰티 / 다산북스


내 업적이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

나는 최고가 아니다. 나는 잘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살면서 '성공적인 경험'이 많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노력할 수 있는 조건(외적, 내적)이 허락되었고, 외부적으로도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는 것들을 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기적인 것처럼 말이다.




오늘, '자유로운 풀풀' 브런치 조회수는 기적이다.

사색을 멈추지 않고, 문장으로 뽑아낸 나를 칭찬한다.

글을 읽고 추천해준 당신에게 감사하다.

추천된 글에 반응해준 분들에게 평온을 전한다.


그러니, 글을 쓴다.

나는 최고가 아니며, 될 필요도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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