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에서 고른 나의 첫 육아서에서는 그냥 틀고, 읽어주면 다 된다고 했다.
뭐가? 영어가.
특별한 사교육을 하지 않고도 해리포터를 원서로 줄줄줄 읽게 된다니! 게다가 방법도 초특급 간단하다. CD 틀고 읽어주기. 애들 놀 때 영어동요를 배경음악으로 깔아주고, 잠들기 전 영어책을 읽어주란다. 애가 좀 크면, 텔레비전 대신 영어교육용 DVD를 틀어주고 엄마는 곁에 누워서 쉬란다. 와우! 애도 없던, 임신 준비 중인 새댁이었던 나는 그 책에 정말 꽂혔다. (오죽하면, 3살 된 아이 육아로 지쳐 놀러 온 지인에게 '이 책 좀 읽어보라'며 권했을까. 지인님, 미안합니다. 그땐 내가 육아의 세계를 모르던 때라... 쿨럭.)
쌍둥이 두 딸이 태어나고, 그 책을 잠시 밀어두었다. 일단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아이 교육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이가 돌이 지나, 두 살이 되자 슬슬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영어동요, 놀이동요 CD 세트를 샀다. 영어도 모국어도 둘 다 놓칠 수 없으니까. '아기 첫 영어책'을 검색하여 원서 몇 권을 주문했다. 그땐 아직 중고 전집의 세계에 눈을 뜨지 못한 때였기에, 대여섯 권의 영어 원서로 아이에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신나게 노는 아이 옆에서 영어 동요 사운드북 버튼을 누르고, 영어 CD를 틀었다. 양희경 이모의 신나는 목소리로 아침을 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난 아이가 태어난 후, 1년 여의 시간을 생존에 몰두했으므로 이젠 영어도 습관으로 가져가야 할 때라 생각했으니.
그 이후로 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표 영어를 진행해오고 있다. 그 책에서 말한 것처럼, 무조건 틀고 읽고 보여주고 있다. 집안 환경을 그렇게 만들었다. 책장에 꽂힌 영어책을 아이가 가져오면 함께 읽고, 잠자리 독서에 영어책을 세네 권 끼워 넣고, 내가 피곤할 때 영어 DVD를 틀어주었다. 직접적인 가르침은 하지 않았다. "사과는 apple이야."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사과를 들고 어떤 때는 '사과 같은 내 얼굴~'하고, 또 어떤 때는 "Apple~ I like apples~."라며 콩글리쉬를 늘어놓기도 했다. 사실 이런 생활영어는 하루에 한 번 있을까 말까이고, '틀어주고, 읽어주고, 보여주고'의 3박자를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어 노출이 된 아이들, 실력은 어떨까?
모르겠다.
레벨테스트를 받아보지도 않았고, 학습적인 노출을 하지 않았기에 엄마인 나도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가늠되지 않는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영어 실력이라고 할 티끌만 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아이들은 완벽한 영어 문장으로 화상 영어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파닉스를 저절로 깨쳐 리더스북을 줄줄 읽는다는데, 우리 집 두 딸은 재미난 영어 원서 같이 보고, 심심할 때 DVD 보는 게 전부다.
당장 와닿는 영어 교육의 결과는?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이것이 만 3년 이상의 영어 노출을 통해 맛 본 열매다.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지도 모르겠고, 두 눈을 빛내며 집중하는 옥토넛 영어 DVD도 얼마나 알아듣는지 모르겠다. 그저 잠자리 독서로 읽는 영어책들을 편안하게 듣고, DVD 속 주인공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영어를 도구로 즐긴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답답하지 않냐고? 정말 답답하다. 취학 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 관련 책들에서는 '자연스러운 습득'을 이야기한다.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머릿속에 차곡히 정렬된 이론들과 달리 엄마의 마음은 속이 탄다. 이렇게 흐지부지 가다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끝이 어딘지, 어디로 연결되어있는지 알지 못하는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했다. 저녁식사 후 아이들과 옥토넛 DVD를 영어로 시청했고, 잠들기 전 짤막한 영어책 3권을 읽었다. 이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루틴이 되었다. 루틴을 만들기까지 나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젠 공기처럼 스며든 일상의 한 부분이다.
1년 뒤, 3년 뒤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영어를 언어로 즐겨줄는지, 영어라면 학을 떼고 도망을 갈지 가늠되지 않는다.
나 또한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영어라는 도구를 줄는지,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며 아이에게 학습서를 들이밀지 스스로도 예측되지 않는다.
내가 할 일은 이것뿐이다. 그저 해 오던 것들을 꾸준히 하는 것. 해오던 것을 점검하여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시도해 보는 것. 미래가 어떠함을 예측하며 걱정하거나, 기뻐하지 않고, 이 순간에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적절히 조화롭게 실천해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