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30분. 알람 진동에 눈을 떴다. 슬며시 고개를 들려 아이들을 살펴보니, 연이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이와 함께 방을 나왔다. 아이는 거실에 깔아 둔 이불 위에서 아침잠을 만끽하고, 나는 식탁에 앉아 모닝 페이지를 적어갔다. 아이와 함께 미라클 모닝을 시작해도 모닝 페이지 인증이 가능하다니! 아이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모습에 미안함을 느꼈던 내겐, 장족의 발전이다. 아이와 함께지만 독립된 시간이 아무런 미안함 없이 가능해진 것이다.
짧은 글쓰기를 마무리하고, 싱크대 앞에 섰다. 토스트를 먹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냉장고에서 식빵을 꺼냈다. 식빵 두 쪽을 프라이팬 위에 올리고, 미리 잘라둔 버터 두 조각을 살포시 얹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식빵이 노릇하게 구워지길 기다리는 동안, 압력밥솥에 밥을 안치고 저녁에 사용할 육수를 준비했다. 냉장고에서 잘 익은 복숭아 한 알을 꺼내 깨끗이 씻고, 껍질을 벗겨 먹기 좋게 잘랐다. 다 구워진 식빵을 조각조각 자르고, 달궈진 프라이팬에 계란물을 부었다. 아이의 아침 식사와 남편의 아침상이 순조롭게 준비되었다.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아이들의 등원 준비까지 아주 순탄하게 흘러갔다. 은이가 주문한 신발이 언제 오냐며 20여 분간 울음 잔치를 벌이기는 했지만, 그 또한 나름 괜찮게 지나갔다. 난 운동복을 챙겨 입고, 실내용 운동화를 가방에 넣고 아이들과 집을 나섰다. 아이들을 어린이집 앞에서 배웅하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언덕 아래 있는 헬스장까지 왕복 걷기로 유산소를 대체하고, 몇 년 만에 헬스장의 기구들을 좀 들어볼까 싶었다. 아침마다 무겁게 느껴지는 몸과 하루 종일 축축 처지는 몸뚱이는 근력운동을 시작하라는 몸의 신호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도착한 헬스장, 아무도 없다. 올레! 스마트폰으로 듣고 싶었던 강의를 들으며, 근력운동에 돌입했다. 욕심부리지 않고, 가벼운 무게로 두 세트씩만. 나는 근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조금씩 적응해가는 것이 목표니까. 25분간의 근력운동을 마무리하고, 거꾸리까지 한 몸에서 경쾌함이 전해지는 듯했다. 5분의 스트레칭으로 운동을 마치고, 씩씩한 걸음으로 언덕을 올랐다.
분명, 여기까지는 꽤 괜찮았다.
짧은 글쓰기와 운동까지 더한 아침은 완벽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밥을 챙겨 먹은 이후, 몸에 힘이 자꾸만 빠졌다. 컵을 쥔 손가락에 힘이 빠지고, 청소기를 밀며 걷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뭔가 이상했다. 내겐 휴식의 시간이 필요한데,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1시. 아이들이 하원을 했다. 빵을 먹고 싶다는 아이들의 주문에 맞춰 빵 사러 이동! 먹고 싶었던 빵과 간식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기서 모든 단추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시각은 1시 50분. 뜨겁게 달궈진 도로 위에 주차를 하고, 묵직한 가방 세 개를 어깨에 짊어졌다. 양 팔에는 찐 옥수수 두 봉지와 빵 봉투를 들고 3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연이의 투정이 시작됐다.
"엄마, 손 잡고 갈래! 안아줘! 피곤해!"
툭. 정신줄이 끊겼다.
"왜 그래 또! 뭐가! 엄마 손에 짐 많은 거 안 보여? 그냥 와! 엄마 무거워!"
평소라면,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고 아이를 먼저 챙겼을 것이다. 짐을 얼른 옮겨야 된다면, 얼른 현관에 짐을 내려놓고 다시 내려와 아이를 달랬을 것이다. 그럴만한 여유가 있었을 거다. 평소였다면.
분명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난 괜찮지 않았나 보다. 괜찮다, 이만하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나를 달래고 있던 중이었나 보다. 피곤하다는 아이의 말 한마디에 나는 이성의 끈을 놓았다. 필터 없이 거친 잔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아이는 엉엉 울며 계단을 걸어 올라왔다. 그러든가 말든가,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온 빵과 사탕 포장지를 빨리 뜯어달라는 또 다른 아이의 투정이 들렸다.
"기다려! 엄마가 짐 정리하는 거 안 보여? 좀 기다리라고!"
글로 표현된 문장들만 내뱉고 끝났다면, 이 글을 적지도 않았을 것이다. 난 날카롭고 공격적인 목소리로 아이들을 다그치고 다그쳤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는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난 너무 지쳤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주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발라당 누웠다. 처음에는 화를 식히려는 의도였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잠결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다정하게 잘 노는 듯 한 목소리에 안심하며 15분만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선 3시간을 잤다.
이후의 상황은 처참하다.
3시간의 낮잠 후, 아이들과 목욕을 하고, 저녁 식사를 한 후 1시간 정도의 자유시간 후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줄곧 화가 나 있었다. 아니, 조금만 건드려도 화가 훅 치솟았다. 오전까지만 해도 분명 완벽했는데, 그 이후의 시간은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대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하루를 아무리 되짚어봐도,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도 화가 났는지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이 화가 나고, 짜증 나고, 버거웠다. 오로지 내 몸뚱이만 챙기고 싶었다. 이기적이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난 두 아이도, 남편도 다 옆으로 밀어버리고, 오로지 나 하나만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다섯 살 된 두 딸은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고, 함께 사는 남편과는 적절한 사회적 관계가 필요했다. 난 홀 몸이 아니었다.
완벽한 시작이라 자축했던, 오전의 달콤한 3시간 30분은 오로지 나만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완벽한 나만의 시간. 운동이나 독서 등의 생산적인 활동으로 채우든, 잠이나 영상 시청 등의 여가 활동으로 채우든, 집안 청소와 식사 준비 등의 봉사활동으로 채우든.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영역인 것이다.
어떤 날은, 나만의 영역 덕분에 나머지 사회적 관계의 시간들을 균형감 있게 채워가기도 한다. 그런 날은 하루를 미소로 마감할 수 있다. 최적의 균형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최선의 하루였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또 어떤 날은, 나만의 영역이 아예 없어서, 사회적 관계의 시간들을 희생정신으로 채우기도 한다. 틈틈이 여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나를 칭찬하며, 좋은 엄마와 아내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에 날 위로한다. 중간중간 버럭 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날이다. 나만의 영역이 너무나도 신나게 채워져 버린 거다. 거기에 온 에너지를 쏟아붓는 바람에 (의도하지 않았다), 남은 사회적 관계들에 투자할 힘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나를 위해 열정적으로 투자하였기에 약간의 휴식이 필요한데, 그럴 틈 없이 돌봄 노동이 시작되어버린 날.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이런 날은 균형을 찾지 못했다는 자책과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나를 짓누른다. 나 하나 잘 살아볼 거라고, 온 가족의 하루를 망쳐버린 듯 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제껏 문제의 날들이 닥쳤을 때, 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러게 왜 아침부터 운동을 해서는..."에서 시작한 넋두리는 "그냥 집 앞 편의점을 가지, 왜 빵을 사서는..."으로 나아가서, "넌 정말 너밖에 모르는 다혈질이야."의 자기 비하로 마무리되었다. 나만의 고유한 시간을 버리며, 모든 초점을 가족을 향해 돌려버렸다.
이젠, 좀 다르게 선택해보려 한다.
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또 하나 알았다.
이런 날도 있는 거다.
완벽하지 않은 하루. 평균에 못 미치는 하루. 실수가 좀 많았던 하루. 고함으로 얼룩진 하루. 수많은 하루들 중 이런 날들이 좀 있다고 해서 내가 못난 인간이 되는 건 아닌 거다. 그냥 그럴 수 있다. 용기가 넘쳐서 내 페이스를 넘겨버리는 날.
그럼, 이제 어쩌지?
더운 낮에는 무리해서 걷지 말고, 장보기도 하지 말고, 내 몸을 아껴 사용한다. 헬스장은 주 2-3회 컨디션과 여건이 따라주는 저녁에 간다. 아침에 가면 피곤해서 오후 활동이 힘들어지니까! 오전 운동은 가벼운 산책과 15분 홈트로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