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쳤다. 여유롭게 대처해왔던 상황들이 시한폭탄이 되어 떨어졌다. 어떻게든 시간을 때워보려고 꺼낸 만들기 세트. 이이들은 먼저 만들어 달라고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성의 끈이 툭 끊어졌다. 아니, 내가 이성의 끈을 잘라버렸다. 더 이상 참기 싫었다.
"엄마는 만들기 안 할 거야. 이거 못하겠어. 서로 먼저 해달라고 하는 것도 화가 나. 엄마 몸은 하나잖아. 게다가 만들기 세트가 엉성해서 잘 끼워지지도 않아. 엄마 이거 지금 못 만들어."
띠리링.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독서실에 갔던 남편이 저녁 식사를 하러 집에 온 것이다. 이를 꽉 물었다. 화를 식히려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아이들이 따라와 밖으로 나가잔다. 알겠으니 옷을 갈아입으라며 말을 던지고, 싱크대 앞에 섰다. 우당탕탕. 누가 들으면 그릇이 깨지는 줄 알았을 거다. 난 건조된 스텐 식판, 스텐 컵들을 거침없이 주방 서랍으로 내던졌다.
남편이 말했다.
"화 안 나게, 그냥 나가지마."
난 대꾸했다.
"당신은 내가 화내는 소리를 듣기 싫은 거야."
부부 언쟁이 시작됐다. "화가 나지 않게, 나가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라는 남편. "화가 난 걸 어떡하라고.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텐데, 당신은 내가 화가 난 걸 못 견디는 거야."라는 나. 동의 없는 평행선을 쭉 달렸다. 아이들은 그만하라며 우리 사이를 왔다 갔다 움직였다. 남편의 독서실 행으로 우린 휴전했다.
내일은 남편이 오랜 기간 준비한 시험날이다. 해마다 준비하는 시험이기도 하고,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시험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남편의 시험 전날이면 폭발해버린다. 참아왔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다. 오늘도 그랬다.
남들 다 쉬는 주말. 아니, 주말이 아니더라도 일주일 하루쯤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휴일. 서로 다른 휴식을 취하더라도, 육아라는 공동 프로젝트에는 참여하는 쉬는 날. 참여까진 아니더라도 형식적인 가족 행사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날. 남편은 몇 달째, 쉬는 날 없이 독서실과 집을 오갔다. 남편에게 집은 하루 한 끼를 해결하고, 잠을 자는 공간이었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하루 한 시간 잠깐 보는 사람이었다. 이마저도 근무 일정이 틀어지면 못하게 되는 날이 다수였다. 내게 남편은 하루 한 시간 얼굴 보며, 파이팅을 나누는 사이였다. 남편의 불규칙한 수면 패턴 때문에 본의 아니게 각방(나는 아이들과 함께)을 쓰게 되니, 편안한 온기 한 번 나눌 시간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일에 몰두했다. 그게 서로를 위한 최선이라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서운한 마음도 좋게 웃으며 애교로 넘겼고, 속상한 마음도 명상과 글쓰기에 의지했다.
내 속의 참아왔던 풍선이 터져버렸다. 조금만 참았으면 됐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디 한 번 보라는 심정으로 나의 괴로움과 힘듦을 분노로 표출했다. 사실 남편이 없었더라도 아이들이 보지 않는 싱크대 앞에서 식판이라도 거칠게 놓아버리며 화를 풀었을 것이다. 하필 그 시각에 남편이 식탁 의자에 앉아있었고, 남편과 아이들을 동시에 피해 화를 뿜어낼 여유를 찾지 못한 나는 말없는 폭풍처럼 식판을 내던졌다. 남편과 나의 숨겨두었던 내적 불행이 스파크를 일으켰다.
남편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집안이 편안했으면 했을 거다. 고단해 보이는 아내이지만, 그래도 힘을 내며 웃어 보였으면 했을 거다. 투닥거리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화기애애 사이좋았으면 했을 거다. 당장 자기 앞의 커다란 산을 넘어야 하니까. 그러니 도움도 주고 싶고, 힘든 상황도 무마시켜보려 한 말이 "그러면 나가지 마"였을 테다. 그게 그 사람의 최선이었던 거다.
나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더운 여름, 두 아이와 어떻게든 신나게 보내보려 애를 쓰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도 괜찮다고 다독이며 힘을 내보려 하고 있었다. 저녁으로 달려가는 오후, 피로가 덮치는 시각. 마의 구간. 하필 그 순간에 남편이 들어왔고, 날카로운 분노의 말 대신 식판 내던지기 스킬로 격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누구 탓을 할까.
상황도 모르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남편을 탓할까.
마음도 모르고 화만 내는 아내를 탓할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시험 준비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안쓰러운 한 남자일 뿐이다.
육아와 살림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안쓰러운 한 여자일 뿐이다.
고단한 두 사람이 실수를 저지른 것뿐이다.
이전의 나였다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먼저, 남편에게 사과를 한다. '시험 준비로 마음이 바쁠 텐데 나까지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하다'며 장문의 하소연을 보낸다. 자책한다. 난 좋은 아내가 아니라고. 좋은 아내가 아니라, 나쁜 아내라며 스스로를 질타한다. 그리고 나선 엉엉 울며 남편의 위로를 기다린다. 남편에게서 기어코 "내가 잘못했다. 당신은 좋은 아내이다."라는 말을 들어야 안심한다.
이것이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부부의 모습을 거기에 끼워 맞추려 노력했을 것이다.
나를 가해자의 위치에 세워놓고 면죄부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혹여나 면죄부를 받지 못한다면 피해자의 위치로 돌변하여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연출하지 않는 남편을 가해자의 위치에 올렸을 것이다. 피해자의 자리에 선 나는 '좋은 아내이기 위해 노력했음'을 어필하며 정당한 억울함을 호소했을 것이다.
오늘 난, 좋은 아내가 되기를 거부한다.
난 그냥 아내다. 한 남자와 결혼하여 짝을 이룬 여자일 뿐이다. 어떤 기준에서는 나쁜 아내일지도 모른다. 적절한 내조로 남편을 돕지 못하고, 감정 조절에 실패하여 화내는 아내니까. 그런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난 지쳤고, 고단하고, 피로한 사람이다. 적절한 쉼의 시간을 허락받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다. 설사 외부의 도움을 받아 휴식을 취한다 해도, 쌓인 스트레스 지수를 확 떨어뜨리기엔 역부족인 상태의 사람이다.
남편도 나도 실수했을 뿐, 좋거나 더 나음의 평가가 없는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가 꿈꾸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은 이상일뿐 현실과 다르다. 조금 더 피 튀기고, 큰 소리가 오갈 때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맞대고 넘어가는 현장이다. 이상적인 부부가 솜사탕 맛이라면 현실의 부부는 매콤한 된장찌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