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난 숭늉!"
간식으로 숭늉을 주문하는 은이. 분부 받들어 냄비에 누룽지를 잘게 부수어 물을 담는다. 밥솥에서 따뜻한 밥 두 숟가락을 넣어 15분간 약불에 보글보글 끓이면 완성! 냉장고에서 누룽지를 꺼내는 순간부터 두 마음이 소리친다. '끓여준다고 먹을까? 귀찮은데. 한 숟가락이라도 먹고 싶겠지. 그럼 된 거지.' 초간단 숭늉이지만 준비하는 마음은 시끌시끌하다.
"맛있게 먹어."
좋아하는 그릇에 숭늉을 한 국자 담아 후후 불어 식혀 내어 준다. 숭늉 그릇을 보더니 툴툴거리며 더 식혀달라는 둥 투정을 부리는 은이. 미간이 찌푸려지고 한숨이 나온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10여분을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징징대던 은이가 잠이 든다. 많이 피곤했던게지. 따끈한 숭늉 한 숟가락이라도 먹고 자면 든든할 텐데 냄새만 맡고 잠이 든 은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식어버린 숭늉 그릇을 정리하는 내가 안쓰럽기도 하다.
어찌어찌 저녁 시간이 지나가고 아이들이 잠들었다. 냄비에 담긴 불어 터진 숭늉이 보인다. 밥인지 숭늉인지 죽이었는지 모를 내용물이 담겨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식탁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좀 먹어주지."
먹고 싶지 않아 먹지 않았을 뿐인 아이에게 서운한 마음이 올라온다. 꼭 사랑의 어긋남 같다. 나는 너를 위해 반지를 준비했는데, 너는 반지가 거추장스럽다고 한다. 너는 나를 위해 편안한 슬리퍼를 준비했는데, 나는 그럴듯한 구두가 필요하다고 한다. 어느 때건, 두 사람의 마음이 맞장구를 쳐 본 적이 자주 있었던가. 사랑하는 그대이건, 밍적지근한 직장동료이건, 기대고픈 엄마이건, 자랑하고픈 자식이건, 그 어느 누가 내 마음에 '쿵' 하면 '덕' 하고 맞장구를 쳐 주던가. 그 어려운 것을 아이에게 기대하고 바라다가 서운해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기억 속의 은이가 웃었다. 떠올랐다, 아이의 옅은 미소가. 순간 떠오른 먹고 싶은 음식을 차려준 엄마의 정성에 아이는 미소로 화답했던 것이다. 내가 바란 것이 한 숟가락을 먹는 행동이었기에 아이의 응답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였지만 지워버렸다. 아, 기억의 조작이란. 아이는 주문했고, 엄마는 정성으로 준비했고, 아이는 만족했다. 피로했던 은이는 엄마의 사랑이 고팠던 것일 뿐인 거다. 숭늉 한 숟가락을 먹지 않았지만, 사랑 한 숟가락은 꿀꺽했다.
사랑의 어긋남이라 여겼다. 서운했다. 찰나의 스쳐 지나간 미소가 떠오르자 사랑의 마주침이 되었다. 만족스럽다. 글을 쓰는 지금도 냄비에 담겨있는 불어 터진 숭늉이 사랑스럽게 보인다. '넌 은이에게 사랑 한 스푼을 배달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