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일상, 한 조각 잘라볼까요?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나를 돌보는 것

by 자유로운 풀풀


육아를 하기 전,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제시간에 일어나 직장으로 가고, 퇴근 후 약간의 여가시간을 보낸 뒤 잠자리에 드는 것. 그 사이에는 업무적인 이벤트가 있을 때도 있고, 연애와 같은 특별한 관계가 끼어들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시간을 조종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도 하루하루는 규모 있게 흘러가는 듯했다.

사회적인 역할이 부여되고, 그에 따른 성과와 자본 소득이 연결될 때에는 시간에 따라 그냥 살아내어도 충분했다. 타인과 비교했을 때는 좀 부족한 것들도 보이긴 했지만, 나 한 사람만 들여다봤을 땐 무엇인가를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한 달이 지나면 월급통장에는 0을 몇 개 붙인 숫자가 찍혔고, 출퇴근한 연차가 쌓여 후배들도 들어왔으니 말이다. 직장 안에서 하루의 몫을 다 해낸 날은 퇴근 후 침대에서까지 그 일을 곱씹을 객관적인 이유는 없었다. (물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는 욕망이 없다면 말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그 욕망의 프로젝트는 시와 종이 있는 것이었다.)


임신, 출산을 거쳐 육아의 시간을 통과하며 '시간은 흘러간다'는 나의 통념이 깨졌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해졌다. 시와 종이 없이 반복되는 집안일과 육아에서 나의 유의미함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말끔하게 설거지 해 둔 그릇은 사진으로만 고정될 뿐, 잠시 뒤면 음식물이 담긴다.

정성을 다해 차린 식사는 갓 차려낸 1초의 순간만 있을 뿐, 이내 뱃속으로 들어간다.

손걸레질로 반듯하게 닦은 거실 바닥은 하루만 지나도 먼지가 쌓이고, 장난감으로 어질러진다.

육아는 또 어떤가.

어제 응가를 눈 아이가 오늘 또 응가를 눈다.

어제 짜증을 낸 아이가 오늘 또 짜증을 낸다.

어제 같이 놀자던 아이가 오늘 또 같이 놀잔다.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은 루틴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루틴.

그렇다고 이게 딱 떨어지는 일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어제는 거실 바닥을 신경 써서 닦았다면, 오늘은 안방 바닥을 정성 들여 닦아내어 집안의 쾌적함을 유지하려는 기지가 필요하다.

어제저녁 반찬으로 생선구이를 잘 먹은 아이가 오늘은 미역국이 먹고 싶다면, 저녁 메뉴를 기꺼이 바꿔내는 융통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똑같은 레고 부품이 하나 모자라다고 속상한 아이에게 레고 조각 두 개를 테이프로 붙여내는 창의성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분명 어떤 일을 수행해내는 일련의 과정임은 분명한데, 그 안에서 기지와 융통성, 창의성까지 발휘되는 고난도의 작업들이다.


이렇다 할 결과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면서, 나의 한계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

집안일과 육아로 가득 찬 나의 시간들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집안일과 육아의 시, 종을 정하기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들. 여기에 더 잘 해내려는 애씀을 놓아버리고, 이만하면 된 것으로 끝내버리는 것이다.

싱크대에 얼룩이 보여도 '이만하면 됐다'라고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용기.

멍 때리는 아이들에게 워크북 한 장 들이밀고픈 욕망을 눌러버리고 나도 같이 멍을 때려보는 여유.

어떤 것을 하면 할수록 더 최고의 것을 만들어내고픈 욕심을 알아차리고 이것을 하나씩 놓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잘 굴러감을 경험하고 난 뒤에는, 애써야 될 때 적절히 애쓰고, 놓아도 될 때는 과감히 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게 되니까.


여유 시간에 나를 위한 활동을 하기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운동, 나만을 위한 요리, 글쓰기, 독서 등 무엇이든 좋다.

혼자만의 시간에 오로지 나만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는 것.

SNS와 유튜브의 세계에서 허우적대려는 나를 끄집어내어, 나만을 위한 활동에 의식적으로 집어넣어 보는 것.

타인의 이야기에 휩쓸리며 소란스럽던 주위를 차단하고, 오로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

굳이 명상이 아니더라도 나만을 위한 고요한 활동들에 집중하는 것은 바닥나던 에너지를 충전시켜 준다.




일상이 평온하다면, 굳이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평온한 일상에 구태여 무언가를 더 얹어 나를 괴롭힐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일상에 매몰되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다면,

시간에 휩쓸려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떠밀려가는 기분이라면.

일상의 시와 종을 정해두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활동에 집중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흘러가는 시간을 잘라내어 멈추고, 순간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소란스러운 일상을 잘라내어, 나에게 레몬 한 조각을 건네보는 거다.


새콤한 신 맛에 나의 오감이 깨어나고, 눈이 뜨여지는 것처럼,

나의 소란스러웠던 일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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