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깎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의 섬세한 사랑

by 자유로운 풀풀

며칠 전부터 아이의 손톱을 정리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쑥쑥 자라는 아이는 손톱도 빠르게 자란다. 일주일 한 번 정리해주지 않으면 어느새 길어지는 아이의 손톱이다. 아침 등원 준비를 하는데 아이의 손톱과 발톱이 짤막하게 정리되어 있다. 나는 깎아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생각했다. 할머니도 만나지 않았고, 그럼 어린이집 선생님뿐이었다.


"연아, 선생님이 손톱 깎아주셨어?"

"응, 파랑새반 선생님이 깎아주셨어!"

"우와, 정말 감사하다! 어린이집에 가서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리자!"


사회적 거리두기로 학부모들은 등원하며 담임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니, 난 알림장에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등원 준비를 끝내고, 아이와 어린이집으로 출발했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보건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아이에게 잘 다녀오라고 말을 건네는데, 연이가 쭈뼛거리며 뭐라고 속삭인다. 아이의 말을 귀를 가까이 대고 들어 보았다.


"엄마, 감사하다고 인사해야지."


아! 아이는 아침에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림장에 적어두고 까마득히 잊어버린 것을 아이는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선생님, 연이랑 은이 손톱이 단정해져 있더라고요. 손톱 정리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선생님께 전해주세요."


나의 감사 인사에 보건 선생님이 활짝 웃으신다.


"어머, 어머님.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더 기뻐요."


아, 아이의 말을 듣길 잘했다. 얼른 들어가라고 등을 떠밀었으면 나 누지 못했을 감사인사의 기쁨을 아이 덕에 나눌 수 있었다.




쌍둥이 두 딸과 함께하다 보면 '해야지'하면서도 놓치는 것들이 많다.

특히 손톱을 정리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행위임에도 늘 시기를 놓친 듯 부랴부랴 하게 된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기에 '상황을 고려한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다. 완벽주의 성향이었던 내가 '해야 하는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그것이 집 안에서 나와 아이만 아는 일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들통이 나 버렸을 때'의 민망함은 견디기 힘들었다. 아무도 내게 뭐라고 말하지 않지만, 나 혼자 혼나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사소한 실수에도 자괴감에 빠지는 나에게 친정엄마가 늘 말씀하셨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하물며 너는 혼자 쌍둥이를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도움이 필요하겠냐. 상황을 받아들이고 편하게 가라."


그때는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 하나만 보고 세상에 던져진 두 아이를 완벽하게 케어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편하게 하자'라고 주문처럼 외우지만, '완벽해야지'의 무의식적인 근성을 벗어던지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하나고, 아이는 둘이었다. 아는 대로 실천되지 않는 피로한 몸뚱이를 쥐어뜯었고, 거친 말을 내뱉는 입을 쥐어박았고, 딴생각하는 멍한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울고 고함지르며 한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도와주는 손길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일주일 한 번, 몇 시간이라도 아이와 즐겁게 놀아줄 할머니가 계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축복이다. 모르는 육아 정보를 함께 나누고 실천하는 온라인 소모임이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아는 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무의식과 의식의 갭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심리상담은 선물이다.


육아, 아이를 기르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한 영혼이 자라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당장 설거지를 해주거나, 아이의 빨래를 해주는 직접적인 도움에서부터 산책 도중 나누는 눈인사까지. 어떤 형태이든 도움이 필요하다.


몇 년 전의 나라면, 말끔하게 정리된 손톱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을 것이다. '아이 손톱도 제때 정리해주지 않는 무심한 엄마'로 낙인찍혔을까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오늘 나는, 아이의 말끔하게 정리된 손톱을 감사한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북적이는 교실. 안전하게 다양한 활동을 이끌어가는 선생님. 그 와중에 아이의 기다란 손톱을 발견한 선생님의 섬세함. 아이의 손톱을 다듬어주시는 보조선생님의 사랑. 엄마인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을 도와주는 사랑의 손길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거다.


"아이 손톱 깎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심한 관심에 감사함을 표현하고, 감사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음을 자책하지 않기를 멈춘다.

세상이 건네는 선한 도움의 손길에 감사로 화답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선한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참, 주말은 손톱 깎는 날이라고 종이에 적어 벽에 붙여둬야겠다.

잊지 말아야지,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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