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감정 인정하기

아이가 기념품 가게에서 떼를 썼다

by 자유로운 풀풀

"엄마, 나 저 배지 꼭 사줘야 한다!"

실내 동물원에 입장하기 전, 은이와 연이가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입구 옆 데스크에 진열되어 있는 분홍색 배지 세트를 본 것이다. 가격은 삼천 원. 평소 같으면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을 내가 그러질 못했다. 남편이 내 뒤에 서 있었다. 관람 후에 결정하자며 아이를 달래 입장했다.


"엄마, 나 저 배지 사줘!"

실내 동물원을 퇴장한 은이와 연이가 내 손을 붙들었다. 기념품 가게는 잘 통과했는데, 입구 옆 데스크에서 막혔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꾸며진 배지 세트를 꼭 갖고 싶다는 것이다. 이 실내 동물원은 네 번째 방문인데, 기념품은 한 개도 산 적이 없었다. 기념으로 예쁜 배지 하나 사볼까 싶어 내 손을 갖다 대었다.


"사도 제대로 갖고 놀지도 않을 거면서, 왜 사."

남편의 낮은 목소리가 내 뒤통수에 부딪혔다. 아, 남편이 있었지. 남편은 '쓸데없는 것'에 돈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내인 내가 강력히 원하다면 굳이 말리지 않지만, 아이들이 강력하게 원하는 것들에는 조금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편이다. 특히 기념품 구입에는 더 그렇다.


기념품 구입의 정당성을 논의해 봐?


머릿속에 물음표가 떴다. 남편에게 '어떤 장소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쓸데없어 보이는 기념품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할지의 기로에 선 것이다. 장소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실내 동물원 입구, 아이들은 '사고 싶어 송'을 부르는 중. 남편과 긴 논쟁을 시작해봤자 득 보다 실이 많다. 삼천 원짜리 배지 때문에 오래간만에 함께 하는 가족 나들이를 망쳐버릴 순 없었다. 난, 아이들을 설득하는 편을 택했다. '쓸데없는 기념품'에 반대하는 남편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의(간만의 나들이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것)를 위하여 작은 것(배지를 사는 기쁨)을 내려놓은 것이다.


삼천 원이 없어서 못 사준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난 또 다른 교육적 효과를 접목시켰다. 그렇게라도 해야 남편에게 화내지 않고, 아이들에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은아, 연아. 오늘은 기념품을 사기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살 수가 없어. 다음에 방문할 때 기념품을 살 돈을 준비해 오자. 그럼 살 수 있어."


연이는 엄마의 말에 그럭저럭 수긍을 하고 넘어가는 눈치였다. 그런데 은이가 뒤집어졌다. 코를 찌르는 냄새 때문에 실내 동물원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배지로라도 달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의 마음에 백번 공감이 되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은이는 갖고 싶다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다시 올라갈 거라며 화를 냈다. 소중하게 쥐고 있던 스탬프북도 바닥에 내팽개쳤다. 집에 안 갈 거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찌어찌 은이가 제 발로 차에 탔다. 은이 쪽 차 문을 닫고, 연이를 차에 태워 안전벨트를 채우는데, 남편이 연이에게 말했다.

"연이야, 우리 은이 때문에 감자튀김이랑 아이스크림 못 먹겠다."

아니라며 고함을 지르며 우는 은이.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차 안에서 터져버렸다.


남편과 나의 조곤조곤한 전쟁이 시작됐다.


이것은 나의 입장이었다.

아이는 아빠의 원칙대로 기념품을 사지 않았다.

욕구가 좌절되었으니 속상한 마음이다.

5세인 아이는 자기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부모는 그 시간을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네가 고집부려서' 아이스크림 못 먹는다고 죄책감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원한다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간식이다.

지금 먹으러 가지 않는 것은, 먹을 기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속상한 은이의 기분을 배려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편의 입장이었다.

아이한테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한다.

당신은 애한테 오냐 오냐만 한다.


난 반박했다.

당신이 가르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확실하게 해라.

'아빠의 원칙대로 기념품을 사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보라.

나는 계획하지 않은 소비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감정을 추스르는 중인 아이에게 (5분도 안지남) '너 때문에 아이스크림 못 먹는다'는 또 다른 죄명은 말도 안 되게 억울하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면 연이랑 가서 먼저 먹고 있어라.


그리고 마지막 펀치를 날렸다.


당신은 내가 아이에게
"울면 안 돼! 엄마가 안된다고 했잖아!"라며
고함 지르기를 바라는 거야?
그런 엉뚱한 행동은 하지 말자.
난 당신 의견 최대한 존중하려 노력 중이야.





육아를 하다 보면 난감한 상황이 많다. 육아 파트너인 남편과 가치관이 다를 때는 더욱 그렇다. 한 편이 되어도 모자랄 두 사람이 으르렁대기 시작하는 순간, 중요했던 것은 사라지고 자존심 싸움만 남는다. 아이 앞에서 고함지르는 꼴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느 한쪽이 한 발 물러서야 한다.


이전의 나였다면, 무조건 내 말이 옳다고 밀어붙였을 것이다. 기념품을 사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소중한 추억인지 아냐고 묻고 따졌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의견 다툼에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갖지도 못했을 것이고, 설사 갖게 되더라도 싸움의 선물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기념품을 사도 된다는 나의 입장을 내려놓았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아이는 잠시 속상할지도 모르지만, 부부 싸움의 냉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보다는 나았다. 아이의 실망감은 엄마인 내가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었다. 자신의 욕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해 주되, 상황이 맞지 않아 살 수 없음을 알려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불만이 생겼다. 내 태도가 미적지근하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따끔하게 혼을 내어야 하는데, 그러질 않으니 답답하다는 말이었다. 안된다고 한 번 말하면 알아듣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면 되는데 아이가 그러질 않으니 화가 난 것이다. 그 마음이 엉뚱하게 튀어나와버렸다. '너 때문에 아이스크림 못 먹는다'라고.




부모는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가르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절제의 미덕이나 회복탄력성 같은 것들을 자연스레 쌓아간다.


이 과정 중에 우리는 많은 실수를 한다. 아이가 부모의 지침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중임을 잊어버리고, 아이의 감정까지 통제하려 드는 것이다.


욕구가 좌절된 아이의 화나 슬픔 따위가 부모를 향한 반항이라고 착각한다. 안된다는 한마디에 세상이 무너진 듯 울음을 토해내는 아이가 부모를 공격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의 슬픔이나 화를 부모가 감당하는 (셋 셀 때까지, 3분 따위의) 시간까지만 허용하고,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부모는 아이 자신도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을 아이가 멈추지 않는다고 혼을 낸다. 너는 왜 슬프냐고, 너는 왜 화를 내는 거냐고 밀어붙이는 꼴이다. 터져 나오는 울음과 억울함을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사랑하는 부모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부정당한 아이는 부모가 무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나쁜 아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이나 화 따위의 감정을 나쁜 것이라 여기고, 그런 감정들을 억누르거나 회피한다. 욕구나 감정을 꼭꼭 숨기는 방법을 터득한 아이는 착한 아이로 자란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외면하고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휴.

오늘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가 떼를 썼다.

가장의 의견을 존중하여 기념품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아이들은 계획된 소비를 배웠고, 엄마는 가장을 존중하는 지혜를 배웠고, 아빠는 아이의 마음을 배웠다.


우린 유익한 실내 동물원 나들이를 마무리하고, 바로 옆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