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뼛거리는 아이들. 방법을 모르는 건가 싶어 친절하게 안내해주려 색종이로 만든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이런 거. 만들어놓고 이제 안 가지고 놀잖아. 이런 걸 담는 거야."
그래도 멈칫하는 아이들. 더 구체적이고 단호하게 알려줘야겠다 생각했다. 플라스틱 자동차가 눈에 들어왔다. 비타민 사탕과 함께 판매되는 장난감이다.
"이 자동차도. 집에 자동차가 너무 많잖아. 안 가지고 노는 거 여기 담는 거야."
종이로 만든 결과물을 들고 물어보았다.
"이건 이제 안 쓸 거지? 버리자. 너무 많아. 다음에 또 만들면 되잖아."
은이의 얼굴이 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은이가 종이 블록을 집어 들었다.
"이거 버릴래."
"응? 이건 나나 침대잖아. 버리는 거 아니고 여기 정리해서 쌓아두면 돼."
"아니, 버릴 거야. 이것도. 이것도."
은이는 눈앞의 장난감은 모조리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종이로 만든 것들이나 저렴한 장난감들은 그냥 눈을 감았다. 곧이어 은이는 십만 원이 넘는 블록들까지 버리겠다고 집어 들었다. 급기야 역할놀이 필수품인 종이컵도 바구니에 담겼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이는 자신이 아끼던 모든 것들을 쓰레기로 만들었다.
아니, 솔직하게 적어야지.
나는 아이가 소중하게 아끼는 장난감들을 쓰레기로 만들었다. 장난감의 가격과 교육적인 의도에 따라 장난감들을 등급별로 나누었고, 최하위 등급에 속하는 물건들은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인 나의 욕구에 맞추어 장난감들을 평가했다. 아이가 물건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따위는 배려하지 않았다.
아이에겐 장난감의 가격이 중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만든 종이 작품과 2천 원 플라스틱 자동차와 20만 원 자석 블록은 아이에게 차등이 없는 물건들이었다. 굳이 의미를 담자면, 아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만들어 낸 장난감들에 아이는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나와 정반대의 순서로.
아이는 상처 받았다.
자신에게 자랑스럽고 소중한 종이 작품들을 '쓰레기'니 버리라고 하는 엄마에게.
자신이 직접 고른 재미난 장난감들을 '쓰레기'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알려주었다.
나에겐 엄마가 사 준 비싼 장난감들도 쓰레기예요.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게 아니에요. 나의 것들을 존중해줘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모든 감정을 억누르며 참아내는 아이. 정성스레 만든 '나나'의 집들을 허물어서 쓰레기 바구니에 담는 아이. 잠시 멈춰보라는 말에도 "이것도 버릴 거야."라는 말만 하며 물건들을 바구니에 담는 아이.
잘 놀던 아이가 '버리자'는 엄마의 말에 얼마나 놀랐을까. 가슴이 먹먹해졌다. 미안함에 내 감정이 복받쳐 사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최대한 담담하게, 진심을 담아 잘못을 고백했다.
"엄마가 미안해. 은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인데 엄마가 쓰레기라고 했어. 엄마 생각이 너무 짧았어. 정말 미안해."
바구니에 담았던 물건들은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아이들이 버릴 준비가 된 것들은 그대로 두었다. 대충 눈으로 훑어보니 예상했던 종이조각들이다. 이럴 거면 애들 등원했을 때 살짝 정리할걸.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 따르면, 5세인 내 아이들은 주도성-죄책감의 단계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고 싶어 하며,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자아상이 성립되는 시기다. 반대로 부모가 강압적인 태도로 아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꺾어버리게 되면, '내가 원하는 것은 잘못된 것, 나는 나쁜 아이'라는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부모에게는 아이의 주도성을 존중하면서, 조화로운 사회성을 길러주는 훈육의 태도가 필요하다.
이게 말로는 참 그럴싸하고 쉬운데, 육아 현장에서는 참 묘하게 헷갈리는 지점들이 있다.
장난감 사건만 해도 그렇다. '정리'를 알려주는 것이 나의 목표였지만, '아이의 주도성, 아이의 영역'을 부모라는 이유로 침범했다. 정리가 필요한 물건들을 아이와 충분히 협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의중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인 내 눈에 필요 없는 것으로 인식된 것을 버리는 것이 정리였기 때문이다. 참 다행히도 멈추었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 부모의 뜻에 맞추어 모든 행동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던 순간, 멈추었다. '자신의 것을 쓰레기로 만들어버린 엄마를 향한 분노'를 '쓰레기를 소중하게 여겼던 나의 잘못, 죄책감'으로 대체하려던 아이. 참으로 아슬아슬했다.
요즘 '자기 주도'라는 말이 대세다.
자기 주도 학습, 자기 주도적인 인생 등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학습 또한 주도적으로 성취하기를 원한다.
자기 주도 : 자신의 일을 주동적으로 이끌어 나감
'자기 주도'는 어디에서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가르친다는 것보다 지켜준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5~7세, 주도성이 꽃을 피우는 이 시기에 아이의 주도성을 최대한 지켜주려는 부모의 노력.
아이의 의지와 사회의 규칙들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부모의 진지한 애씀.
거창하게 표현되었지만,
현실 육아에서는 '아이만의 규칙으로 잘 정리된 아이의 공간을 눈을 감고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됨은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