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부터 아빠랑 잘 해결할게

다섯 살 아이들에게 잘 지내라고 하기 전, 나부터 잘 지내기

by 자유로운 풀풀

나는 아이들에게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은근히' 강조한다.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두 딸아이의 의견 다툼이 일어날 때마다 온 신경이 바짝 곤두서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라기보다 나의 정신적 평온함을 위해 아이들에게 '우애'를 강조할 때가 많다.


나의 이런 성향을 파악하고 있기에, 여러 가지 육아 이론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들어가지 않는 세세한 문장들은 종이에 적어 벽에 붙였다. 아이들의 다툼을 '감정싸움'이 아니라 '문제 해결력을 기르고, 사회성을 함양하는 계기'로 바라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아이들이 스파크를 튀기며 투닥거릴 때,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나갔다. 아이들 곁에 서서 '이럴 때는 어떤 마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법이 좋을지, 어떤 말을 할지'를 하나하나 짚었다. 때로는 나의 감정에 휩싸여 멘탈을 붙드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지만, 방문마다 붙여놓은 '아이들의 다툼 대처 방법'을 꾸역꾸역 삼키며 매뉴얼대로 하고자 노력에 노력을 더했다.


아이들이 48개월이 넘고, 다섯 살 여름을 맞이하자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아이들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 쌍둥이들의 의견 충돌이야 많을 때는 분단위로 일어나기도 하니, 하루에 통과하는 내, 외적 갈등의 80% 이상은 아이들끼리 풀어가는 것 같다.


뿌듯했다. 아이들이 의견을 조율하며 노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참 잘 키웠군'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깨에 뽕이 쑤욱 올라갔다.


그런데 오늘, 내가 나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아이들이 잠든 후, 기분 좋게 세수를 하러 들어가다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건 어때?"

"좋아. 이번에는 이렇게 하고, 다음에는 내 말대로 해 보자."

"그래, 알겠어."

다섯 살 된 두 딸들이 종이컵을 늘어뜨려놓고 가게 놀이를 하던 중 나눈 대화의 일부다.


"아니, 그건 아니지. 내 말을 들어보라고."

"당신은 당신 말이 매번 맞지? 내가 뭔 말을 해."

"회피하지 말고, 귀 열고 들으라고!"

삼십 대 후반의 남편과 내가 육아 방식의 사소한 차이를 두고 나눈 대화의 일부다.


이제껏, 갈등 상황 해결만큼은 '아이들을 잘 키웠다는 자부심'을 느꼈고, '내가 참 모범적인 엄마구나' 자아도취에 빠졌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모범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갈등 상황에 중재자로 나선 내 표정은 똥을 씹다 못해, 화가 머리끝까지 차 오른 모습이었다. (안 봐도 다 안다.) 남편과의 갈등 상황마다 나는 모범이 아니라 '반면교사의 모범적인 예'였으니까. 내 말만이 옳다는 독불장군이 바로 나였으니까!


오늘 하루, '두 아이의 대화'와 '남편과 나의 대화'가 내 자부심에 찬물을 확 끼얹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대화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 덕분에 내가 대화법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30년을 넘게 살면서 제대로 익혀본 적 없는 갈등 해결 기술을 더듬더듬 짚어가며 아이들에게 말한 꼴이었다. 이제 막 가나다를 배우기 시작한 7살 아이가 7살 친구에게 가나다를 알려주는 모습이랄까? 청출어람인 아이들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다섯 살 꼬마 아가씨들의 가게놀이와 삼십 대 후반의 성인 남녀의 육아 방식 토론을 비교하는 것이 우스워보일지도 모르겠다. 고작 가게 놀이 따위를 최소 20년을 책임지고 가야 하는 자녀 양육에 비하다니! 헛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일의 경중이야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느끼는 갈등 레벨은 아마도 비슷하지 않을까? '다섯 살 아이들의 가게 운영'과 '삼십 대 후반 부부의 육아'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 순간 그 사람에게는 맞닥뜨린 갈등 상황이 최대의 난코스라는 사실은 같은 것이다.


아이들은 수시로 부딪히는 서로 다른 욕구들을 배려와 존중으로 조절해 가는 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다섯 살 아이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지극히 주관적인 엄마의 시선이며, 컨디션이 좋을 때라고 조건을 건다.)


그런데 나와 남편은 어떠한가. 당장 나의 욕구가 급하니 이것부터 해결하고 보자며 서로를 밀어낸다. 존중이 아닌 자만을 내세우고, 배려가 아닌 욕망을 앞세운다.




아이들은 배운 대로 한다. 완벽하지 않은 엄마지만 벽에 붙은 문장을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엄마의 애씀을 본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아이는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을 따라간다.


나부터 잘해야지. 아니, 나나 잘해야지. 아이들에게 잘 지내라고 말하기 전에, 나부터 남편이랑 잘 지내야지.


남편과 내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들의 표정이 떠오른다.

"이제 그만해~"하던 아이들의 눈빛.


눈빛으로 알려줘서 고마워.
엄마부터 아빠랑 잘 해결할게.
너희들이 스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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