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정엄마가 급성 알레르기 쇼크로 응급실을 다녀오셨다. 다행히 집중치료실에 들어가 응급처치를 받은 후 괜찮아지셨다며, 다음 날 전화 연락을 통해 듣게 되었다. 죽음은 늘 눈앞에 있다는 상투적인 문장을 온몸으로 통과해낸 기분이었다. 응급처치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많은 생각이 오갔다. '지금 주어진 시간이 선물이구나, 함께 숨 쉬는 가족들과 한 번 더 웃음을 나누어야겠구나,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구나.'같은 책에서 본 구절들이 둥둥 떠다녔다.
'만약, 내가 갑자기 떠나게 된다면?'
생각은 여기까지 미쳤다. 다섯 살 된 두 딸들. 앞 길 창창한 남편이야 슬픔을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되겠지만, 딸들이 눈에 밟힐 것 같았다. 적어도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절로 들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들은 두 딸에게 다 해 주고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이들 곁에 함께하며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고픈 마음은 들었지만, 아이들에게 더 받고 싶은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이미 아이들에게 받을 사랑은 다 받은 기분이었다. 아니, 아이들이 내게 준 사랑이 나의 것보다 훨씬 크다고 여겨졌다.
내리사랑 : 손윗사람이 손아래 사람을 사랑함
치사랑 : 손아래 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함
흔히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들 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에 비할 것이 못된다는 뜻이다. 난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부모님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품고 살았다. "내가 더 잘해야지, 부모님을 더 잘 보살펴드려야지."하고 다짐하며 살아왔다. 한량없는 부모의 은혜는 갚을 길이 없으니, 평생을 애쓰며 갚아야 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 아이를 낳아서 키워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식은 태어나는 그 순간 부모에게 세상 하나뿐인 큰 사랑을 안겨준 것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아이를 초음파 화면으로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 첫 태동을 느끼며 살아있음에 감사했던 순간. 막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고 '잘 살아가겠노라' 다짐했던 일. 나의 손짓 한 번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던 아이. 세상에서 엄마를 가장 사랑한다며 매일 쏟아내는 달콤한 고백들. 실수투성이인 나에게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어느 곳에서도 받아본 적 없었던 사랑을 쏟아내는 두 딸들. 때로는 그 넘치는 애정에 도망쳐버리고 싶을 때도 '많을 만큼' 나는 열정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다.
어쩌면 부모는 자식을 기르며 그 사랑을 배워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준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내 부모에게 받은 대로 너희들에게 내 모든 사랑을 준다고 생각했고, 어느 즈음에는 내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까지 너희들에게 주겠다고 다짐했으며, 나아가서는 내 영혼을 갈아서라도 너희들에게 내 모든 것을 주겠노라 말했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1602일이 되었다. 이제야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들은 이미 사랑을 주고 있었다.
좌충우돌 실수투성이인 한 여성을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에미의 시행착오들을 온몸으로 함께 해 주었다.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는 그 순간까지도 내 아이는 맹목적인 사랑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내게 '나의 것보다 넘치는 사랑'을 이미 주고 있었다.
받을 사랑은 다 받았다.
아이와 함께했던 매 순간이 축복이요, 사랑이었다. 무언가를 더 할 필요도 없었다. 후회 없을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었다. 함께 살아감으로 모든 사랑을 다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