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물감으로 그림 그릴래

환경을 조성하고 배움을 기다리기

by 자유로운 풀풀

"엄마, 물감으로 그림 그릴래!"

"어디서 그릴래? 물 떠 올게."


아이들이 베란다에 자리를 잡았다. 나지막한 이유식 의자에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떤다. 유아용 스툴을 구입해보았지만, 물감을 놓는 위치가 애매해져서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아이들이 이백일 무렵 구입한 의자는 아이들의 이젤과 찰떡궁합이다. 작은 테이블을 놓아 물감을 놓아보기도 했지만,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아이들이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기 불편해서 밀어버렸다. 바닥에 위치한 고체 물감은 사용하기에도, 정리하기에도 편리하다.


우리 집의 물감놀이는 몇 년간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왔다.


처음에는 김장 매트로 시작했다. 바닥에 김장 매트를 깔았다. 그 위에는 4절 도화지를 여러 장 깔아 물감 색이 드러나도록 했다. 옆에는 퍼포먼스용 물감과 일회용 접시를 준비했다. 김장 매트 밖에서 손가락 끝으로 깔짝이던 아이들은 발을 집어넣고, 물감을 벽에 바르며 물감과 친해졌다.


욕실로 장소를 옮겼다. 물감과 함께 목욕을 했다. 욕실 벽에 전지를 여러 장 붙이고, 대용량 수채물감을 물컵에 풀어줬다. 세면대는 빨갛게 파랗게 노랗게 물들었고(지금은 다 지워졌다), 아이들은 물감을 몸에 뿌렸다, 종이에 뿌렸다 하며 깔깔거렸다. 장난감 자동차는 필수 옵션이었다. 말문이 제대로 트이지 않은 아이들은 '우앙, 부앙!'을 외치며 물감과 함께 했다.


물청소가 가능한 베란다로 장소를 옮겼다. 베란다 창문에 전지를 붙여두고 시작한 물감놀이는 청소년용 이젤을 구입하면서 그럴듯한 폼을 띄기 시작했다. 이젤, 의자, 테이블, 대용량 수채물감, 고체 물감, 여러 두께의 붓, 팔레트용 접시로 완성된 물감놀이 아니,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공간'은 꽤 그럴듯했다.


물론, 이젤에 도화지를 준비해주었다고 해서 36개월 된 아이들이 처음부터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도화지는 장식용이었다. 아이들은 애써 준비한 고운 물감들을 투명한 물통에 이리 휘젓고 저리 휘저었다. 마음껏 놀아보라며 종이컵과 플라스틱 컵을 가져다주니 아이들은 시커멓게 변한 물을 이리저리 옮기며 급기야 장난감들까지 총동원하여 놀았다.


고운 자태로 그림을 그리는 아름다운 풍경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길고 긴 하루의 육아 중 단 10분만이라도 '엄마를 찾지 않고' 재미나게 놀아주는 고마운 물감놀이. 딱 거기까지였다. 재미나게 놀면서 붓이 손에 익고, 물감의 텍스쳐가 눈에 들어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물감이 놀이의 한 도구로 편안해지기를 3년.

돌 무렵부터 시작한 물감놀이는 아이들이 4살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럴듯한 그림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감으로 그리기에 꽂히는 날이 생겼다. 커다란 동그라미 하나가 작품의 하나였던 시간을 지나, 동그라미가 두 개가 되고, 선이 추가가 되었다. 색연필로 그리던 형태를 붓과 물감으로도 표현하기 시작하며, 그림에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무념무상으로 동그라미만 그려대던 것처럼 보이던 시간이 지나자, 작품을 스토리텔링을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초등학생 아이들과 물감을 사용하는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아이들의 편차가 꽤 컸다. 저학년 때 붓 사용법, 물 조절하는 법 등을 배우기는 하지만, 물감을 능숙히 사용하게 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그렇기에 고학년이 되어도 크레파스가 가장 편한 아이가 있고, 물감은 바탕색으로만 사용하는 아이들도 있다. 물감 사용에 능숙한 아이들도 있지만, 정형화된 미술 학원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재료 사용의 두려움'으로 인해 '표현하는 즐거움'이 반감되는 것이다. 나의 경험상, 고학년이 될수록 미술 수업을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들의 숫자는 늘어났다.


내 아이들이 미술을 전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물감을 쥐어준 것이 아니었다. 연필을 쥐고 연습장에 끼적이는 것처럼, 붓을 물감에 찍어 도화지에 펴 바르는 몸짓이 아이들에게 부담이 없기를 바랐다. 붓과 물감 사용이 편하고, 다채로운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재미를 알기를 바랐다. 그런 소박한 바람으로 아이들에게 물감을 쥐어주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한 일은 재료 구입과 뒷 청소뿐이었다. 동그라미를 그려보아라, 여기에 색칠을 해라, 선을 연결해보아라 따위의 서툰 조언은 일절 하지 않았다. 물감을 가지고 놀고 싶다면 가능한 군말 없이(물론 10번 중 3번은 군말을 했다.) 펼쳐주고, 근처에 앉아 "와! 와~!" 탄성만 질렀다.


아이들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순식간에 4절 도화지 한 장의 작품을 완성하고는, 새로운 도화지를 달라고 요구했다. 다 마른 작품을 벽에 붙여두면 우리 집이 미술관이 되었다.


환경 조성과 기다림


나는 아이들이 배웠으면 하는 것들을 환경으로 만들었다. 물감 사용을 능숙하게 하기를 바랐기에 물감 놀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아이들은 내가 만든 판에서 놀았고, 나는 곁에서 기다렸다.


기대하지 않았다. 지금도 기대는 없다. 피카소 같은 거장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도, 미술로 유명한 H대를 갔으면 하는 마음도 없다. 성취에 관한 큰 기대 없이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 하나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좋은 것을 배움으로 가져가면 감사한 일이고, 거기에 낯섦만 느끼지 않아도 다 된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그랬기에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별 말없이 물감 자국을 닦아내는 일'이 가능했으리라.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물감으로 표현하는 것도 좋아한다. 자신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기까지 한다.


비단 물감으로 그리기에만 해당되랴.


글자 깨치기 같은 학습부터 등원 준비 같은 기본적인 생활습관에 이르기까지. 부모에게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거기에 능숙해지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냥 두면 알아서 하더라."의 방치가 아니다.

"하나하나 다 알려주고 바짝 챙겨줘야 뒤처지지 않지."의 통제가 아니다.


자녀를 향한 믿음에 바탕을 둔 실천적 노력


이를 위해, 오늘도 육아서를 다섯 줄 읽는다. 나의 욕심을 내려놓으려 한 문장이라도 쓴다. SNS 속 뛰어난 아이가 아니라 우리 집 거실의 내 아이를 본다.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가 되어있음을 믿는다.

오늘도 1cm 자랐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