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다가,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상념

by 자유로운 풀풀

차가운 물로 그릇에 묻은 거품을 헹궈냈다. 고무장갑 너머로 시원한 온도가 전해진다. 음식물로 얼룩진 그릇이 말끔한 얼굴을 내민다.


"살아야지, 움직여야지."


산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그릇에 묻은 음식물을 걷어내고, 수세미에 거품을 내어 그릇을 박박 문지르고, 차가운 물을 틀어 그릇을 헹궈내는 것. 살아있다는 의미였다.


움직이지 않고 책 속에 똬리를 틀었던 지난 시간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육아를 위한 무언가를 하고 나면

이내 탈진하듯 몸을 누이고 책 속으로 파묻고 들어갔다.

아무도 날 방해할 수 없는 곳으로.

책은 나의 도피처였다.


이젠 살아야지.


살아 펄떡이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좀 받으며

나도 나의 몸을 움직여야지.

나의 삶을 살아야지.


누군가를 위해 따끈한 밥을 뜨고, 냉장고에 잠자고 있던 반찬을 끄집어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가위로 싹둑 잘라내는 과정. 살아감을 선택하는 용기였다.


억지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해야 하니까 몸을 일으키고, 해야 하니까 밥을 짓고, 해야 하니까 재테크 강의를 듣고, 해야 하니까 아이들을 챙겼다. 해야 한다고 점철된 나의 모든 행동들은 해내야만 하는 임무였기에 내 어깨를 짓눌렀다.


불현듯 알아챘다.

손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물의 감각에, 묵묵히 그릇을 헹궈내며 고개를 돌려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는 나의 모습에 꼭꼭 감춰진 진실을 알았다.

난 살아가고 있었다.

유한한 생을 살아가는 나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 있었다.


알아챘으니 이제는 선택지가 생겼다.

해야만 하니까 하느냐,

사는 맛으로 하느냐.


사는 맛으로 순간을 사는 것.


지금 당장,

콩나물을 씻는 나의 태도가 된다.


마지못해 콩나물국을 만드는 내가 아니라,

콩나물을 씻으며 손에 느껴지는 감촉을 즐기는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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