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친구 초대는 처음이라

몇 주를 고민하고, 하루 종일 예민했던 아이 친구의 방문

by 자유로운 풀풀

기관 생활을 하지 않던 아이들은 '친구'라는 관계가 없었다. 누군가를 초대하고,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가는 것은 어른들의 일이었다. 책 속에 수시로 나오는 Sleepover는 동경의 대상일 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고, 친구가 생겼다. 게다가 단짝 친구가 생겼다. 심지어 단짝 친구 엄마가 내게 먼저 연락을 했다. 아이들이 친한 것 같은데,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부담스러워 미루던 만남은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성사되었다.


아이 친구의 집에 방문한 날, 우리 집과 다른 풍경에 너무 놀랐다. 단정하고 정갈한 살림 솜씨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우리 집으로 초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자신이 없었다. 내겐 너무 익숙한 우리 집 안의 풍경이 누군가에겐 쇼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엄마와의 만남은 종종 이루어졌다. 집을 방문한 것은 한 번이었지만, 단지 내 놀이터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때마다 "저희 집에 한 번 놀러 오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쏙 들어갔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초대는 하고 싶지만, 대조적인 집안 풍경에 감히 초대를 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마음에 짐만 쌓여갔다. 초대를 한 번은 해야 할 것 같은데,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러기를 몇 주가 흘렀다. 그러던 중 아주 우연한 기회가 생겼다. 그룹 체험 수업을 함께 진행하게 되었는데, 그 장소가 우리 집이 된 것이다.


체험 수업은 6시 40분. 나는 그 엄마에게 6시쯤 일찍 만나서 아이들이 함께 노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흔쾌히 승낙하는 아이 친구 엄마에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희 집, 정말 엉망이에요."


오늘, 아이들의 단짝 친구가 놀러 오는 날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아이와 그 엄마가 우리 집에 방문하는 날이다!


"위이잉."

나는 청소기를 다섯 번 밀었다.


"그걸 어디다 두면 되려나-."

나는 30분에 한 번씩 일어나 집 안을 휘휘 돌았다.


약속시간 4시간 전부터 우왕좌왕했다. 엉망인 집안을 좀 덜 엉망으로 보이게 하려는 마음에 분주했다. 벽 여기저기에 붙여놓은 필사, 계획들이 민망하여 다 떼어내고 싶었지만, 떼었다가 다시 붙이는 게 더 일이라 포기했다. 바닥에 머리카락 하나라도 걸리적거릴까 매의 눈으로 거실 바닥을 훑었다. 내 머릿속의 감시자가 끊임없이 외쳤다.


그 사람이 널 극성 엄마로 볼 거야!

집안 꼴은 이게 뭐니. 너 살림에 손 놓은 거 다 들통났어!

너 이제 소문 다 났어. 이제 부끄러워서 얼굴 어떻게 들고 다닐래!


흐억.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고 싶었다. 아이 친구네 집을 가기로 한 약속을 취소하고 싶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내 집을 오픈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어서 오세요, 많이 덥죠?"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아이 친구 엄마와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아이들은 조잘거리며 신나게 탐색을 시작했다. 다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서로 배려하며 잘 노는 모습이 기특했다.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아이 친구 엄마가 말을 꺼냈다.

"아, 이렇게라도 적어둬야 제가 뭘 하게 되더라고요."

멋쩍은 웃음을 짓는 나를 보며 아이 친구 엄마도 웃는다. 어라? 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분명 상대 엄마가 비웃거나, 놀라거나, 이상한 시선을 가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엄마는 따뜻한 미소를 띠고, 너무 좋아 보인다며 내게 이것저것 물었다.




사적인 공간에는 비밀스러운 것들이 담겨 있다. 혼자만 보고 싶은 것들도 채워져 있다. 그림이나 음악 같은 취향에서 시작하여 미래를 설계하는 비전보드에 이르기까지. 공간을 채우는 무언가를 통해 그 주인을 알게 된다. 물질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의 힘, 에너지가 있다. 주인이 머무르는 분위기가 공간에 어떤 이미지를 부여하기도 한다.


우리 집에는 5년의 육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에서부터 냉장고, 문틀까지 빼곡히 붙어있는 육아 계획, 필사 내용까지. 거실을 한가득 채운 아이의 물건들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활동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노력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숨기려야 숨겨지지 않는 민망하고 부끄러운 노력들이 배어있다.


나의 공간, 우리 집에 누군가를 들인다는 것은 용기였다. 잘된 것만 보여주고 싶고, 애쓰는 것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이 친구 엄마를 초대한다는 것은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너무나도 긴장되었고 걱정되었다. 어쩌다 보니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만 싶던 일이었다.

청소기를 다섯 번 밀어도 우리 집이 다른 집이 되지는 않았다. 집안 가득 느껴지는 애씀의 흔적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낯선 타인에게 나를 평가받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아이 친구와 그 엄마가 함께 왔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고, 그 엄마와 나는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염려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애쓴 흔적들이 그 엄마에게는 좋은 시도로 다가간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 엄마에게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이었다.




나도 아이 친구 초대는 처음이라 몰랐다.

청소기를 다섯 번을 밀어도 변하는 것은 없고, 내 마음만 위로된다는 것을.

정리를 해도 우리 집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남들은 나에게 그리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내게 엄청난 것들이 다른 이들에겐 사소하다는 사실을.


우리 집을 까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하다.

들고 있던 문제를 하나 해결한 기분이다.

무슨 소문이 나든 그게 뭐 대수냐 싶다.

구구절절 머리 싸맨 시간들이 부질없단 느낌이다.


확실히 알았다.

내 건 내게만 특별할 뿐, 남에겐 그냥 남 일일 뿐이다. 쓸데없는 고민말자.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연아, 은아.
엄마도 친구 초대는 처음이라 엄청 긴장했어.
하고 나니 별거 아니네?
하루 종일 예민했던 엄마를 너그럽게 이해해줘.
그래도 다음엔 친구랑 밖에서만 만나자.



아이 친구의 방문, 별거 아니란 걸 알았다. 그래도 두 번은 하고 싶지 않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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