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나를 통과하며 나온다. 진정성보다 꾸밈이 많은 글은 쓰기가 버겁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문장이 삐그덕거린다. 매끄럽게 이어진다 하더라도, 발행을 누르고 나면 왠지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글을 쓰는 순간 진심을 가렸다는 마음 때문이다.
글의 소재는 일상과 연결된다. 내가 쓰는 글들은 대부분이 육아, 주부, 부부의 삶이다. 거창하게 표현하면, 한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역할들을 해 내는 과정이 곧 소재다. 24시간 중 절반 이상을 육아에 힘을 쏟고 있기에 발행되는 글들의 대부분은 육아이다.
나의 글은 읽는 독자가 분명하다. 엄마, 아내의 역할을 담당하는 기혼 여성. 이렇다 할 육아 정보를 담고 있는 글도 없기에 '가벼운 에세이를 읽는 사람들'로 더욱 좁혀진다. 의도하지는 않지만, 내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에 맞추어진 글을 적다 보니 그리 되었다.
그렇기에 고민이 되었다.
"어디까지 써야 할까?"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는 적절히 감춘, 북받치는 감정은 절제한, 읽는 이의 마음 한편에 닿는 글. 적정 수위를 지키며 글을 쓰는 것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하다.
고민이 시작되면 글쓰기는 멈추게 된다.
이것저것 재어보고 따져보다 한 문장은커녕 단어 하나도 적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어버린다.
이럴 땐, 그런 마음을 쓰는 게 답이다.
눈치 보여서 글을 못 적겠어요.
매번 이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아서 못 쓰겠어요.
일상이 평범한데 어찌 다른 소재를 가져오나요.
복잡하고 뒤숭숭한 마음을 글로 툭툭 털어내고, 맑아진 마음으로 새로운 글을 쓰는 것이다.
이런 글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이것도 글이 될 수 있다는 간절함으로.
살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참 많다.
뭔가 잘 되는 듯했는데, 이런저런 상황들로 더 이상 옴짝달싹하기 어렵게 느껴질 때.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던가.
요리를 배워보려고 마음먹었는데, 사회의 규정된 역할 안에서만 움직이려는 듯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던가.
아이들 돌봄에 더 집중하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엄마, 갑자기 왜 그러세요"라며 응수한다던가.
분명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것인데 예상치 못한 환경의 벽에 부딪힌다. 벽이 단단하여 의지로는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다. 의도는 좋았지만, 그 의도마저 의심이 된다. 하고자 했던 일, 진행하던 활동을 멈추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그냥 하려던 대로 하세요.
'환경의 벽, 애초에 잘못된 의도'는 우리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시도하려는 용기. 밀고 나갔을 때 감각으로 느껴진 긍정적인 에너지. 몸을 타고 흐르는 엔도르핀. 평소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함에 '이전의 나'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 신기한 것은 '이전의 나'가 불러온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프레임 덕분에 현실에서 일어나는 상황들도 그리 보아진다는 것이다. 영어 공부를 하든 하지 않았든 회사는 일들을 만들어 내고, 사회적 역할이든 뭐든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값진 재능이며, 아이의 표현은 어떠했든 부모의 자리를 생각한다는 것은 멋진 일인데. 스스로가 불러일으킨 낯 섬, 두려움 때문에 '용기 있는 시도'마저도 평가절하 해 버린다.
그럴 땐, 그냥 하려던 대로 하는 게 정답이다.
외부적 환경이든 내부의 마음이든 여러 가지 제약들이 보일 수 있다. 뭐 어떤가. 벽은 넘어서라고 있는 것이고, 너무 높으면 슬쩍 피해 가면 그만이다. 벽 앞에 서서 멈춰 있으면 벽돌만 마주하지만, 살짝 고개를 틀어보면 사방으로 뻗은 길들이 보일 테니.
과정 중 실수할 수도 있다. 뭐 어떤가. 실수가 무서워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있다가 뒤늦게 후회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실수를 해보아야 다음이 있고, 나아갈 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