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어제 잠시 햇살이 따가웠다. 7월의 뜨거운 햇살만큼은 아니지만, '8월은 아직 여름이라고!'하고 외치는 느낌이랄까. 오래간만에 쏟아지는 태양빛이 반갑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날이 흐리다. 기상청의 예보가 들어맞을 것 같은 하늘이다. 저녁 즈음이면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지 않을까 싶은 오전.
아이들 등원 후, 씩씩하게 걸었다. 만보계로 측정을 해보니, 등원 후 잠시 걷는 그 시간 동안 5000보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운동량이 부족하다며 다그치기만 했는데, 눈으로 수치를 확인하니 신체운동 자신감이 좀 상승되는 느낌이다.
걷고 걷다가 새롭게 핀 꽃들을 발견했다. 산책길에 나란히 줄지어 심긴 남천나무 사이사이로 이름 모를 덩굴식물들이 꽃을 피웠다. 우산 쓰고 산책하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초록 잎사귀만 무성했다. 후드득 쏟아진 비와 뜨겁게 쏟아진 햇살 덕분인가. 앙증맞은 노란 꽃봉오리를 터뜨리고는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운동장을 몇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또 다른 꽃을 발견했다. 이번엔 파란 꽃이다. 산책로 옆 숲에서 비죽이 자라난 덩굴 잎사귀. 애교스러운 파란 꽃잎을 펼치고는 당당하게 뽐내고 있었다. 바로 뒤에선 한 달 전, 하늘거리는 분홍 꽃잎을 흩날리던 나무가 서 있었다. 선녀 옷자락 같은 연분홍 꽃잎에 홀린 듯 사진을 찍었었다. 언제 시든 걸까. 선녀의 옷자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싱그런 초록 잎만 무성하다.
햇살이 비췄고, 비가 내렸다. 그리고 다시 햇살이 들어왔고, 또 비가 내렸다.
무심한 듯 반복하는 대기의 흐름 속에서 나무들은, 풀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통과한다. 때가 되어 꽃을 피우고, 꽃을 떨구고, 열매를 맺었고, 씨앗을 터뜨려 새 생명을 희망한다. 어제는 이 나무에서 꽃이 폈는데, 오늘은 이 풀에서 꽃이 핀다. 크기도 색도 다르다.
운명 지어진 대로 자연의 도에 따라 움트고, 피고 지는 반복이다.
한다는 것,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난 그것을 넘어서는 애씀을 추구했다. 억지로 무엇을 더 하려고 했다. 애쓰며 노력하고 안달복달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한다'는 게으름의 또 다른 말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그냥 할 수가 있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한다는 것, 움직인다는 것은 결과를 조종하려들지 않는 행위이다. 의도만 있을 뿐, 통제가 없다. 뿌려진 대로, 담긴 가능성대로 자연스레 발아한다.
'한다'와 '하지 않는다' 사이의 틈. 이 틈을 통해 가능성이 열린다. 열린 문으로 확장된 세계가 펼쳐진다. 두 개의 분리된 선택의 벽이 허물어진다. 넓은 세계가 드러난다.
'걸어야 한다'와 '안 걷고 말지'의 사이에는 '몸이 즐거운 선택'이 있다.
'아침을 먹어야 한다'와 '그럴 거면 먹지 마'의 사이에는 '배고픔의 신호에 반응하는 영민함'이 있다.
'유치원을 가야 한다'와 '그냥 안 갈래'의 사이에는 '좌절된 욕구로 흐트러진 감정을 조절하는 배움'이 있다.
무엇을 위해서, 어떠한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한 행위는 성공과 실패만이 존재한다. 몸은 경직되고, 사고는 정지하며, 감정이 막힌다.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갇힌다. 여러 갈래로 열린 가능성의 문들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던져진 이 자리. 이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풀처럼, 나무처럼. 깊은 산골에 떨어지든, 어여쁜 화분에 옮겨지든. 나를 둘러싼 조건들 속에서 제 모습을 싹 틔우고, 잎사귀를 뻗어 올리며 살아간다.
빨간 꽃을 피운 내가 노란 꽃을 부러워한다고 노랗게 되지 않는다. 노랗게 되려 노란 물을 암만 들이켜도 난 빨간 꽃을 피울 뿐이다. 어여쁘게 피어오른 내 꽃은 보지도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낸다. 꽃을 떨구고 잎사귀마저 떨어지고 뿌리만 남은 나는 생각하겠지. "다음엔 꼭 노란 꽃을 피울 거야." 혹은 "내 꽃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구나."
내 것을 한다.
결과를 통제하지 않고 의도대로 움직인다.
옳고 그름, 낫고 못함을 따지지 않는다. 내게 좋은 것, 하고 싶은 것, 주고 싶은 것을 한다.
6개월 뒤, 1년 뒤, 5년 뒤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예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미래에 살며 현재를 보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 주어진대로 흘러가는 대로 한다.
육아도, 나의 일도.
아이가 행복하고, 나도 행복한 그 어느 지점에 머무르며
움직이고 행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