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만 냈던 일주일이 지나간다

혼자 있고 싶은 날들

by 자유로운 풀풀

금요일이다. 내일은 토요일이다. 일주일이 마무리되어간다.


만족스러운 마감, '이것 하나는 했지'로 마무리되는 일주일이 있다. '나름 이건 좀 신경 썼어'라던지, '나들이를 다녀오긴 했어'라든지.


이번 주는 최악이었다.

아이들에게 매일 고함을 질렀다. 한번 지르고 끝이 아니라 1절, 2절, 3절. 굳이 '네가 잘못했어.'라고 도장을 콱 찍어야만 하는 화. 남편에게도 화를 냈다. '네가 잘못한 거야, 눈치가 없는 거야.'라며 확인 사살을 해야만 했다. 그러고 싶었다.


난 무기력했다. 어느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 남편과 함께 주말 동안 6 시간 떨어진 곳을 다녀오기도 했다. 수요일에는 화이자 접종을 했다. 여러 핑계들로 월요일, 화요일에는 화만 냈고, 수요일, 목요일에는 침대에 드러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금요일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았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삐져서 미끄럼틀 아래로 들어간 연이가 미웠다. 달래주기 싫었다. 자기가 삐진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난 7살 언니가 되어 연이를 외면했다. 울며 화내며 고함지르는 아이 곁에서 더 고함을 지르는 엄마.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서 연이와 나는 그렇게 싸웠다.


내가 바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숨겨진 욕구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였다.


혼자 있고 싶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 상태에서 머무르고 싶었다.


가능한 바람일까? 누군가는 밥을 해야 하고, 청소를 해야 하고, 빨래를 해야 하고, 아이들 옆에 머물러야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외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바라고 있었다.


휴식이 필요한가 되물었다. 휴식이 필요하다면 도와줄 사람들도 있었다. 도움을 받으며 쉬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을 다른 누군가의 손에 맡기고 싶지는 않다.


그럼 어떡하나. 아이들이 나를 돌보길 바란다. 아이들이 날 위해서 사이좋게 놀고, 싸우지 않고, 밥도 주는 대로 잘 먹고, 잠도 12시간을 푹 자 자기를. 아침에 일어나서도 엄마를 건드리지 않고 알아서 밥을 꺼내먹고 움직이기를.


아이를 다시 뱃속으로 넣을 수도 없고 어쩐다? 출산을 하는 순간, 되돌아가는 길은 막혔다. 아이를 두고 떠날 수 있는 깜냥은 없으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홀몸일 때를 그리워하며 막힌 벽을 박박 긁고 있었다. 곁에 앉은 아이들을 원망하며.


벽에서 손을 떼고, 뒤를 돌아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는데. 혼자가 아닌 아이와 함께 사는 삶이 있는데. 난 그 삶을 바라보기가 싫다. 가보지 않은 길이고, 알 수 없는 길이며, 받아들이기가 벅찬 길이기에.


'응애'하고 태어나면, 잘 먹고 잘 자는 줄 알았지.

걷기 시작하면, 엄마 말에 순종하며 잘 따를 줄 알았지.

뛰기 시작하면, 더 이상 날 찾지 않고 안전하게 잘 놀 줄 알았지.

어린이집 들어가면, 등원 준비는 혼자서 척척 잘 해낼 줄 알았지.

다섯 살이 되면, 활짝 웃으며 '네, 엄마.' 할 줄 알았지.


육아는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어 나를 성장시킨다.

"이 정도면 될 줄 알았지?" 하며 그다음의 세상을 보여준다.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며 기쁨으로 밀어 넣는다.

"이럴 줄은 몰랐겠지."라며 뒤통수를 때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진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화만 냈던 5일이 지나갔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지.

다섯 살 딸이랑 놀이터 한가운데에서 말싸움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


화만 냈던 일주일이 지나간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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