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보다가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즐겨보지 않는다. 재미는 있지만, 지나치게 흠뻑 빠져 일상생활을 드라마로 해석해버리기 때문이다. '도깨비'를 볼 때는 남편을 공유로 대상화시켜버리거나, '구르미 그린 달빛'을 볼 때는 여주인공에 빙의하여 대화를 시도했다. '응답하라 1988'을 볼 때는 하루 종일 덕선이에 빙의하여 과거에만 매달렸다. 자주 보지는 않지만, 한 번 보면 흠뻑 빠져버리는 드라마. 드라마는 내게 위험지대다. 한 번 발을 들이면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는.
그런 내가 2019년 방영되었던 드라마를 만났다.
이병헌 감독, 천우희, 안재홍 주연의 '멜로가 체질'
'멜로가 체질'은 서른이 된 세 여자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로맨스라기엔 지극히 현실적이고, 생활극이라기엔 말랑말랑한 그 어느 지점의 이야기다. 세 여주인공이 지나치게 예뻐서 현실감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들의 수다를 흘려듣다 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드라마를 시청하며 두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서른이 된 세 여자들이 이렇게 당당하고 지질하고 멋질 수 있는 걸까?
서른이 된 자녀를 둔 부모가 이렇게 여유롭고 독립적일 수 있는 걸까?
그녀들은 각자의 일에 충실했다. 신인 드라마 작가, 다큐멘터리 감독, 드라마 제작사 실장. 저마다 하고 싶은 일들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초보, 무명, 보조였기에 들쭉날쭉 요동치지만,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서른에 받아 든 결과 또한 멋지다. 드라마를 찍고, 다큐멘터리는 흥행했고, 드라마 기획도 한다. 당당한 겉모습과 지질한 속내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그녀들은 멋졌다.
요즘 20대-30대 초반 여성들은 다들 이렇게 멋진 건가?
2019년의 나는 35살이었음에도 이들과 달랐다. 남들 다 한다는 결혼과 육아에 넋이 나가 있었다.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선택의 이유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 암묵적 약속이 전제되어 있었다. 서른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낳아서 길러야 어른으로 완성된다 생각했다. 친구들과의 수다는 '결혼'에 맞춰져 있었다. 더 화려하고 그럴듯하게 치장하여 '좋은 상대'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얌전히 있다가 적당한 상대를 만나 결혼하라고 말했다. 직장을 가졌으니, 더 좋은 직장을 가진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면 인생이 좀 편해질 거라 이야기하셨다.
서른 전후의 내게 '나'는 없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주 잠깐 결혼이란 사회적 약속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하고 싶었던 여행과 근무지 이동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었다.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계획을 짜던 중 지금의 남편을 소개팅으로 만나게 되었고 이듬해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며 살던 나는 서른에 결혼을 했다.
나와 너무 다른 세 여자 친구들의 모습에 넋이 나갔다. 자유롭게 연애를 이야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그녀들.
그들의 부모가 궁금해졌다.
드라마 작가인 진주의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가 없다. 당연히 할 법한 말들을 하기도 하지만 강도가 매우 약하다. '해아 한다'는 강압이 없다.
"쟤는 원래 그랬어."
낮잠을 밤잠처럼 자고, 손님이 왔는데도 휭 하고 나가버리는 딸을 '그럴 수도 있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걱정되는 일은 부부끼리 이야기하며 툭툭 털어낸다. 그들의 삶에 집중한다. 무엇을 더 해주려 애쓰지 않고, 더 받으려 안달 내지도 않는다.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되,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은정의 부모님은 아예 해외로 나가 산다. 1년에 안부전화 몇 번을 나눌 뿐이라며 흘러가듯 존재만 확인된다. 이혼녀이자 워킹맘인 한주의 부모님은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존재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는 딸이 걱정되어 안달복달할 법도 한데 말이다. 한주도 자신의 인생에 몰두할 뿐이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16부 동안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수다의 향연 속에 부모의 고정관념들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대학 총장인 어머니가 갑자기 등장하여 적절한 선자리를 주선한다든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딸에게 언제 합격할 거냐며 압박을 준다든가 하는 등의 한국 사회의 단적인 예는 없었다.
세 주인공은 모두 부모로부터 독립된 존재였다. 부모와 분리되어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었다. 세 여자 친구들은 은정의 집에서 맥주를 들이키며 수다를 떨었다. 사회적 통념들을 도마 위에 올리고는 자신만의 논리로 요리해버렸다. 옳다 그르다의 논리는 없었다. 내가 좀 어땠고, 그건 좀 그랬고의 서술에 지나지 않았다. 함께 웃고, 욕하며 궁상맞지만 통쾌하게 하루를 마감했다.
서른일곱인 나는 서른의 세 여자를 보며 앞으로를 생각했다.
사회적 통념에 관심을 둘 것인가.
'나'에 중심을 둘 것인가.
'나'가 없이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 살았다. 기준을 타인에게 맞추니 재미도 반감되었다.
이젠, '나'를 중심에 두고 살아본다. 이전과 같은 행동이라도 기준이 '나'가 되니 재미에 스릴까지 느껴진다. 당연한 것들이 다시 고민하는 것들로 바뀐다. 고민하다 미루었던 것들이 당장 시도해볼 만한 것들이 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나.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나.
괴짜 같은 모습을 드러내는 나.
나에게 좀 더 솔직하기를.
나에게 귀 기울이기를.
응원하고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