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부모님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원가족으로부터의 독립

by 자유로운 풀풀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부모님과 얽히고설켜 네 것인지, 내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살았다. 부모님은 다 큰 딸을 독립시켰을지 모르지만, 난 그러질 못했다. 문제가 생기면 남편보다 부모님이 먼저 떠올랐다. 좋은 게 보이면 남편보다 친정 엄마와 함께 하고 싶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마마걸이나 마찬가지였다.


육아를 하며 변했다.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생기고, 아이들의 아빠인 남편에게 더욱 의지하고 싶어졌다. 맹목적으로 부모님만 바라보던 어린 내가 아니었다. 부모님과 상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매일 일상을 나누던 전화도 뜸해졌다. 남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던 내가 친정 부모님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친정으로부터의 독립은 서서히 진행되었고, 나는 남편과 새로운 가정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처음엔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30년 넘게 함께 해 온 부모님의 사고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자라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부모님의 행동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있는데 왜 그리 감정적으로 대하셨을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에 왜 그리 자신의 일 마냥 마음을 다치실까.' 친정 부모님과 천천히 분리되자 감추어졌던 원가족의 패턴들이 드러났다. 그 속에 뿌리 깊게 박힌 나의 모습도 보였다.


오늘도 그런 일들 중 하나다.




오후 4시. 친정 엄마와 통화를 했다. 멀찍이서 친정 아빠의 목소리도 들렸다. 지난주 중, 낮에 들렸을 때도 친정 아빠는 집에 계셨다. 그리고 오늘 오후도. 느낌이 이상했다. 월차를 잘 사용하지 않는 아빠였다.


"아빠, 일 그만두셨어?"

"응. 이번 달부터 쉬고 있어. 오라는 곳은 있는데 아빠가 스트레스를 넘 많이 받아서."

"아, 그래."


이전 같았으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랬을거냐며 위로의 말을 쏟아냈을 것이다. 약속을 잡아 맛있는 식사도 대접했을 거다. 친정 엄마의 기분 전환을 위해 쇼핑도 가자고 부추겼을 거다.


이번엔 달랐다. 전화를 끊고 마음이 뒤숭숭했다. 몸마저도 착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대체 어쩌자고 일을 그만 두신 걸까. 조금만 더 버텨보시지, 다음 직장이 확정되면 움직이시지. 실업 수당이 나온다고 해도 월급만 할까. 일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걱정보다 원망이 앞섰다. 나쁜 딸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솔직한 마음이다. 이것저것 재어보고 따져보기도 전에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이다.


친정 아빠는 곧 직장을 구할 것이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못 견디는 분이다. 미래에 대해 걱정하신다.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신다. 부모는 자녀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신다. 그런 아빠가 일을 그만두신 것은 스트레스가 무척이나 컸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돈 벌려다가 건강마저 잃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마음이 불편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비를 숱하게 넘겨온 아빠.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벼랑 끝으로 내몰다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만 아빠. 난 그런 아빠의 삶이 불안했다.


불안은 큰 딸인 내게도 전염되었다.

높은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불안을 덮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더했고, 완벽을 추구했다.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워두고 거기에 닿지 못하면 초조했다. 일상의 사소한 균열에도 극도로 긴장했다. 예측 가능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세워두고 그것을 막기 위해 순간을 고군분투했다.


친정 아빠의 실직은 나의 불안을 건드렸다. 난 불안에 잠식되었다


부모님의 행동을 무조건적인 절대선으로 받아들이고, 합리화를 해버리던 내가 질문을 던졌다.

"왜 그렇게 행동하셨을까? 그것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음표 없이 '우리 편'과 나쁜 세상으로 구분 지어버리던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부모님을 실수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그제야 나의 감정이 보였다.

무서웠다. 극도의 불안이 일렁이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불안하지 않아도 되지만, 본능적으로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비이성적인 감정. 사실과 다른 생각. 그것들에 휩싸있었다. 감정의 실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괜찮은 척' 할 뻔했다. 불안함을 위로의 말로 대체하며 씩씩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다.


저녁시간, 운동장을 달렸다. 해결되지 않는 마음을 내버려 두고 일단 달렸다.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자 마음이 풀렸다. 몸의 에너지가 올라가자 감정은 절로 놓아졌다.


자식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님의 인생일 뿐이었다. 해결해드릴 수도, 책임질 수도 없는 각자의 삶이었다. 친정 부모님은 자신들의 정답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모님과 나의 해결책이 다르다고 해서 무엇이 옳고 그름은 없었다.


우린 저마다의 정답으로 살아간다.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삶으로 책임진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 회피하는 선택은 또 다른 모습의 책임으로 실현될 뿐이다. 인생에 단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의 해답지를 들고 걸어갈 뿐이다.




부모로부터의 독립.

부모님과 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

'적절하다'는 애매모호한 경계는 부모님과 나의 선택을 구분 지음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과한 위로의 말들 대신 "그랬구나."의 간결한 말로 대응한 나.

기존의 관계와는 다르지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멈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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