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3회 30분 달리기의 기록
4회 차의 기록.
저녁 7시 30분.
샤워와 저녁 식사까지 마무리되었다. 발바닥이 슬슬 가렵다. 아이들이 평온한 이 시각, 딱 30분만 움직이고 싶었다. 함께가 아닌, 혼자서!
나 뛰고 올게.
남편과 아이들에게 말했다. 알겠다는 남편, 신경도 쓰지 않는 연이. 은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엄마, 나도 가고 싶어. 나도 뛸래."
잽싸게 다녀올 테니 집에서 좀 기다려달라는 나의 대답에 은이가 다시 말했다.
"엄마랑 지금 양치질할래. 양치질하고 나서 많이 졸리면 먼저 자도 돼?"
먼저 자도 되고, 엄마 올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고 말했다. 은이의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가 양치질을 도와주었다. 얼른 다녀올 거라는 나의 말에 아이는 침대에 누워 배시시 웃었다.
집을 나와 운동장에 도착했다. 5분 걷기, 10분 뛰기, 5분 걷기로 짧게 끝내기로 마음먹고 걷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이가 울고 있을 것만 같고, 오지 않는 엄마를 목놓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의 사랑이 고픈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은 기분이었다. 내 몸 건강하자고 아이를 버린 느낌이라니. 오전에 30분 홈트로 대체하면 될 것을 무슨 무병장수의 복을 누릴 거라고 또 운동장으로 기어 나왔을까. 걷고 뛰러 나왔을 뿐인데 온갖 죄책감이 내 몸을 짓눌렀다. 허벅지가 더 무거웠다.
5분 걷기가 끝나고, 뛰기 시작했다.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3분 동안 한 바퀴 뛰자, 10분간 무조건 뛰자, 속도를 좀 올려서 효율성을 높이자."
아이를 향한 미안함은 분주한 마음으로 이어졌다. 이왕 나왔으니 뽕을 뽑을 만큼 확실히 달리고 싶었다. 잘하고 싶었다.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빠르게 기록을 내고 싶었다. 스스로 평가자가 되어 날 채찍질하고 있었다.
나 이렇게 싸우듯 살았구나.
좋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한 달리기. 서너 발 앞을 바라보며, 온몸의 감각을 느끼며 달렸던 나. 어느 순간보다 멀리 내다보고 '조금 더'를 외치며 달리고 있었다. 몸에 집중하고, 순간의 내딛음에 집중할 때는 달릴수록 몸이 가벼워졌는데, 보다 먼 곳을 향해 쫓아가듯, 쫓기듯 달리는 순간 몸은 더 뒤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같은 속도로 달리는데도 힘이 더 들어갔다. 뒤꿈치는 무겁고,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빠르든 느리든 상관없는데. 한 바퀴 더 뛰어도 덜 뛰어도 괜찮은데. 바뀌는 것은 없는데. '다음'을 고심하며 달리다 보니, 정작 달리는 나는 없어지고 결과만 남게 되었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속도를 내었는지, 많이 뛰었는지, 덜 뛰었는지. 그래서 귀한 시간을 내어준 아이에게 보답을 할 수 있는지, 할 수 없는지 까지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아이를 향한 엉뚱한 미안함이 올라오자, 살아오던 습관대로 최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달음박질하고 있었다.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순간의 나는 없어지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순간의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다.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기쁜 일이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까지 좋다면야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그러나, 좋은 결과를 위해 내달리는 것은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꼴이다. 목적지로 삼은 미래 또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고, 도착지점이 그곳과 다를 수도 있다.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는 허탈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바라던 것이 나오지 않아 실망하기도 한다.
목표지점을 찍어두고 그것에 몰두하면 이미 내게 있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기 쉽다. 단 3초라도 한 모금의 커피 향에 흠뻑 빠질 수 있고, 단 1초라도 탁 트인 하늘에 마음이 뻥 뚫릴 수 있다.
달리는 감각이 좋아서 움직였다. 운동장 바닥을 탄탄하게 내딛는 운동화의 느낌,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심장 박동에 신났다. 다이어트도 아니었다. '건강을 위해서'라는 애매모호한 목적으로 활동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아이가 기다린다'는 조바심에 '얼른 확실하게 끝내자'는 목표가 생기자 달리는 활동은 일이 되어버렸다. 어여쁘게 뜬 초승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하자, 속도를 더 내보자며 마음은 다섯 발 앞을 달리고, 몸은 세 발 뒤에 머물렀다.
분주한 속내를 알아차리고, 생각을 놓아버렸다. 어차피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며 잘 지내고 있을 것이고, 난 하루 중 고작 30분을 나와있을 뿐이었다. 이왕 나온 것, 신나게 달리고 활짝 웃으며 아이에게 감사의 뽀뽀를 날리면 되는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몸이 좀 더 가벼워졌다. 예정보다 2분을 더 달려 12분 달리기가 끝났다. 3분간 천천히 걸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벼운 스트레칭 후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8시 10분. 30분 운동이 마무리되었다.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다음에 아이가 같이 나가고 싶다고 하면, 흔쾌히 함께 나서야지.
몸을 움직이는 신선한 시간을 함께 나눠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