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불만을 끄집어내지 말고 공감을 해 줘

부부의 대화

by 자유로운 풀풀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로 나왔다. 허기진 배를 초콜릿으로 채우고, 빨래를 개던 남편에게 말했다.


"너무 피곤하다."

"그러니까 애들이 하자는 대로 다 들어주지 마."


이 반응은 무엇인가. 피로하다는 와이프의 말에 갑작스러운 육아관 논쟁이라니. 캄캄했던 머릿속에 전구가 하나 켜졌다. 정신을 차리고 상황 판단하라는 종소리가 울렸다.


이런저런 몇 마디의 말이 오갔다. 결국 남편은 침묵을 선언했다. 어떤 말을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내뱉어봤자 감정싸움으로 흘러갈게 뻔했다.


산책이라도 하자 싶었다. 주섬주섬 운동화를 신고 현관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려다 할 말이 떠올랐다. 생각났을 때 가뿐하게 뱉어야 관계가 깔끔하다. 발길을 돌려 신발장 앞에 다시 섰다.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나 피곤해'라는 말을 들었으면, '많이 피곤하구나 얼른 쉬어'라고 말하면 돼. 평소 불만이었던 육아방식을 탁 꼬집어, '네가 애들 말을 다 들어주니 그렇지'라고 하는 건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아. 피곤한 이유 열 가지 중 한 가지에 해당되는 걸 확대해서 말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고 나머지 아홉이 당신 때문이란 건 아니야. 내가 피곤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





공감은 참 어렵다. "나 지금 이래요."라고 하면, "당신이 그렇군요." 하면 되는데 참 어렵다. '그렇군요'라는 수긍을 하기도 전에 판단을 하기 일쑤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유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럴 수도 있다는 끄덕임은 상대와 공명하는 순간 가능하다. 그마저도 공명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즉각적인 느낌에 따를 때 순수한 존중이 이루어진다. 상대와 같은 감정선에 놓여있을 때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내적 검열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리라.


공감보다 판단이 앞서는 사람들.

상대가 꺼낸 충고의 말들이 도움이 될 땐 감사히 받으면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귀와 눈을 씻으면 그만이다. 감정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타인이 그럴 때야 넘겨버리면 된다.


사랑하고 싶은 가족이 그럴 때는?

흘려버릴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마음에 생채기가 남으려고 할 때는?


이전의 나라면, 모 아니면 도였다.

내가 틀렸으니, 네가 옳거나.

네가 틀렸으니, 내가 화를 내거나(직접 표현하지 않더라도 앙금으로 남겨두거나).


이젠 말한다.

당신의 조언은 지금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린 서로 생각이 다르다.
지금처럼 나의 마음이 좋지 않을 때는
충고를 삼가달라.
난 당신 생각과 다르다.


사과를 받아내려는 의도는 없다. 그런 말들이 전혀 어울린 맥락이 아니니 다음엔 조심하라는 안내 메시지다.




오늘 특별히 피곤하다는 아내의 말에 육아방식 훈수로 대답하는 남편. 남편만 그랬으랴. 나 또한 실수를 참 많이 했다. 알고도 하고, 모르고도 하고, 이때다 싶어서 하고.


예전이라면 옳고 그르냐의 감정싸움으로 번졌을 것이다. 육아방식은 한 사람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니, 서로를 향해 날을 곤두세웠을게 뻔하다.


알아차리고 멈추었다.

괜한 자존심을 부리지 않았다.

싸운다고 변하는 것은 없고, 내 마음만 전달하면 그만이다.

받아들이고 말고는 상대의 몫,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집착이다.


공감이냐, 해결책이냐.

논쟁이냐, 전달이냐.


습관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틈을 포착하는 지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