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집이 생겼어

지난 나의 선택은 최선이었고, 지금 나는 새로운 선택을 한다

by 자유로운 풀풀

난 무주택자다. 전세로 살지 않는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집에서 살고 있다. 차로 30분을 달려야 생선을 파는 좀 큰 마트를 만날 수 있는, 배달 어플이 쓸모가 없는 시골이다.


처음에는 사택 생활이 힘들었다. 먹고 싶은 음식도 마음대로 사 먹지 못하고, 뭘 좀 하려고 하면 차로 1시간을 나가야 하는 것들이 참 불편했다. 점점 시간이 흐르고, 생활에 요령이 붙었다.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고즈넉한 산세의 아름다움, 10분 거리의 바다와 강, 조용하고 안전한 단지 등의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낳고 나니, 미취학 아동을 키우기엔 이보다 안전한 곳이 있을 수 없었다. 차들은 거의 없고, 유흥시설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내에 조성된 작은 어린이 도서관과 실내놀이터의 조합은 참으로 감사했다. 문화센터 수업이라도 들을라치면 최소 한 시간을 달려가야 하니, 오가는 에너지를 따져서 아예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그 돈으로 재료를 구입해 푸짐하게 놀았다. 덕분에 육아 내공이 단단하게 쌓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 그 고독감을 투덜거리면서도 즐겼다. 곰이 100일간 쑥과 마늘만 먹은 것처럼, 시골 육아에 몰입하는 시간들이 날 성장시켜줄 것이라 확신했다.


막연히 언젠간 이사를 갈거라 생각했다. 서울도 아닌 지방에 내가 살 집 한 채는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 안되면 회사에서 나가라고 할 때까지 시골 사택에서 살면 된다 여겼다.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자 위기의식이 생겼다. 5년 이내에 어딘가로 이사를 가야 했다. 언제 가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던 중 살고 싶은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키우기에도 안전하고, 초중고가 모여있는 곳이었다.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의 마을. 그곳에 꼭 살고 싶어 졌다.


살고 싶은 곳과 가고 싶은 때가 정해졌으니 집값과 대출 여부를 알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포털사이트의 부동산 서비스에 들어가 매물을 살펴보니 최근 몇 년 사이에 가격이 억 이상이 올랐다. 수중의 돈으로는 택도 없었다. 게다가 앞으로 더 오를지도 모른다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그래도 일단 추진력 있게 밀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자책만 하고 인터넷으로만 보다가는 진전이 없을 거 같았다.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 날, '살고 싶은 동네'를 호기롭게 방문했다. 1시간 30분 동안 동네를 꼼꼼히 걸어보았다. 몇 동까지가 괜찮은지, 가격 차이가 왜 나는지 등을 따져보았다. 직접 발로 걸어보니 '내가 살고 싶은 집'이 더 명확해졌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지. 내친김에 인근 은행에 들러 대출 상담을 받았다. 살고 싶은 아파트와 대출 여부를 묻는데,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매매가와 kb시세는 다르다는 것이다. 매매가가 1억이더라도 kb시세가 7천만 원이면 kb시세에 맞추어 대출이 실행되는 것이었다. 부동산에 올라온 매매가만 보고 어떻게든 해보자며 희망을 품었는데, kb시세에 맞추어 나온다니. 코 앞까지 다가왔던 내 집 마련의 꿈이 멀리멀리 날아가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 대체 뭘 한 거지. 남들 집값이 1억이고 2억이고 수억이고 오를 동안, 난 바보처럼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아무리 육아가 바빴어도 살 집은 알아봤어야지. 이렇게 넋 놓고 있다가 부동산 가격이 오를 대로 올랐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동안 뭘 보고 살아온 거지.'


온갖 자책의 말들이 떠올랐다. 지하 100층 땅굴을 파고 팠다.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돈을 버는 기회, 아니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난 무엇을 좇고 있었던 것인지. 분명 뭔가를 했는데 난 무엇을 한 거였는지. 지난 시간들이 쓸모없게 느껴졌다.


답답한 마음에 친한 언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고, 나 너무 늦은 거 아니냐고. 밑바닥까지 가라앉아버린 오만가지 생각을 다 쏟아내었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언니가 입을 열었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는 거 이해해.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은 이거야.
넌 최선을 다했어.
그보다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



맞다.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주말부부, 잇따른 유산, 조심해야만 했던 임신기간, 넋 놓고 달린 육아의 시간. 안정적인 내 집 마련보다 우선이었던 일들이 있었다. 두 가지 모두 균형감 있게 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너무나도 큰 두려움에 휩싸여, 무서운 줄도 모르고 이 악물고 통과한 시간들이었다.


내가 나를 용서해야지, 누가 날 용서하겠어.
이제 그만 그런 날 안아주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온 지난 시간들을 하잘것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 것은 나였다. 피땀 섞인 노력들을 향해 '방향부터 잘못됐어'라고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머무는 거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수년간의 기쁨과 눈물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거실. '내 집'은 아니지만, '내 공간'의 힘이 있었다. 그 힘을 채우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들이었음이 분명했다.




꿈이 있었다. 아이를 낳아 건강하고 밝게 잘 키우고 싶었다.

꿈이 이루어졌다. 동시에 찾아온 두 아이는 아이답게 잘 자랐고, 자라고 있다.


새로운 꿈이 생겼다. 내 가족이 안전하게 머무를 내 소유의 집을 가지고 싶어졌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꿈을 꾸게 되었다. 새로운 꿈 또한 나의 방식으로 실현해 갈 것이다. 처음은 낯설겠지만, 시작한 힘으로 끝까지 밀고 갈 것이다.


지나온 시간을 곱씹으며 후회하기를 멈춘다. "이것도 챙겼어야지"라며 스스로를 타박하지 않는다. 열심히 했고, 결과 또한 만족스럽다. 그럼 된 거다. 새로운 방향이 보이니, 그 길을 간다. 종류는 다르지만, 부딪히는 벽을 뛰어넘으며 '만족'이라는 스위치에 도달해 본 경험이 있다. 당장 이루어지지 않지만, 3년, 5년 뒤엔 '목표 달성'이라는 스위치에 닿아있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나를 믿는다. 내 집 마련의 꿈. 나도 '살고 싶은 집'을 가질 것이다.




우린 선택을 이어가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선택은 '필요'에 의해 결정된다. 그 순간에는 필요하기에 선택하고, 덜 필요하기에 미룬다.


시간이 흐른 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선택지가 사실은 꽤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었음을 알아차릴 때 문제가 생긴다.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사실은 꽤 중요했던 그 일'은 손 뻗으면 닿지 못할 거리에 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지나온 시간은 회복하기가 어려운 법. 내가 달리는 동안 그들 또한 달려가겠지. 해도 소용없는 일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렸던가.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자책의 땅굴파기로 지구도 뚫어버릴 기세다. 달리고 날아가도 모자랄 판에 죄책감이란 감옥에 갇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앞으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인다한들, 이미 지나온 시간들이 아까워 통곡하기가 더 바쁘다.


붙잡아 줄 손이 필요하다.

자괴감의 늪에서 끌어올려 줄 구명줄이 필요하다.


지나온 과거는 최선이었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생각하는 것들은 이미 이루어져 있을 테니.


다소 허무맹랑해 보일지도 모른다. 무조건적인 긍정의 힘은 독이라고 외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나를 일으켜야 한다. 무기력이 약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무기력이 독이 되어 스스로를 잠식시켜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져서도 안된다'는 이상한 논리로 중무장되어버리기 전에, 스스로를 살살 달래어주어야 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배울 것을 알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며칠 전의 나는 스스로를 다독여줄 힘이 없었다. 너무나도 괴로웠고, 너무나도 아팠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가 비참했다. 용기를 내어 SOS를 쳤고, 응답을 받았다. 구명탄을 쏘아 올렸고, 구명줄이 던져졌다.


지난 나를 안아준다. 참 잘 해냈다고.
지금의 나를 다독인다.
새로운 선택을 응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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