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베란다에 성을 쌓고 숨바꼭질을 했다. 퇴근한 남편은 두 아이 곁에 쪼그리고 앉아 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우리 찾아봐라~"라는 아이들. 부엌에 있던 나는 아이들을 찾는 척 베란다 문 앞으로 다가갔다. 낄낄거리고 성에 숨은 아이들 옆에 남편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화가 나 보였다.
온몸이 지릿하며 긴장되기 시작했다.
'남편이 불편한가? 애들 행동이 뭔가 거슬리는 건가? 배가 고픈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뇌가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분명 별다른 일이 없었는데 남편은 왜 웃음기 없는 얼굴로 앉아있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히히. 히히."
성 안에 꼭꼭 숨은 아이들이 웃었다. 남편도 덩달아 활짝 웃음을 보였다.
"연이, 은이가 어디 갔나~. 아이고, 엄마는 못 찾겠다."
아이들을 못 찾는 척 방문을 나섰다.
"엄마 갔어. 못 찾았어."
등 뒤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건 나의 오해였다.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가 날 올려다봤을 뿐이었다. 퇴근 후 피로를 풀어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난 왜 긴장했을까. 표정이 없을 뿐이었던 남편의 얼굴에서 어떤 표정을 읽어낸 것일까. 아니, 무엇을 투사하여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아빠 곁에서 따로 또 같이 노는 아이들의 자유분방함이 부러웠던 것일까.
무표정한 남편에게서 어린 시절 무서웠던 내 아빠를 발견한 것일까.
어쨌든 아이들의 숨바꼭질은 계속됐고, 남편은 아이들 곁에 앉아 핸드폰 게임을 했다.
언젠가 날 선 부부싸움을 하던 중, 남편이 "당신이 자꾸 날 긁잖아."라고 말했다.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데 '아무렇지 않은 게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는 이유'로 몰아세운다 했다. 본인은 단순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라 주장했다.
난 "이게 긁는 거라면, 당신은 진짜 긁히는 게 뭔지 모르는구나?"라며 더 모진 말을 내뱉었다. 당신은 분명 언짢고 화가 난 게 분명한데, 자기감정도 모르는 바보라며 손가락질했다. '세상에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 어딨냐, 자기 생각이 뭔지도 모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내 생각이 옳다 여겼다. 남편은 모르거나 모른 척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모르는 남편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싶었고, 모르는 척하는 남편의 가면을 벗겨버리고 싶었다.
우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않는다.
상대의 말, 행동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때는 극히 드물다. '네가 모르는 너를 나는 알고 있지.'란 전지적 능력을 발휘한다. 상대도 모르는 상대의 속마음까지 꿰뚫어서 판단하다니. 관심법을 능가하는 가히 신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우린 신이 되어 상대를 판단한다.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상대일수록 더욱 그렇다. 객관적으로 공유하는 정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마음을 추측한다. 나의 판단을 사실로 믿으며 상대를 대한다.
남편과 아이는 대표적인 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회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면서 '피곤할 것이다,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로 알아서 판단하고 상대를 향한 기대치를 조절한다. 예측과 다르게 반응하는(피곤하지 않은데 자꾸 드러눕는) 남편을 보며 홀로 억울함에 휩싸여버린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 아이의 활동량이 어땠는지, 식사량이 어땠는지 다 파악하지 못했으면서 '간식을 먹고 왔을 테니 저녁식사 전에는 먹을 것을 주지 말아야지.'라고 보호 행동을 설정한다. 예측과 달리 간식을 사달라고 보채는 아이. 아이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하기도 전에 '저녁밥 안 먹으면 어떡해.'의 두려움에 "안돼."라는 한 마디만 내지르고 만다.
각자의 경험으로 상대를 판단한다.
우린 '순간 떠오르는 각자의 경험'으로 상대를 판단한다.
피곤한 남편의 얼굴을 마주할 때, 어린 시절 '피로한 아빠의 모습을 무섭다로 인식했던 순간'이 떠오른다면 마음에 적색경보가 울릴 것이다. 반대로 '피로한 아빠가 그래도 활짝 웃으며 놀아주었던 경험'이 떠오른다면, 마음이 그리 힘들지는 않으리라.
간식이 먹고 싶다는 아이와 마주할 때, 어린 시절 "밥을 잘 먹어야지."라며 혼났던 기억이 떠오른다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릴 것이다. 반대로 "저녁을 조금 일찍 먹고, 맛있는 후식 먹자."라며 따스한 공감을 받은 기억이라면 아이의 투정을 좀 더 가볍게 넘길 수 있으리라.
문제는 이런 마음의 작용들이 수면 아래, 무의식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판단은 자의적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상황이 벌어진다. 일어나버린 일들 앞에서 너의 탓을 하며 비난하거나, 내 탓을 하며 자책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