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서 영어공부 1523일차입니다. 스피킹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달려든 지 600일 정도 됐고요.
200페이지 분량의 원서를 40~50권쯤 읽었고, 이제 영어로 된 글을 읽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거의 없습니다. 지하철에서 뉴욕타임스 아티클을 읽으면서 스스로의 멋짐에 취해보기도 합니다. 리스닝도 700~800 시간 정도 누적되니 여러 팟캐스트 중에서 마음에 드는 팟캐스트를 골라 듣고 대본 없이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이 됐습니다. 물론 지금도 뉴스나 드라마 같은 것은 잘 안 들리지만요.
문제는 스피킹입니다. 600일이라는 훈련 기간이 무색하게 여전히 기본적인 시제를 맥락에 맞게 말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독학으로 스피킹의 높은 벽을 넘어보겠다는 애초의 포부가 희미해지고 지금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회의감에 빠져들 때도 많습니다. 기록을 보면 3개월에 한 번은 회의감이 강하게 밀려옵니다. 그만 둘까 싶다가도 이제껏 해온 것이 아까워서 못 내려놓고 질질 끌고 가는 느낌입니다.
스피킹은 1~2년의 과정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하루에 3시간 이상 스피킹 훈련하는 분이 있다면 애기가 또 다르겠지만, 1시간 정도 한다고 치면 최소 5년 정도는 걸리는 대장정이 아닌가 싶고요.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늘 답답합니다. "600일 정도 했으면 성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까요. 안 됩니다. 상황에 맞게 훈련 방법을 수정하는 유연한 태도와 상충하기 때문입니다.[1]
어릴 때 다들 피아노 한 번쯤은 배우게 마련인데요. 초등학생 무렵 바이엘에서 체르니로 넘어갈 때 어깨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수시로 지적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단계를 넘어서려면 오히려 힘을 빼야 하는 때가 있고, 기준을 낮춰야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1523일 동안 영어공부에 전념했다는 것 자체가 결과와 상관 없이 스스로를 칭찬해야 하는 일이라고 어떤 분께서 제게 말해주시더군요.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했구나 깨닫습니다.
반드시 무언가를 이뤄내야 하는 것이 아닌, 계속 배우고 연습해나가는 과정으로 영어를 바라보면 보이지 않은 무게와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2]
성과중심의 문화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자발적으로 좋아해서 하는 영역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성과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퇴색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한 느낌입니다. 그러다가 위 인용구를 보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습니다. 반드시 무언가를 이뤄낼 필요는 없습니다.
남들보다 잘하지 못해도 상관 없고, 심지어 어제의 나보다 못나 보여도 괜찮다고 자기위로해 봅니다.[3]
가치 있게 여기는 행동을 날마다 조금이라도 지속한다는 자체가 외부 풍파에 휩쓸리더라도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게 하는 단단한 무게중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압니다.[4]
그렇기 때문에 영어실력 향상이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회의감이 들더라도 오늘의 영어공부를 합니다.
[^1]: [[ܶ수용전념치료의 6각형 모델 2, 박재우, 2022.10.14 임상심리학회 학술대회#^efc829]]
[^2]: [[영어 실력에 확신이 없을수록 가져야 할 3가지 자세]]
[^3]: [[P - 좀 못나 보여도 괜찮아]]
[^4]: [[O -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5]: [[P - 어떤 감정에 놓여 있든 하고자 하는 일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