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감정에 1:1 대응하는 신체 반응, 뇌 연결, 얼굴 표정이 있다고 보는 것이 과거의 감정이론이었습니다. 사람이 저마다 다른 지문을 갖듯이 감정도 저마다의 지문이 있다고 본 것이죠.
최신 감정이론은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감정은 생리적/신체적인 반응과 연관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생리적/신체적 반응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입니다. 일례로 두근거리는 가슴, 상기된 얼굴, 눈물은 해석에 따라 슬픔의 표현일 수도 있고 기쁨과 감사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해석은 밀리세컨드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자각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위 그림에서 보듯이 외부 자극이 우리 뇌에 입력되는 순간부터 이미 예측(predictions)이 이루어지며 지각의 내용을 결정하고, 어떤 생리적/신체적 반응을 하게 될지 일부 결정합니다.
산에서 뱀인 줄 알고 놀랐다가 나뭇가지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도, 외부 대상에 대한 실제 지각보다 예측이 우위에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볼 뿐이라는 말이 크게 틀린 말도 아닌 것이죠.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지각에서 예측이 팔할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예측은 학습된 지식과 과거 개인 경험 등에 기반합니다. 학습된 지식과 과거 개인 경험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성되는 것입니다.
생리적/신체적 반응에 대한 평가는 상황적/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라집니다. 두근거리는 가슴, 상기된 얼굴, 눈물은 장례식장에서는 슬픔의 표현이겠지만 결혼식장에서는 기쁨과 감사의 표현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감정은 이렇듯 개인적/사회적 구성물에 가깝습니다.
지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예측이든, 생리적/신체적 반응에 대한 해석이든 그것이 생존과 적응에 유용했기 때문에 여전히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언제 테러가 발생할지 모르는 지역에 배치된 군인의 경우 사소한 실수가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오차 발생의 가능성이 커진다 하더라도 적을 미리 예측하여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적응적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무고한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하는 비극이 초래될 때도 있지만요.
또 다른 예로, 공황 증상은 신체 반응에 대한 파국적 해석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삶의 근간을 흔들 위협이 발생할 여지가 있고 그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할 때 신체 반응에 대한 파국적 해석 및 공황 증상이 야기되기 쉽다고 생각해 볼 여지도 있습니다. 그 위협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더라도 한 번 발생했을 때 큰 재앙을 야기할 수 있다면, 파국적 해석을 통해 빠른 도피가 가능하도록 신체를 준비시키는 공황 증상은 비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1]
이처럼 즉각적인 감정 반응으로 이어지는 예측과 파국적 해석은 합리성의 반대가 아니라 단지 체계적이고 숙고하는 방식과는 다른 류의 합리성에 가깝습니다. 대니얼 카너만도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시스템1(직관)과 시스템2(숙고)가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밀리세컨드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예측이나 해석이 늘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적으로 지각했으나 무고한 시민이었던 것으로 판명되듯이, 혹은 휴식을 취해야 함을 알리는 신체 반응을 응급 상황으로 해석하여 일상생활에 빈번하게 지장이 생기듯이 잘못된 판단의 가능성이 늘 존재합니다. 오차와 편향은 늘 우리와 함께 합니다.
이런 오차와 편향을 줄이기 위해 자신이 감정 반응에 이끌려 행동하기를 멈추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신체 반응과 감정 반응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거미에 대한 공포증을 지닌 80명을 대상으로 한 어떤 연구[2]에서 자신의 감정 반응을 명명하도록 요청받은 집단(예. “이 징그러운 타란툴라가 내게로 점프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은 거미에 대한 인지적 재평가(예. “내 앞의 이 작은 거미를 보는 것은 위험하지 않다.”)를 요청받은 집단보다 피부전도반응으로 측정한 공포 반응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오차와 편향을 줄여 보다 적응적인 감정 반응을 야기하기 위해 굳이 다른 해석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신의 감정에 적당한 이름을 붙여주면 됩니다.
이 연구의 저자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 위해서는 현재 감정 경험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마음챙김과의 유사한 면이 있음을 논합니다.
실제로 2019년의 한 연구[3]는 스트레스 감소를 위한 마음챙김명상(MBSR: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이 스스로의 감정 반응을 더 잘 구분할 수 있게 도움을 보여줍니다. MBSR 과정에서 특별히 감정을 명명하도록 지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기할 만합니다. 감정을 신체 어디서 느끼고 있는지, 어떤 감각을 경험하는지를 관찰하도록 안내될 뿐입니다.
감정 반응은 과거 경험에 기반한 예측과 신체 반응에 대한 해석의 과정을 거치는 구성의 산물입니다. 즉각적인 감정 반응은 진화 과정에서 체화된 합리적 반응일 수 있으나 예측과 해석 과정에서 늘 오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상황에 부적응적인 반응일 때도 있습니다.
이에, 과도한 감정 반응을 경험하게 될 때 호기심을 가지고 비판단적인 방식으로 스스로의 감정 반응을 관찰하여 감정에 이름을 붙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챙김명상은 감정 경험의 자각 및 분화를 돕는 유용한 수단입니다.
* 이 글은 2022년 10월 14일 개최된 한국 임상심리학회 학술대회의 심포지엄 [[감정이론의 최신 동향 / 강등현과 조철래]]에 상당 부분 기반하고 있습니다. 두 강의자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제가 이해한 만큼 그림으로 단순화하여 설명하였으나 과학적 근거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The hypothesis that the capacity for panic serves the function of facilitating escape from mortal danger is consistent with the available facts about the panic syndrome and implies that panic does not necessarily involve an organic defect.(공황이 치명적인 위험으로부터 탈출을 용이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가설은 공황 증후군에 대한 기존 사실과 일치하며, 공황이 반드시 유기적 결함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출처: An evolutionary perspective on panic disorder and agoraphobia - ScienceDirec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