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의 관심사와 감정에 귀 기울이는 상담자이면서도, 정작 부모로서는 자녀의 실제 관심사보다 영어 공부 같은 본인의 기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모순적 상황을 인식하고 있음. 이는 상담자와 부모라는 두 역할에서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함
상담 초심자가 내담자보다 자신의 수행 불안에 집중하듯이, 훈육도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닌 부모의 불안과 통제 욕구를 다스리기 위한 수단임을 통찰함. "사랑이 곧 걱정"이라는 착각이 이를 정당화하지만, 실은 부모/상담자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왜곡된 태도임
아이와 내담자 모두는 본래 건강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존재이므로, 부모/상담자의 역할은 자신의 불안이나 기대를 투사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자연스러운 호기심과 관심사를 존중하고 지원하는 것이어야 함. 이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건강한 부모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임
자녀의 생각이나 감정에 관심을 갖고 적절히 반응하며 키우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말해 '아닌 때도 많다'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보면, 가령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 리딩게이트(영어 앱)를 할 때 더 많은 관심을 주는 것 같고, 아이도 그에 부합하여 자신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제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설 때마다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제가 영어 공부를 좋아하고 또 딸에게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행동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건지, 둘 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깨어있는 양육]을 읽다 보면,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로서 내담자의 관심사에 집중하듯이 자녀에게도 같은 태도와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내면의 외침이 들려옵니다. 다른 상담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직업과 가정 모두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상담자의 평생 과업 중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내담자에게 감정 조절의 중요성을 피력하면서도 아이와의 관계에서 저 스스로 그게 잘 안 될 때 괴롭기도 합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상담자도 결국 결점 많은 한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책보다는 수용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이 책에서 훈육은 실상 필요치 않다고 봅니다. 훈육의 정의가 아래와 같습니다.
훈육은 자신의 부족함을 맞닥뜨렸을 때 무력감을 느끼는 부모가 기대는 버팀목에 지나지 않는다.
훈육은 부모가 자신의 두려움을 내적으로 조절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부작용 같은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아이를 위한 훈육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아이를 벌주거나 혼내거나 협박하면서 자신의 두려움을 조절하고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아이들은 적절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 자연스레 건강한 발달을 이룹니다. 훈육은 이를 저해합니다. 초점이 아이가 아니라 부모 자신에게 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덜하지만 상담 초심자일 때 내담자가 아니라 상담자로서의 수행 불안을 경험하는 저 자신에게 주의가 와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잘해야 한다, 도움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한다 라는 당위가 저를 불안에 가두었습니다. 풍랑 속에서 한 배를 탄 상담자와 내담자 중 최소한 상담자라도 덜 흔들려야 배가 뒤집히지 않을 것인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담자의 감정을 안정화하지는 못할망정 상담자 스스로가 덜덜 떨고 있으면 그 상담이 제대로 흘러갈 리 없습니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곧 그 사람을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아이들을 걱정하는 이유는 오히려 우리 자신의 안전과 행복이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상담이 잘 흘러가지 않으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은 상담자 자신의 관심사가 내담자의 그것보다 우위에 서게 될 때 발생합니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 좋은 대학에 못 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은 아이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부모 자신의 신념과 기대가 좌절될 것에 대한 두려움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리고 기대가 좌절되면 부모로서 우리의 반응은 대개 아이에게 통제적이고 억압적인 무엇으로 비춰지기 쉽습니다.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영어 공부를 시작해서 나중에 더 큰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제 생각은 아이의 기질이나 배움의 속도, 관심사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저의 신념이고 기대일 뿐이라는 점에서 아이에게는 해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그래도... 다른 건 안 해도 영어는...'이라는 내면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오지만요.
내가 거듭 강조하고 싶은 점은 부모가 아이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키워주지 못하면, 즉 아이가 관심 있는 삶의 영역 안에서 발전해나가도록 놓아두지 않고 부모의 관심사에 맞춘 학습 과정을 강요하면, 아이는 타고난 인생과의 연결고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와의 관계 체크리스트를 올해 내내 작성하고 있고 목표하는 평균 점수에 다소 미치지 못한 상태라 의기소침해 있던 차에 동기부여를 하게 되는 책입니다. 상담자는 결국 내담자에게 부재했거나 충분하지 못했던 건강한 부모의 역할을 하는 것인지라, 직업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부모로서의 역할도 잘 해내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어떤 내담자와 함께 있더라도 조금은 더 도움이 되는 상담자가 되지 않을까요.
덧: 글 제목은 이 책을 참고했습니다. 아빠가 심리학자라 미안해
이 글은 MarkedBrunch를 이용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