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므라이스.

한마리 오므라이스가 되고 싶은 아침.

by 클링키

그런 날이 있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별 관심도 없는 인터넷기사를 뒤적이다가 핸드폰을 손에 쥐고는 잠이 들거나, 쉬지도 못하고 놀지도 못했는데 주말이라는 녀석이 매정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려 배신감에 몸을 부르르 떨며 잠이 드는, 그렇게 피곤이 가득 담긴 눈으로 새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있다.
아주 가끔씩 오는 아침이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아침이 그러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오늘은, 그냥 한 마리의 오므라이스가 되고 싶다고.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계란 이불을 덮고, 폭신한 브로콜리 베개를 베고, 조금만 더 자고 싶다고.
10분만, 아니 딱 5분만.


야채를 먹지 않는 사랑스러운 아이를 속이기 위해서, 또는 오물오물 먹어야 하는 부드러운 음식이라서, 아니면 소심한 밥알이 다른 야채들의 큰 덩치에 놀라 구석에서 쪼그려앉아 있을 까봐 등등의 다양하고도 타당한 이유로 양파와 당근은 최대한 작게 다진다. 밥알과 비슷한 정도의 크기로.

매끈한 식칼에 손이 다치않도록조심스럽게 썰고 또 썰다 보면 정성이 두 배로 들어가게 된다.
햄도 예외는 없다. 고기든 야채든 이곳은 평등하고 평화로운 오므라이스 월드니까, 누구 하나 튀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제 아무리 몸 값 비싼 통조림 햄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준비된 재료를 오일 두른 팬에 달달달달 귀찮게 들들 볶다가 다 같이 어울리는 듯한 기분 좋은 냄새가 날 때 쯤에 밥을 투입한다. 다들 적당히 친해진 뒤라서 사교성 부족한 밥알이 그 틈에 섞이기에도 분위기가 제법 괜찮을 것이다.
나무 주걱이 뒤늦게 등장한 밥알들을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시켜주고 같이 어울릴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주면, 어느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섞여서 금방 친해지고 만다.
적당히 친해져서 훈훈한 열기를 뿜어내는 볶음밥을 접시에 둥글게 둥글게, 최대한 사이가 좋아 보이도록 담아 놓는다.


접시 위에 예쁘게 모아 놓은 볶음밥이 정 많은 프라이팬의 따뜻함을 그리워하기 시작하면, 그들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이불을 준비한다. 지나치게 익혀서 겉을 누르스름하고 바스락거리게 만드는 것보다는, 계란의 노오란 색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뽀송하면서도 푹신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잠이 솔솔 스며들도록.
그렇게 당장이라도 내가 덮고 싶을 만큼 노오랗고 예쁜, 함께라면 마냥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을 것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계란 이불을 들어 올려 접시 위에 살며시 덮어준다. 브로콜리가 있다면 머리 맡에 살짝 넣어주어도 좋다.
그 모습이 너무 평온해 보여, 폭신한 브로콜리 베개를 나눠 베고 그 옆에 누워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새 둥글게 몸을 말아 넣고 곤히 잠들어 버린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져, 전하고 싶은 마음을 이불 위에 살며시 그려본다.
빨간 하트를 그려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오늘 하루도 많이 웃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방긋 웃는 스마일 모양을 그려 준다. 케찹으로 그린 입 부분이 빨갛게 번져 공포스러워 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그리고 이내 둥근 모양을 살짝 삐져 나온 계란 이불의 끝부분을 뜯어 오물오물 먹어 본다.
오물오물한 이 맛. 오물오물한 오므라이스 맛.

오늘도, 잠 못 이룬 새벽 난 꿈을 꾸고 있다.

포근한 오므라이스 이불을 덮고 허리가 뻐근할 정도로 숙면을 취하다가, 정오가 지나 꼬르륵거리는 배를 붙잡고 부스스 일어나 노란 계란 이불을 한 입 베어 오물오물거리면서 다시 포근하게 잠이 드는ㅡ

정말 말도 안되게 행복한 꿈을.


행복한 꿈을 오물오물 곱씹으면서 오늘도 피곤한 아침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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