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분을 너의 색으로 물들여줄-
지친 하루의 끝, 침대 위에 온 몸의 힘을 쭉 빼고 누워 늘어져 있을 때면, 슬며시 다가와 지친 나를 위로해 주는 친구가 있다. 무거운 내 머리를 군말 없이 묵묵히 받아주는 푹신한 물범 쿠션, 그리고 이불 위에 멋대로 흩뿌려진 알록달록한 구미 베어 젤리.
풀어내는 족족 꼬여버리는 머릿속 실타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내 방 천장을 응시하고 싶어질 때, 혹은 오늘 내게 할당된 모든 양의 힘을 다 써버렸을 때, 나는 마치 충전기의 선을 찾아 연결 하듯 두 손을 더듬어 구미 베어를 찾는다.
부스럭 부스럭, 젤리 봉지가 살아있는 듯한 그 소리를 들으며 빨강, 노랑, 주황, 연두의 곰돌이들을 불러낸다. 예쁘게 물들어 있는 젤리의 달콤한 향이 코끝을 건드리면 충전 on. 손가락 끝에 달짝지근한 향이 배일 때쯤이면 충전 ing.
온 몸의 힘을 쭉 빼고 누워 있는 채로 손가락 끝의 힘만 이용해서 곰돌이들을 푹신한 이불 위에 흩뿌려 놓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봉지에서 바로 꺼내진 젤리보다는 보드라운 이불 위에 흩뿌려져 잠시라도 휴식을 취한 젤리가 더 맛있다. 뭔가 더 자유롭고 쫄깃한 기분, 아니 식감이랄까.
이 곰돌이 젤리라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곰돌이 모양인 덕분에 할 수 있는 놀이가 하나 있는데, (그나마도 내 몸에 조금의 힘이 남아있을 때나 가능한 놀이다.) 그것은 바로 곰돌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봤을, 재조립 놀이이다.
사실 재조립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지 않아도 되지만, 빨강 곰의 머리를 떼어 노랑 곰의 몸에 붙이는 기묘한 놀이를 간단하게 표현할 만한 그 이상의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어린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잔인함이 되살아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새콤달콤하다 못해 앙큼한 곰돌이의 몸이 하나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두 가지의 맛을 한 번에 느끼고 싶은 혀의 이기심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잊을 만하면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놀이 중 하나이다. 베어를 베어 물면서 묻어나는 약간의 수분만으로도 원래의 몸과 머리인듯 짝 달라붙어 하나의 곰인척 시치미를 떼고 있는 모습이 꽤 사랑스럽다고나 할까.
또 한 가지의 놀이는 인형극 놀이. 이것 또한 인형극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쓸 필요는 없지만,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곰의 쫄깃한 몸뚱이를 왼쪽 꾸욱, 오른쪽 꾸욱, 양쪽을 꾸우우욱 누르면서 살아있는 듯 씰룩거리는(정확히 말하자면 나에 의해 씰룩거려지는) 곰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는 해괴망측한 놀이를 적절하게 표현할 만한 그 이상의 단어를 아직은 찾지 못했다.
보통은 재조립놀이 이후에 인형극놀이가 행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새로이 재탄생한,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쥬얼의 곰 젤리에 대한 일종의 환영 인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미 베어는 이름 탓인지 한국말을 잘 모를 것 같은 느낌에 짧은 영어 실력을 끌어모아 Hello나 Hi 정도의 인사를 건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저런 놀이를 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 그저 왼쪽으로 질겅, 오른 쪽으로 질겅, 양쪽으로 질겅이며 젤리를 잘게 씹어 본다.
멍한 두 눈이 아무렇게나 던져버린 시선으로 천장을 바라보면서 입 안을 굴러다니는 쫄깃한 몸뚱이를 그저 반복적으로 질겅이다 보면 가끔은 턱이 욱씬거리기 일쑤지만, 그 알록달록한 달콤함의 조각들이 입 안 이곳저곳을 달달하게 물들이면 내 기분도 어느새 빨강, 노랑, 주황, 연두색으로 물들고 만다.
복잡하고 지저분한 머릿속의 모든 것들이 그저 곰돌이의 몸뚱이처럼 동글동글 몽글몽글해지고, 정신없는 낙서로 가득한 생각의 벽은 하나의 색으로 단순하게 물들어 버린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늦은 시간이 되면 젤리를 찾는다. 나의 기분을 너의 색으로 물들여줄, 그 작고 탱글탱글한 몸짓에 나의 늘어진 몸뚱이를 맡긴 채.
나는 지금도 충전 중, 아니 젤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