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디

자신의 모습을 버린 채 누군가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by 클링키

이 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많다. 먹는 순간 정말 맛있다, 라고 감탄하게 되는 음식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입을 댄 순간 행복하다, 라고 느끼게 되는 음식은 거의 없다. 그리고 개 중에는 행복을 넘어 패배감 마저 느끼게 하는 음식이 있다.
나에게 스무디는 입에 넣는 순간,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음식이다.

스무디가 혀인지, 혀가 스무디인지 모를 정도의 황홀하고도 작은 토네이도가 입 안에 일순간 가득찬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사실 이 스무디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음식은 아니다. 스무디를 만들어 본 사람이나, 스무디 가게에서 주방을 조금 기웃거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약간의 우유에 약간의 과일, 그리고 약간의 얼음과 약간의 시럽. 그 약간,약간,약간이 모여서 부르르르르르 하고 갈리면 한 컵의 스무디가 완성된다.


황금빛 목장에서 불로초를 먹으며 자란 소들에게서 얻어낸 우유도 아니고, 저 멀리 북극에 사는 북극곰의 얼음집을 몰래 떼온 얼음도 아니다. 지상 낙원 같은 그 어딘가에서 아담과 이브가 먹던 신성한 과일을 훔쳐 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저 그런 재료들이 믹서기 안에 갈려 형체도 없이 그저 한 컵의 '스무디'가 되어버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모두와 섞여서 하나의 음식이 되어버리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 흔한 재료들이 특별해진다.


스무디는 한 컵에 담긴 융화. 한 잔의 찰랑이는 조화 그 자체다.

자신의 모습을 버린 채 누군가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누군가와 자연스레 섞여 '우리'가 된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는 음식이 스무디 아닌가. 나는 진정으로 우리가 되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라는 이름 하에 자신이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하지는 않았는가. 나를 희생하여 더 큰 무언가가 되어본 적이 있는가.

없다. 그래서 나는 스무디처럼 맛있는 인간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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