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끝으로 입 안에 남겨진 초코 코팅 조각을 조심스레 찾으면서-
김영하의 소설집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읽고 있을 때였다.
<아이스크림>이라는 소설 속 '조심스럽게 비닐포장을 반쯤 찢어 한입 베어물고 초콜릿 코팅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질 무렵이면'이라는 구절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방 안에서 책을 들고 뒹굴고 있던 내 머리 속에 하나의 앙증맞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무언가가 떠올랐다.
티코.
조심스럽게 빨갛고 얇은 비닐포장을 찢으면 초콜릿 코팅이 된 조그마한 몸뚱이를 드러내던, 그 아이스크림.
'스물네 개의 소포장 아이스크림'이라는 설명을 읽고 보니 소설 속의 주인공 아이스크림이 티코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코는 열 다섯 개의 소포장 아이스크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소설 덕분에, 추억의 맛처럼 아득하고 그리운 티코 그 아이스크림이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뒤로 몇 일 동안 나는 티코의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퇴근 길 캔맥주를 사러 동네 마트를 어슬렁 거릴 때에도, 어머니를 따라 대형 마트에 생필품을 사러 갈 때에도, 나는 어김없이 '티코티코티코'를 마음 속으로 남몰래 중얼거렸다.
한 번은 오랫동안 누구도 찾지 않은 듯한 티코박스가 찢어지기 직전으로 일그러진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선뜻 집어오기에는 찝찝해서, 한 번은 어린이도 아니면서 저런 걸 사냐는 어머니의 타박에,(어린이와 어른의 음식이 따로 나뉘어져 있는지 나는 정말로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한 번은 박스 옆 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얼음 알갱이들 속에서 빠끔 고개를 내밀고 있던, 유통기한으로 보이는 '2013.6.20' 이라는 숫자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티코를 사지 못했다.
끊임 없이 눈으로는 티코를 쫓으면서도 옆에 있는 다른 아이스크림을 집어야 했고, 아쉬운대로 티코보다 한참이나 흐리멍텅한 색깔의 초콜릿 코팅이 된 길쭉한 누가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내가 티코를 갖게 된 것은 박스 옆면의 숫자가 유통기한이 아닌 제조일자 라는 것을 알고 난 뒤였다.
그렇게 한참을 그리던 티코를 손에 넣고 돌아오는 골목길, 지치고 무거운 발걸음은 설레듯 깡총이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고 어둑한 아파트 단지의 희미한 가로등도 그날따라 꽤나 낭만적으로 느껴졌다면 지나친 오바일까.
집으로 도착한 나는 드디어 박스를 뜯고, 얇은 비닐 포장을 조심스레 뜯어 티코를 입에 물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진하고 쌉쌀한 다크 초콜렛의 맛은 아니었지만, 뒤늦게 박스위에 귀여운 글씨체로 적힌 '밀크 초코'라는 문구를 보고 티코의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그 날 자정이 되기 전까지 세 개의 티코를 입에 밀어 넣고 말았다.
열 다섯 개의 소포장으로 이루어진 티코는 레드와 레드브라운의 조화로 이루어진 각기 다른 모습의 포장지 안에 싸여 있다. 아마 똑같은 틀로 찍어내고 똑같이 초콜릿 코팅을 한 뒤에, 티코 각자의 취향과는 상관 없이 랜덤으로 제각기 다른 옷을 입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섯개씩 나란히 세줄로 사이좋게 들어가는데 아마도 같은 옷을 입은 녀석들끼리 옆자리에 붙어 있는 것은 크게 신경쓰지 않은 눈치였다. 박스를 뜯으면 그 조그마한 몸에 유난히도 얇은 비닐 옷을 걸쳐 입고는 옆으로 돌아누워 다닥다닥 잠들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과자들이나 아이스크림과는 다르게 가늘게 찢어질 정도의 얇은 비닐 포장이라는 것이 조금 특이한데 그것이 티코의 귀여운 몸에는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격적인 부분 때문이라든지, 보다 현실적인 진짜 이유가 있겠지만.
티코는 한 입에 털어 넣기에는 조금 크고, 나누어 먹기에는 얇은 초코 코팅이 힘없이 부서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보통의 경우 그 작은 티코를 다섯 번 정도에 걸쳐 나누어 먹는데, 하염없이 마구 부서지는 초코 코팅 조각을 잘 달래줘야 한다. 잘못 베어 물면 배려 없고 줏대 없는 초코 코팅의 윗면이 내 앞니를 따라 그대로 들리면서, 반 쯤 남아있는 티코의 하얀 몸뚱이가 그대로 드러나 버리기 때문에 늘 주의 해야 한다. 부서진 조각일지언정, 몸 위에 초코가 조금이라도 붙어 있어야 티코가 혼자 수줍어하거나 쓸쓸해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초코 코팅과 함께 먹을 때에 진정한 티코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나의 기쁨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밥을 먹고 난 뒤에 달콤한 후식으로, 늦은 새벽 당분이 떨어져 잠이 오지 않을 때, 갸냘픈 포장을 조심스럽게 쭈우욱 찢고 제멋대로 부서지는 초코 코팅을 살살 달래며, 햐앟고 작은 티코를 살며시 입에 밀어 넣으면 나도 모르게 달콤하고도 경건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간편한 소포장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한 없이 조심스러워야하고 차분해야 하는그 과정들을 거치고 나면 달콤한 바닐라 향이 입 안에 맴돌고 어금니 안 쪽에는 초코의 깊은 향이 촉촉히 남아 있다.
나도 모르게 혀 끝으로 입 안에 남겨진 초코 코팅 조각을 조심스레 찾으면서, 가만히 생각한다.
아, 티코를 사길 정말 잘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