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로하는 뜨겁고 작은 바다.
추운 겨울, 어둑한 조명의 술집 테이블 위 넓고도 오목한 그릇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안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작은 바다가 있다. 물고기가 살지는 않지만, 차가운 겨울 내 몸을 녹여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 기울어가는 술잔을 한 잔 씩 홀짝홀짝 비워 가면서 더욱 따뜻하게 달아오르던 내 몸은, 어느 작은 술집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 따끈한 홍합탕도 함께 홀짝이고 있었다.
홍합탕에 대한 기억이 뜨거우리만치 따뜻했던 것은 그 날 내가 마신 술의 양이 적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어느 날 문득 그 작은 바다에게 뜨겁게 위로 받았다.
흔히들 소주 안주로는 탕이 최고라고들 말한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쓰디쓴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면서 혀 끝이 얼얼할 무렵, 다른 따끈한 국물이 혀끝에서부터 그 쓴 맛을 씻어 넘겨주기 때문이 아닐까. 취하고는 싶고, 마시고는 싶고, 쓰긴 하고, 속도 쓰린 것 같고, 그럴 때 따끈하게 목구멍에 함께 흘러 들어가는 국물이 있다면 보다 더 용감하게 취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음주와 해장을 동시에 하는 기묘하고도 안정적인 느낌이라면 이해가 갈까.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도 탕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홍합탕.
일단 맑은 국물이 자극적이지 않고 우아해서 좋다. 쓰디쓴 술을 넘긴 후 급하게 빨간 짬뽕 국물을 떠먹다가 콜록이던 남자 선배의 모습이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 않았던 21살 때의 기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쩐지 하얗고 맑은 국물은 빨간 고춧가루가 풀어진 탕보다는 편안하고 우아해 보인다. 통통 튀고 재밌는 자극 적인 친구보다 조용하게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그런 친구가 필요한 밤이 있지 않은가. 그런 밤에 어울리는 친구가 바로 홍합탕이다.
차분하게 조용히 쓸쓸하게 스며들듯이 그렇게 취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서서히 온 몸으로 번져가는 술기운에 조금 저릿해져오는 손끝으로 술잔을 내려놓을 때 보드라운 홍합살이 짭짤한 국물을 타고 목구멍으로 흘러들면, 아 쓰디쓴 술도 마실만 하구나, 씁쓸한 인생도 살아볼만 하구나, 라는 생각에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있다. 만약 그런 기분을 느꼈다면 당신은 홍합탕에게 충분히 위로 받은 것이다. 당신의 술잔 옆에 홍합의 검은 껍데기가 수북히 쌓일 때쯤에는 이미 그 날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떠한가.
추운 겨울 바다는 위로할 수 없는 당신을 고작 홍합 몇 개가 담긴 작은 바다가, 어둑한 술집 테이블 위에서 따뜻하게 감싸주었음을 당신은 어렴풋이나마 기억할 것이다. 당신 옆에 쌓인 홍합 껍데기의 수는 절대 기억할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