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히피들의 마지막 해방구
신들의 섬, 요가 수행자를 위한 도시, 비건(Vegan)과 서퍼의 천국 등 발리를 수식하는 단어는 많다.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의 유일한 힌두교 섬, 쪽빛에서 에메랄드빛까지 다양한 색깔을 지닌 바다와 1년 내내 멋진 파도를 만날 수 있는 모든 서퍼가 동경하는 핫 스폿, 원숭이들의 숲과 깊은 계곡이 있는 열대우림, 지금도 화산활동 중인 아궁산과 뜨갈랑가(Tegalalang) 계단식 논이 조화롭게 어울린 천혜의 자연환경과 1000년 가까이 보존해 온 전통문화, 채식주의자가 외식하러 나가기 전에 미리 정보를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도시, 현지인과 외지인들이 조화를 이루며 형성한 풍부한 문화가 매력적인 섬, 정글의 은밀한 풀빌라부터 호사스러운 부티크 리조트, 풀파티로 유명한 해변 비치 클럽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고 일탈과 자유를 찾아 떠나온 여행자에게는 완벽한 환경을 갖춘 섬, 이 모두가 발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https://youtu.be/mjay5vgIwt4?si=F7fGNRPprrItWKMt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에서 주인공 리즈(쥴리아 로버츠)에게 있어서 발리는 인생의 해답을 찾아 나선 구루(guru)가 사는 '신들의 섬'이었다.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으로 완전히 소진된 상태에서 발리로 왔다가 발리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치유를 얻고 남은 인생의 가르침을 받았다라든지, 답을 찾으러 떠났다가 답을 구하고 돌아왔다는 '간증'이 호텔 평점이나 맛집 후기만큼 발리에선 흔하다. 발리는 포용의 땅이다. 이 섬에 도착한 이들은 국적, 종교, 직업, 재력의 유무에 따라 차별받지 않으며 따듯한 환대를 경험한다. 그래서 호기심에 짧은 여행을 떠났거나 또는 평화와 안식을 위해 이 열대 섬을 찾은 많은 여행객은 종종 이곳에 정착하거나 이주를 계획하기도 한다. 최근엔 요가와 명상을 통해 내면을 돌보거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모색하려는 창의적 인재들이 속속 발리에 모여들면서 전통적 관광산업 이상의 가치를 지닌 대안적 삶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발리의 묘한 매력은 섬 특유의 자연 신앙과 힌두교가 만들어진 발리인의 종교관에서 비롯된다. 세계 최대 이슬람 인구가 사는 본토와 달리 주민 대부분이 힌두를 신봉하는 독특한 지역 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4세기부터 힌두 자바인이 발리에 거주하며 힌두 문명을 뿌리내렸다. 16세기경 이슬람 세력이 자바에 근거지를 둔 마자파힛(Majapahit) 왕조를 멸망시키자 많은 신하, 승려, 공예사들이 발리로 피난을 오게 됐다. 이때부터 발리에는 힌두 문화의 꽃이 피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발리의 힌두 문화는 인도의 그것과는 다르다. 발리에도 카스트제도가 있지만, 상위 세 계급이 인구의 7%에 불과해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애니미즘을 기반으로 한 토착 신앙과 조상 숭배, 불교가 결합해 그 내용도 힌두교의 원형에서 벗어난 것이 많다. 발리인에게는 종교는 지극히 엄숙한 무언가가 아니라서 종교가 곧 일상임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인도인과 달리 소고기도 먹으며, 일반 가정집은 물론 호텔들에서도 신을 모신 사당이 있고, 손바닥만 한 야자 또는 바나나 잎으로 엮은 바구니에 꽃과 쌀밥, 사탕, 작은 장신구, 향 등을 담은 차낭 사리(canang sari)를 매일 아침 신에게 바치고 저녁에 치운다.
발리인에게 힌두교는 신앙이자 춤과 회화, 건축은 물론 문화의 전반적 영역에 걸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회·정신생활의 핵심이다. 발리인은 업(karma)을 믿는다. 현재의 행위는 그 이전의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좋은 일을 하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 생긴다고 여긴다. 그래서 발리 거리 어디에서나 미소, 친절, 여유 그리고 관용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런 종교적 믿음과 생활은 발리를 더욱 아름다운 '신들의 섬'으로 만들고 발리인 특유의 포용성으로 나타나 누구나 자유롭게 머물다 자유롭게 떠나게 만든다. 외지인이 융화되기 좋은 환경은 발리가 오늘날의 부흥을 이루는 데 결정적 요인이다.
https://youtu.be/wf6MjMeN8Jo?si=px0NI-yXC6RMm9PL
발리인의 열린 마음은 1900년대 네델란드 식민지 정부 관리자들이 처음 이 섬을 찾은 이래 외부인의 유입을 꾸준히 가능케 했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발리는 ‘파라다이스’로 변모했다. 1920년대 네델란드는 유럽과 미국의 신흥 부자들에게 발리를 미지의 땅이자 신비로운 섬으로 홍보를 했다. 이국적 매력에 이끌려 자바섬이나 발리섬을 방문한 해외 예술가들은 그곳에서 받은 영감을 그림이나 여행기로 남기곤 했는데, 그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다른 예술가가 발리로 여행을 가거나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1932년 발리를 방문한 찰리 채플린이 발리를 "지구 상에 다시 또 없을 것 같은 미지의 섬"이라도 표현했는데 이후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된 'Chaplin in Bali 발리의 채플린'의 줄거리를 보면 '유성 영화에 대한 부담감으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던 찰리 채플린은 그의 영화 <시티 라이트>의 유럽 프로모션 투어 후 할리우드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발리로 떠난다. 발리는 그가 소리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후 그가 대사뿐만 아니라 노래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는 <모던 타임즈>를 만들게 되는, 그의 영화 인생에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해 준다.' 비단 채플린뿐만이 아닌 서양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1930년대 발리는 ‘발리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
발리가 관광지로 본적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응으라라이 국제공항이 개발·확장되면서부터이다. 발리의 1세대 이방인이라 할 수 있는 호주인 서퍼를 시작으로 1980년대 이후에는 관광업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거리가 가까운 호주 사람들이 건너와 클럽, 파티, 서핑 같은 서구식 휴양 문화를 개척했다. 호주는 퍼스(Perth)에서 4시간 정도 거리로 비교적 가깝고 비용이 적게 들어 지금도 호주인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해외 휴양지이다. 스미냑, 꾸따, 짱구에는 호주인 '큰손'이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클럽이 줄지어 있다. 서핑을 즐기기에 좋은 파도와 해안, 교통시설의 발달과 매우 저렴한 물가는 전 세계의 히피와 배당 여행자, 서퍼들을 발리로 불러들였다. 냉전시기 히피들의 마지막 해방구가 된 것이다.
발리는 2010 년 Travel and Leisure에서 Best Island Award를 수상했다. 발리는 매력적인 주변 환경 (산과 해안 지역), 다양한 관광 명소, 훌륭한 국제 및 현지 레스토랑, 현지인들의 친근 함으로 인해 우승했다. 2011 년에 발표된 BBC Travel에 따르면 발리는 그리스 산토리니에 이어 세계 최고의 섬 중 하나로 선정됐다. 2006 년 Elizabeth Gilbert의 회고록인 Eat, Pray, Love 가 출판되었으며, 2010 년 8 월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발리의 우붓과 빠당빠당 해변이 담겨있다. 이 책과 영화는 전통적 영성과 치유를 통해 길버트가 균형과 사랑에 대한 탐구의 초점이었던 언덕 마을과 문화 및 관광 센터 인 우붓 관광의 붐을 일으켰다. 2016 년 1 월, 뮤지션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사망한 후, 그의 유언에 따라 불교의식으로 발리에 재를 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방콕과 싱가포르를 포함하여 경력 초기에 여러 동남아시아 도시를 방문하고 공연했다. 인도네시아 국제 영화제는 매년 발리에서 개최된다. 2017 년 3 월, 트립어드바이저 TripAdvisor는 발리를 세계 최고의 여행지로 선정했다. 2017년 11월, 발리섬 동북부에 자리한 아궁 Agung산이 50년 만에 화산활동을 재개하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해발 3031m 높이의 아궁산은 발리 사람에게 영적 발원지이면서 대자연의 뿌리라는 데 깊은 의미가 있다.
참고 및 인용
Canang Sari charming tradition _Bali Bible
Charlie Chaplin in Java, Bali & Sri Lanka (1932) - Rare archival footage
SURFER - History of Surfing in Ba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