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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종현 Oct 24. 2021

사무 공간의 미래

현재가 된 일의 미래 : Future of Work 10

나의 첫 직장은 삼성전자였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7.4제가 시행 중이었다. 당시 수원 집에서 나와 남대문 삼성 본사까지 출근을 하려면 버스와 전철을 타고 1시간 30분 정도 출근시간이 걸렸다. 전날 회식으로 과음이라도 해서 속이 안 좋아 새벽 첫 번째 차와 두 번째 차를 놓치면 어김없이 지각이었다. 당시의 자리배치는 창가 쪽을 등지고 부서장의 책상이 있고 그 앞에 몇 열 종대로 첫 번째 자리엔 과장급, 그 앞으로 세로로 두 줄, 마주 보는 형태로 직원들의 책상이 직급에 따라 배치되어 있었다. 통로에는 사내방송용 TV, 그 옆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출입문이 있었다. 7시 정각에는 모든 직원이 자리에서 사내방송을 시청한 후 업무를 시작했다. 출근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모든 직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자리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모두 약속이라도 했듯이 부서장은 이미 6시에 출근, 과장은 6시30분에, 사원은 6시50분까지 출근을 해야 했다. 이것은 이미 사무실 공간의 자리배치만으로도 부서장이 모든 직원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어있었고 서열에 따른 권위가 이미 사무실 공간에 녹아 있었다.

80년대 사무실

오프라인 공간에 모이는 행위는 권력구조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구조는 공동체를 만든다. 우리가 보는 많은 권력은 공간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회사 사옥의 공간에서도 제일 높고 뷰가 좋은 곳에는 대표이사의 집무실이 한 층을 차지하고 사원들의 업무 자리는 지하 공간에도 빽빽하게 위치한다. 영화 '기생충'에서와 같이 사회적 지위의 수직화도 공간에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동일한 공간에서 일반적으로 시선이 모이는 곳에 위치한 사람은 권력을 가진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서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면 권력만 생기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 의식도 강해진다. 사람은 시공간을 함께 보내면서 공동체 의식 또한 함께 자라난다. 일반적으로 권력은 예식과 규율을 강조한다. 예식과 규율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주는 것이다. 교회의 예배시간, 학교의 등교와 하교시간과 마찬가지로 회사도 9시에 출근해서 여덟 시간 사무실에 있어야 한다는 것들이 해당된다. (공간의 미래 _유현준)


코로나19 전염병이 만든 재택근무에 대한 전사적인 경험은 “업무를 꼭 한 공간에 모두 모여서 해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온라인 재택근무는 기술적으로 수십 년 전부터 가능했던 일이지만 “부하 직원은 내 눈앞에서 일해야 한다. 암묵적인 감시가 없다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고 비효율적이며 비생산적일 것이다.”라는 상사, 경영진, 대표이사의 막연한 생각 때문에 실행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2년에 가까운 전염병 팬더믹을 겪으면서 처음엔 코로나 감염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재택근무가 수시로 시행이 되고 일부 회사에선 정규 근무화 되면서 이런 불신과 우려는 상당 부분 사려졌다. 오히려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가 향상이 되고 관리와 운영 재경비가 줄어들어 회사 입장에서도 기대하지 않은 장점도 부각이 되었다. 회사와 직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면 굳이 기존 업무 방식을 고수할 필요는 없게 된 것이다. 한 가지, 공동체 의식은 분명히 약화된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밀레니얼 세대부터 공동체 의식은 사라지고 있었다. 평생직장 개념의 실종, 회식 문화도 꼰대 문화의 상징이 되며 사라지고 있었고 직장 생활도 철저하게 사생활을 존중해 주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과정이었다. 이제 재택근무까지 하니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회사 생활이 되었다. 즉 공동체에서 개인주의적 형태로 가는 과정을 전염병이 더욱 가속화시킨 것일 뿐이다. 


Facebook horizon Workrooms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더믹은 그동안 공간이 만든 권력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사무 공간은 이제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가?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재택근무를 경험한 회사가 업무 성과와 효율성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다면 페이스북이나 PWC, 네이버 라인과 같이 영구 재택근무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일주일에 며칠 정도 유연 재택근무를 결정하는 추세다. 이런 경우 기존 업무 공간이 모두 필요하지는 않게 되므로 남은 공간 활용을 휴게공간이나 회의실 등을 늘리는 회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 전 사원을 모두 수용해야 하는 규모의 사옥에 대한 니즈는 점점 줄어들고 공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게 된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엔 거점 위성 오피스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는 IT 기업을 중심으로 거점 오피스가 늘었다면 올해는 업종과 관계없이 거점 오피스를 새롭게 만들고 있는 게 특징이다. 오피스 근무의 장점은 살리되 재택근무의 단점을 보완하고, 출퇴근 시간을 단축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이미 SK텔레콤, 현대차, KT, 롯데쇼핑 등이 실행하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지정석을 두지 않고 공용 공간을 나눠 쓰던 공유 오피스가 사무공간의 혁신을 이끌었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거점 오피스가 혁신의 바통을 넘겨받은 것이다. 대기업이 사내벤처를 만들면 제일 먼저 공유 오피스로 내보내는 것도 요즘 트렌드라서 공유 오피스를 거점 오피스로 활용하는 회사들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오프라인 공간을 대체할 가상공간에 대한 실험도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페이스북과 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은 메타버스 회의 플랫폼을 이용한 협업이나 채용설명회가 늘어나는 등 현실에서의 '대면'을 실감 나게 대체할 가상현실에 대한 수요에 대응하는 서비스를 앞다투어 개발하고 있는 중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메타버스 기업으로 회사를 탈바꿈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등 가상공간에 대한 빅 테크 기업들의 각축전이 예상된다.


디지털노마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 바이브컴퍼니 송영길 부사장 -삼프로TV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넘어 디지털노마드를 채택하게 될 것이다. 사무 공간에 대한 제약을 풀어서 어디서든 원하는 곳에서 업무를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영국은 보도에 따르면 도시 거주자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가 늘자 안락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홈오피스를 원하고 있다. 도시 내 임대 주택 거래는 감소했지만, 반대로 도시 외곽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주택 수요는 늘었다고 한다. 복잡하고 답답한 대도시 아파트보다 넓고 쾌적한 시골 주택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라고 한다.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비싼 집값으로 유명한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시 탈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공실률은 5.1%까지 치솟아 1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맨해튼은 부유층의 사교모임이나 문화 접근성이 뛰어나지만, 코로나19 봉쇄령으로 그 장점이 무용지물이 됐다. 세입자들이 비싼 임대료를 주고 작은 아파트에 갇혀 사느니 같은 가격에 넓고 쾌적한 주택에 살겠다며 떠났다. 미국 하와이주는 전 세계 재택근무자를 대상으로 한 달 이상 거주를 약속할 경우 왕복 항공권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비싼 도심의 집을 임대를 주고 하와이로 디지털노마드를 하러 간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최근 제주도에서도 과거 한 달 살기 열풍이 다시 재현되고 있어서 단기 임대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태이다. 양양에서도 일하며 서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도 자주 들린다. 이제 위드 코로나로 안전한 국가별로 빗장을 풀기 시작하면 해외여행은 활성화되고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방콕, 치앙마이, 발리 등 이미 디지털노마드 천국으로 불렸던 동남아시아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 디지털노마드 들이 다시 모이게 될 것이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 젊은이들이 BTS, 블랙핑크의 노래와 춤을 따라하고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1위를 차지하는 등 어느새 문화강국까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전면 자유화된 지 30년이 흐른 지금 연간 출국자 수가 코로나 이전 3,00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 3000만 명이 2년 동안 참아왔던 해외여행은 위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 분명히 더 폭발할 것이다. 더 많은 전 세계 젊은이들도 한국어를 배우고 신 문화강국인 한류를 경험하기 위해 올 것이다. 어느새 TV 예능프로그램에는 능숙한 한국어로 토론을 하는 외국인들을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10년 전 도쿄에 출장을 가보면 백화점에서 능숙한 일본어로 제품을 판매하는 서양인을 보고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이제 한국이 그렇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도 좀 더 세계로 나가고 세계의 인재들을 자유롭게 채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MZ세대에게 디지털노마드는 분명히 세계의 여러 문화를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기업의 입장에서도 사업을 글로벌로 확장하고 글로벌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업무 시스템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인재를 뽑기 어렵다는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인가?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으면 스스로 신속히 적응해야만 한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_윌리엄 깁슨






참고 및 인용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변화, 공간의 미래 _유현준

고층 오피스빌딩 출근 사라질까…코로나 끝나도 거점오피스 는다 _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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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노마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 비이브컴퍼니 송영길 부사장 -삼프로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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