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바웃 타임> 리뷰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 데이에 보고 싶은 영화를 뽑는 다면 사람들은 어떤 영화를 선택할까? 나는 <어바웃 타임>을 추천하고 싶다. <어바웃 타임>은 지금껏 내가 본 영화 중에서 제일 달콤하고 로맨틱한 영화니까.
팀(도널드 글리슨)에겐 특별한 재주가 하나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의 집안 남자들에게 있는 능력이다. 벽장 같은 좁고 어두운 곳에 들어가 주먹을 꽉 지면 되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시간으로 타임 워프를 할 수 있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디에 사용하고 싶을까? 아마도 자신이 가장 후회하는 시간으로 돌아가서 과거를 바로잡고 싶을지 않을까? 하지만 소심하지만, 남을 배려할 줄 도 알고 누구에게나 상냥한 이 남자는 후회할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써먹을 일이 크게 없었다.
팀의 유일한 관심사는 사랑을 찾는 거였다. 드디어 그 능력을 사용할 기회가 찾아오고, 첫사랑을 만들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하지만, 사랑은 그가 가진 능력으로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첫눈에 반했던 첫사랑(마고 로비)에게 제대로 된 고백을 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지만 그녀의 대답은 여전히 정중한 거절뿐이다. 팀의 첫 시간 여행은 이렇게 실패로 끝나고 그는 사람의 마음은 시간 여행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변호사가 되어 런던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팀은 친구와 우연히 방문한 '블라인드 데이트 카페'에서 사랑스러운 여인 메리(레이첼 맥아담스)를 만난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연락처를 얻어냈지만, 연출한 연극을 망쳐 괴로워하는 친한 연출가 해리를 위해 시간 여행을 하느라 모든 게 뒤바뀌게 된다. 메리와 만난 시간도 그녀에게서 받은 연락처도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아쉬워하던 팀에게 황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케이트 모스'의 사진전이 런던에서 열리게 된 거다. 메리와의 짧았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케이트 모스 열혈팬이란 걸 알았고 그녀를 다시 만날 유일한 기회는 그 사진전뿐이다. 그렇게 팀은 사진전에 매일 찾아가서 메리가 나타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운 좋게 메리를 다시 만났지만 메리에겐 그 사이 새 남자 친구가 생겼고, 그런 현실을 고치기 위해 팀은 다시 시간 여행을 시도한다. 그리고 몇 차례의 시간 여행 끝에 팀은 결국 그녀와 연인이 된다.
다시 시작된 둘의 첫 만남 이후, 팀과 메리가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번진다. 풋풋하면서도 달달한 연인들을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은 세상의 어떤 악한 것들도 존재하지 않을 거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너무 포근해진다. 진짜로 예쁜 사랑은 누군가 한 사람이 더 좋아해서도 안되고, 누군가에게 사랑의 권력이 더 쏠려 있어도 안 된다. 동등하게 서로 배려하고 똑같은 무게로 존중해 줄 때만 가능하다 영화 속 몽글거리는 사랑이 가능하다. 그래서 천생연분이란 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상냥한 마음과 온 마음을 다 끄집어내어 진실하게 다가설 때에만 우리들의 사랑은 오래 유지될 수 있고 갈등도 피할 수 있다. 팀과 메리가 보여주는 사랑의 형태를 보고 있으면 나까지도 충만한 행복감이 마구마구 밀려온다. 그래서 팀과 메리는 내가 본 가장 사랑스러운 커플이다. 그렇게 서로가 잘 맞는 짝이니, 당연히 그 둘은 결혼식을 하게 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결혼식을 말이다.
그들의 결혼식은 정말 특별했다. 흰색이 아닌 빨간 웨딩드레스를 입은 메리의 모습부터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감독은 이 결혼식을 통해서 세상의 관습을 따르는 결혼식이 아닌 신랑 신부가 오로지 주인공인 결혼식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신부 입장 음악으로 그 흔한 결혼 행진곡 대신 신랑이 가장 좋아하는 곡을 골라준 메리의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는 가를 보여 주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식장에서 춤까지 추는 팀의 모습도 그녀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는지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현실에서의 결혼식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객들을 위해, 가족들의 체면치레를 위해, 형식적으로 치러지던 결혼식만 보아 온 나로선 이 영화의 결혼식 장면은 너무 매혹적이었다. 몇 가지 소소한 해프닝들이 있었고 그래서 팀과 팀의 아버지는 교대로 시간 여행을 통해 바로잡기도 했지만, 신랑 신부에겐 완벽한 결혼식이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진심으로 축복해 주고 오롯이 신랑 신부를 아껴주는 모습을 비바람 치는 날씨 따위가 훼방 놓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난다. 왜냐면 세상의 모든 로맨틱함은 결혼식과 함께 더 이상 보여줄 게 없으니 말이다. 결혼은 현실이고 매일을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달랐다. 결혼식이 엔딩이 아닌 영화의 전반부였고 그 뒤의 삶을 통해 시간과 사랑의 의미를 좀 더 성찰하게 하는 섬세한 연출을 보여준다.
아이가 태어나고 팀과 메리도 의무감이란 무게를 어느 정도 짊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갈등 요소는 전혀 아니다. 진짜 현실에서처럼, 그 무게감 속에 소소한 삶의 행복도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팀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일상을 두 번 반복해서 살아 봄으로써 처음에 놓쳤던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느낀다. 우리에게도 시간을 다시 사는 마법을 누리는 순간이 있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시간이 그 순간이다. 육아를 한다는 건 어쩌면 시간 여행 능력을 갖지 못한 우리들에게 똑같은 시간을 한번 더 살게 해주는 유일한 마법인지 모른다.
나 자신이 성장하느라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을, 그래서 그 시간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든 수많은 순간을, 우린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객관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부모의 정신적 나이는 아이들의 육체적 나이에 비례해 먹어간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 같다. 그러니 육아는 엄밀하게 부모의 삶을 포기하고 희생만 하는 거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통해 부모들은 예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유아기, 청소년기를 다시 경험하게 되고 비로소 성숙한 사람으로 재탄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팀의 시간 여행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가능하다. 아이를 낳기 전으로 돌아가면 지금의 아이가 바뀌어 버리는 일이 생긴다. 이유는 영화에서 설명해 주었지만 납득은 잘 안된다.^^ 이 영화는 로맨틱 판타지 장르니 문제가 될 건 없지만. 아무튼 그래서 암에 걸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한 시간 여행은 불가능해졌고 그렇게 아버지와 마지막 작별을 고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과거로 함께 돌아가 바닷가를 산책하는 장면은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진실을 일깨워주는 가슴 아픈 명장면이었다.
그렇게 팀은 똑같은 일상을 두 번씩 살아 본다. 두 번의 삶을 통해 인생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선물인지 몸소 깨닫게 된다. 처음 만나 데이트하던 그 시간들처럼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충실한 삶, 그런 삶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삶이다. 행복은 그렇게 매 순간 일상에 충실하고 만족할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거 같다.
두 배우의 사랑스러운 모습만큼이나 이 영화를 더 빛나게 만들어 주는 건 주제가다. <How long will I love you>는 사랑의 달콤함을 시간을 통해 철학적으로 그려내는 이 영화와 딱 들어맞는 곡이다. 이 음악이 나올 때면 늘 짧은 앞머리를 부끄러워하는 메리의 모습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완벽한 남자가 되고 싶어 첫날밤 시간 여행을 반복하는 팀의 모습이 떠올라 한없이 달콤해진다. 그래서 밸런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가 돌아오면 난 언제나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본다. 초콜릿이나 사탕보다도 백배는 더 달콤한 영화라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