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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린 Jun 23. 2022

당신의 '황금시대'는 어디쯤인가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리뷰

과거도 현재도 낭만이 흘러넘치는 파리


우디 앨런의 영화들이 늘 그렇듯 멋들어진 재즈 음악이 경쾌하게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롱테이크로 잡은 파리의 풍경은 관객들에게 파리의 낭만을 심어 놓기에 충분하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인 길은 약혼녀 이네즈와 함께 파리 여행을 왔다. 새로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길'에게 파리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도시다. 파리 거리가 뿜어내는 예스러움과 낭만에 푹 빠진 '길'과는 달리, '이네즈'는 보통의 흔한 관광객들처럼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나 레스토랑과 쇼핑센터를 방문하는 게 더 좋다. 그렇다고 이네즈가 잘못이란 건 아니다. 단지 둘의 취향이 다르다는 것뿐. 


길이 과거의 프랑스 문화를 동경하고 향수에 젖어 있는 반면 이네즈는 현재의 생생한 파리를 마음껏 즐긴다. 그래서일까? 그 둘의 관계는 파리 여행을 하는 동안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자긴 너무 환상에 빠져 있어


이네즈와 길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길은 비 오늘 파리 거리를 거닐거나 센 강 주변을 거닐면서 조용히 사색하는 게 즐겁다. 하지만 이네즈는 우연히 만난 친구 커플과 댄스 파티나, 와인 시음회 같은 곳을 가고 싶어 한다. 


"자긴 너무 환상에 빠져 있어."


이네즈가 길에게 던진 이 말은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 부류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네즈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길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시간보다 1920년대의 시절을 더 동경한다. 그 시대가 길에겐 문화적으로 찬란하게 꽃 피웠던 '골든 에이즈(황금시대)'였으니 말이다. 


예술가들이 종종 보이는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나 지독한 집착 같은 게 길에게는 있었다. 어쩌면 길은 현실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해서 과거의 이상 속 이데아를 쫓으려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버리힐즈에서의 현실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이네즈에겐 그런 길이 전혀 이해가 안 된다. 



열두 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마법은 일어나고


그렇게 혼자 밤거리를 거닐던 길은 자정을 알리는 시계 종소리와 함께 등장한 1920년식 자동차에 얼떨결에 올라타게 된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말이 안 되게도 1920년도의 파리였다. 그곳에서 헤밍웨이, 피카소, 피츠제럴드, 달리와 같은 천재 예술가들을 만나는 기막힌 경험을 하게 된다. 게다가 모든 예술가들의 뮤즈인 '아드리아니'란 매력적인 여성까지 만나면서 점점 더 과거의 시간 속 파리에 빠져든다.


사실 그가 만난 천재 예술가라는 사람들도 오늘날 현존하는 예술가들과 별다른 건 없어 보였다. 감독이 예술가들의 특징을 묘사하기 위해 좀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놓은 것도 있지만, 수많은 궤변과 자기도취적 행태를 늘어놓는 예술가들을 보고 있으면, 그 시대가 뭐 그리 대단한 골든 에이지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예술혼을 쏟아 내는 창작자들도 시간이 흘러 먼 훗날 업적을 인정받게 된다면 과거의 그들과 다를 게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 미래의 후손들이 현재의 예술가들을 숭배하면서 지금 이 시간을 '황금시대'라 규정할지도 모를 일이다.  




황금시대란 진짜로 존재하는 시간대일까?


우여곡절 끝에 약혼자 이네즈와는 결별을 하게 되고 길은 아드리아니를 쫓아 1920년대의 시간으로 들어가 살 결심을 한다. 하지만 아드리아니도 좀 복잡한 캐릭터의 여자다. 그녀는 매번 아내나 여자 친구가 있는 예술가들과만 사랑에 빠진다. 


이런 심리는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 어쩌면 금지된 것에 대한 로망과 소유욕이 아드리아니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아드리아니가 길에게 빠져든 것은 '미래의 이야기'를 담은 길의 소설에 매력을 느낀 것도 있겠지만, 길에게 이미 이네즈라는 약혼자가 있었서는 아닐까?


어쨌든 길은 그렇게 아드리아니와 1920년대의 파리에서 아주 행복하게만 살아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또 한 번에 마법이 일어나고, 그 둘은 르네상스 시대로 보내진다. 르네상스 시대는 아드리아니가 늘 동경에 마지않던 시대였다. 그녀에게 영원한 노스탤지어는 1920년대라는 현재의 시간이 아니라 이미 끝나 사라져 버린 르네상스 시대였다. 




우리가 살아가고 사랑해야 할 시간은 


드가와 고갱 같은 천재 화가를 만난 그녀는 르네상스 시대에 남기를 원한다. 그녀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길은 자신이 그토록 갈망해 온 황금시대는 개개인의 주관적인 개념이었고 신기루 같은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드리아니도 약혼자 이네즈도 떠난 파리의 밤거리를 홀로 거닐던 길은 우연한 만남이 계속되는 순도 백 프로 파리지앙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녀와의 대화를 나누던 길은 그녀와 자신의 취향이 같아도 너무 같다고 느낀다. 


비 내리는 파리 밤거리의 낭만에 취해서일까? 길은 자신에게 다시 사랑이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그가 살아가고 사랑해야 할 시간은 잡을 수 없는 과거가 아니라 손을 뻗치면 닿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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