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 개인이 좋아서
나는 90년대 학번, 이제 50대 중반이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캠퍼스는 여전히 80년대 학번 선배들이 주도했고, 거대한 운동권 문화와 집단적 대의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이미 개인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낡은 집단주의를 거부했다. 시끌벅적한 모임이나 선배들의 집회문화를 극도로 싫어했으며,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지향했다. 물론 90년대 학번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았다. 소수의 과격한 무리들은 선배들보다 더 격렬하게 투쟁이란 걸 했고, 운동권이란 울타리 안에서 생활했다. 그 덕분에 젊은 나이에 정계까지 진출한 사람도 있었다.
졸업 후, 나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은행에 들어갔다. 묵묵히 내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었고, 그렇게 반평생을 은행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숫자와 씨름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일만 하는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카세트테이프를 매일 돌려 듣고 90년대 멋들어진 락발라드를 듣던 그 시절엔 절대로 상상도 못 했던 그런 모습이었다.
아내, 지연은 그런 내게 늘 불만이 가득했다. 그녀의 한탄은 현실적이었다.
“당신은 집에 돈 벌어다 주는 머신 취급 당해도 좋아? 나는 당신이 한 번이라도 애들 숙제 봐주고, 같이 놀아 준 적을 못 봤어. 나중에 애들이 커서 아빠는 찾지도 않으면 어쩔 건데? 당신한테 이 집은 하숙생처럼 그냥 잠만 자는 곳이야?”
사춘기에 접어들어 방구석에 콕 박혀 있는 큰 아들과, 병약한 둘째 딸 육아에 지친 지연의 유일한 숨통은 동네 아줌마들과 다니는 맛집 투어였다. 오늘은 줄 서서 먹는 수제버거 집, 지난주는 퓨전 한정식 코스집처럼. 이처럼, 그녀는 인생의 낙이 먹는 것뿐이라는 양, 일명 '맛집투어' 모임에서 삶의 고단함을 달랬다. 그러다가도 새삼 생각이 나서 분하다는 듯, 문득문득 내게 짜증을 퍼부었다.
“나도 숨은 좀 쉬고 살아야 할 거 아냐! 당신은 나가서 일한다고 집안일을 모두 잊지만, 나는 여기서 숨 막혀 죽겠다고!”
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되뇌었다.
'누가 번 돈으로 우리가 이렇게 사는가는 따지고 싶진도 않아. 그렇지만 당신 숨 쉬게 하려고 내가 이렇게 일하는 건데, 도대체 내게 뭘 더 바라냐고?'
고등학생 아들, 민준은 집에 있을 때면 늘 방문을 꼭 닫고 살았다. 어쩌다 문을 슬쩍 열어보면, 컴퓨터 모니터의 푸른 불빛만이 어둠 속에 앉은 아들의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도대체 공부를 하는 건지, 게임을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벌컥 문 여는 게 싫다고 화를 내서 조심스럽게 노크를 할 때면 늘,
"바빠요!"
라는 짧고 퉁명스러운 거절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하지만 내 삶의 가장 큰 짐은 중학생 딸, 예은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예은이는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희귀병을 진단받았다. 그날 이후, 잦은 병원 출입과 끝 모를 걱정은 우리 가족의 일상이 되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예은이는 수없이 피를 뽑고, 복잡한 검사와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하루하루 병마에 지쳐서 야위어가는 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못했다. 아내 역시 고통스러워하는 딸을 달래 가며 검사실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 날은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은행에서 명예퇴직을 종용받았다. 남의 눈치 안 보고 개인주의의 극치를 걷던 나였지만, 조직의 논리 앞에선 밀려나야 하는 힘없는 부속물일 뿐이었다. 며칠 밤을 뒤척이며 고민했다. 아직 한창인 나이라 앞날이 막막했지만, 한편으론 두둑한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조직에 매이지 않는 삶을 살면서, 여유롭게 예은이를 보살피자. 애들이 제일 필요할 때 같이 있어 주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동안 내가 애들에게 좀 소홀하긴 했었지. 민준이랑도 대화할 수 있게 된다면 썩 나쁜 결정은 아닐 거야.'
장고 끝에 은행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자는 결정을 내렸다. 아내는 처음엔 극렬히 반대했지만, 아이들을 함께 보살피겠다는 나의 결의와 퇴직금 액수를 보고 결정을 받아들였다.
"후회하지 않을 거죠?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럼 이제라도 당신 마음대로 살아봐요."
결국 나는 명퇴를 했다. 은행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날, 나는 집 뒷마당에서 이십 년 넘게 나눠 주고 다녔던 명함을 통째로 태워 버렸다. 얇고 값싼 종이 조각들이 타들어 가는 냄새를 맡고 있자니, 내 어깨를 짓눌렀던 수 십 년의 굴레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매캐한 냄새와 함께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조직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만끽했다.
나는 은행을 나온 후 한동안 평온한 생활을 이어갔다. 예은이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같이 갔고, 저녁엔 아내와 함께 가벼운 산책을 했다. 민준에겐 '롤플레이'란 게임을 배워선 그룹 매치를 몇 번 같이 하기도 했다.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며 핀잔을 주는 아들을 보면서 이렇게라도 대화를 하게 돼서 기쁘다는 생각도 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보내는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만족스러웠다. 진작 이렇게 가족들과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 못했던 게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는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기분에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