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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Feb 04. 2023

좋아하는 숫자는 잘 모르겠고, 싫어하는 숫자는 있는데.

"우우는 좋아하는 숫자가 뭐야?"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색깔, 숫자, 동물을 물어보고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른 이유를 말해보는 수업 과정이었다. 하지만 우우는 친구와 그룹 수업이 아닌 개인 수업을 하는 아이라 내가 친구의 역할까지 의견을 내야 했다. 보통 아이가 대답을 머뭇거리면 내가 먼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그제야 '저는 00을 좋아해요.'라든가 '저는 그건 별로예요' 라며 말문을 연다.


질문을 하면서도 딱히 이런 질문이 마음에 들어서 하는 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은 세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데 모든 걸 뭉뚱 거리는 이런 질문은 아이가 어려서라고 스스로를 이해시켰다. 나는 뽑기를 할 때는 숫자 '4'를 좋아하고,  도서관에서는 숫자 '8'을 좋아한다.

옷 색깔은 미색 계열의 베이지색과 흰색을 좋아하지만, 노트 겉표지는 녹색이나 붉은색을 좋아하고, 가구는 갈색과 검은색을 좋아한다. 이마저도 상황에 따라 바뀐다.


내 질문에 우우는 고민하더니 말했다.

"좋아하는 숫자는 잘 모르겠고, 싫어하는 숫자는 있는데..."

맞다. 딱히 좋아하는 숫자가 없을 수도 있다.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 각별한 애정을 품을 대상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다시 고쳐 물었다.

"싫어하는 숫자는 뭐야?"


우우가 대답했다.

"작년에는 6이었고, 그전엔 5였는데, 올해는 7이에요. 매년 바뀌어요."

나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조금 능청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흥미로운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고 진심으로 궁금해했던 것 같다.

"왜?"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동생이 작년에는 6살이었고, 그전에는 5살이었어요. 올해 7살 되었는데 동생 나이만큼 그 숫자가 싫어요. 동생은 절 너무 귀찮게 해요. 자꾸 뭐 해달라고 하고, 안 해주면 울고."


아, 정말. 정녕 천재인가봉가.

아이에게 이런 대답을 끌어낸다니, 이걸 미리 예상하고 교재를 만들었다면 교재편찬위원들에게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언젠가 TV프로그램 뇌섹남에서 나온 두뇌 풀기 문제가 기억났다. 도형 안에 그려진 점을 한붓그리기로 모두 이어 보라는 문제였던 것 같은데 아무리 낑낑대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답은 도형 밖으로 선을 연장시켜 만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리 애써도 되지 않는 '틀을 깨고 생각하기'나 '뒤집어 생각하기'를 아이들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한다.

어른들은 그저 감탄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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