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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Mar 26. 2023

울면 망한다.

1.

<로드킬이 줄고 야생동물들이 도시로 내려오는 일도 드물 것 같습니다. >

아이가 쓴 문장이 어딘가 어색하다. 하지만 드물다는 표현을 알고 있는 것에 일단 칭찬을 해본다. 문장을 입으로 되뇌어보며 조심스레 고쳐본다. 최소한의 글자를 고쳐야 한다.  


<로드킬과 야생동물들이 도시로 내려오는 일도 줄어들 것 같습니다.>

 “어때? 드물다는 표현이 조금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둘 다 줄어든다는 표현을 써도 될 것 같아서 문장을 합쳐봤어.”

 아이의 눈치를 본다. 자신이 쓴 문장이 부정당했다는 느낌이 들면 아이들은 어김없이 고개를 젓거나,

 '그냥 그런데' 라며 방어자세를 취한다.

울면 망한 거다.


“네”

아이는 그저 묵묵히 문장을 고친다.

욕심 같아서는 '일도'를 '일이'로 고치자고 하고 싶지만 말을 삼킨다.

글자 하나보다는 문장이 중요하고, 문장하나보다는 아이들의 기분이 더 중요하다.


2.

<동생과 동생친구가 문제가 생겨 손을 보았다>

‘손을 보다’로 문장 짓기를 하는데 아이가 이런 문장을 썼다. 갑자기 양손을 빗겨 터는 행동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얘네 맘에 안 드는데 손 좀 봐줄까?”

건들거리는 연기를 하며 말했더니 아이 눈이 동그래졌다. 아, 아이 수준에 맞지 않는 연기였다. 멋쩍게 웃으며 가끔 이럴 때 쓴다고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혼내줄 때.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혼내도 되는 것인가?

설명하면서도 내심 뜨끔하다.


문장은 사물로 고치자고 했다.

<동생의 장난감에 문제가 생겨 손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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