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가 물었다.
"엄마, 어버이날 선물로 빨래바구니 사줄까?"
나는 이때, 세탁기 위에 놓인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려고 빨래바구니를 선반에 살짝 걸치고는 왼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오른팔은 건조기 안으로 넣어 뭉친 빨래를 당겨 바구니에 밀어 넣고 있었는데 그리 편한 자세가 아니어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빨래바구니 밖으로 양말 따위가 몇 개 떨어져 내렸다. 내 시선은 양말을 쫓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닥을 훑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고개가 들렸다.
아이는 세탁실 앞에 서서 둥그런 눈을 굴리며 고개까지 갸웃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이내 다시 물어왔다.
"응? 엄마, 빨래 바구니 내가 사줘?"
잠시 당황했던 나는 웃으며 말했다.
"왜? 엄마 빨래 더 열심히 하라고 어버이날에 빨래 바구니 사주는 거야?"
"아니~ 그래도 새 거면 좋잖아."
나는 배시시 웃으며 남은 빨래를 당겨 넣고 바구니를 바닥에 내렸다. 양말을 주어서 바구니에 담으며 아이가 말한 빨래 바구니를 봤다.
아이의 마음을 안다.
그래서 아이가 하고 싶은 말도 안다.
아이의 시선이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이 아니라 내 빨래바구니에 머물렀다는 것도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아직도 바꾸지 못하고 있는 분홍색 빨래바구니를 내려다본다.
둥그런 모양의 바구니는 여기저기 찢어지고 뜯겨나가 보기에도 안쓰럽다.
게다가 얼마 전 한쪽 손잡이까지 떨어져서 바구니를 들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물건을 아끼는 성향이냐고? 전혀. 난 새것이 좋다.
쓰지 않을 물건을 쌓아두는 것보다는 빨리빨리 버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도 버리기가 쉽지 않은 건 빨래바구니와 우리 집의 오랜 역사 때문이다.
빨래바구니가 우리 집에 온 건 큰아이가 돌도 되기 전이었다.
그 당시에 텁트럭스라는 고무로 만든 여러 가지 모양과 색깔의 바구니가 유행했었는데 주로 아이들 목욕통으로 쓰였다. 앉는 힘이 생기기 전에는 높이가 낮은 연보라색 바구니를 사용했는데 아이가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하기 시작하자 조금 높은 분홍색 바구니에 앉히고 반 정도 물을 채워 사용했다.
중간중간에 다른 목욕통을 이용해 봤지만 접히는 사각 목욕통은 접히는 부분에 곰팡이가 생겼고 욕조 축소판처럼 나온 목욕통은 몸이 푹 담기지 않아 아이가 좋아하지 않았다. 바닥이 미끄러워 수건을 깔아주어도 한 번씩 쑤욱하고 미끄러져 들어가 나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그 목욕통을 좋아했다.
그리고 4년 터울 지는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같은 수순을 밟았다. 연보라색에서 분홍색 바구니로 목욕탕이 교체되었고 누나보다 훨씬 오래 물에서 놀았다. 가끔 아이는 목욕탕을 들고 거실로 나와 그 안에 쏙 들어가 있기도 했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아빠는 바구니를 채로 들어 그네처럼 흔들어 주기도 했다. 재밌는 장면을 목격한 첫째 아이도 해달라고 조르는 통에 아빠는 자신의 장난기로 시작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 이후로도 쭉.
바구니는 그 이후로도 곳곳에서 활약했다. 표백할 빨래가 담기기도 했고, 걸레를 모아 놓기도 했고, 블록 장난감이 가득 들어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은 빨래바구니로 활약했다.
따지면 큰 아이의 나이만큼인 14년 동안을 우리 집에 함께 있었던 존재인데 내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14년 전처럼 여전히 색은 이쁘다.
아이는 14년 동안 몰라보게 성장했지만, 나와 저 바구니는 그대로인 것만 같다. 속은 그대로인데 겉모습만 늙어 누군가 보기에 안쓰러워 보이는 느낌이려나?
오늘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던 아이가 물었다.
"엄마, 어버이날이 언제야?"
학교장 재량휴일부터 시작해 어린이날과 주말까지, 4일을 연속으로 쉰 아이는 날짜가 헷갈리나 보다.
"오늘인데?"
"어??? 진짜? 엄마, 미안. 편지도 못 썼는데.."
아이에게 괜찮다고 경쾌하게 대답했다.
'이미 학교 간다고 나간 중딩 누나는 어버이날에 어 자도 꺼내지 않고 가던데.. 넌 생각이라도 했으니 고맙다.'라는 말은 속으로 삼킨다.
빨래바구니 안에 쏙 들어가던 두 아이도,
휙휙 돌아가는 아빠의 바구니 그네 안에서 울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이제 없지만
야구를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롯데팬 중딩딸과
오타쿠 소리를 듣고 신나 하는 스즈메 남친 초4 아들이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래오래 서로를 돌보는 가족이면 좋겠다고.
함께 살지 않는 날이 와도 , 서로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살피고 생각해 보는 가족이면 좋겠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 뜸해져도, 애정 어린 시선이 끊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에게 묻는다.
"오늘 다 같이 빨래바구니를 사러 나가볼까?"
해줄 게 생겨서 좋은지 아이가 신나게 대답한다.
“응, 응! 내가 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