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별그램.
인별그램의 피드는 얇은 선거 공약 안내 책자와 닮았다. 가장 잘 나오거나 임팩트 있는 사진을 앞에 걸고 뒤로는 하고 싶은 말을 줄줄이 쓴다. 하지만 글을 읽는 이는 드물고 강조된 큰 글자나 제목 정도만 읽는다.
인별그램을 시작할 때 나는 ‘일상 기록’이라는 주제를 달았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기도 하고 기록의 힘을 믿는 나로서는 아이들의 성장이나 읽은 책에 대한 감상 등을 기록해 두고 싶었다.
초창기의 인별그램은 느낌 있는 사진이 주를 이루었다. 그 느낌은 보통 호화롭거나 유별난 센스를 자랑하는 것이었는데 평소 보지 못한 사진에 감탄하는 사람과 다른 세상이라는 선을 긋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계정을 닫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물건을 파는 상업적인 계정과 자신의 세운 목표 달성을 위해 매일 인증 피드를 올리는 부계정도 많아졌다. 그리고 계정을 닫았던 이들도 상처받지 않는 나름의 방어벽을 만들어 단지 남의 피드를 구경하는 용도로 인별그램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줄곧 일상 기록을 해왔는데 레고를 좋아하는 둘째 아이가 자꾸만 멋진 레고를 만들어내자 따로 기록해 두고 싶어졌다. 부계정을 만들어 레고 창작품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아이가 책 읽는 모습, 아이가 한 재밌는 말등이 더해져 다시 일상 기록으로 돌아가버렸다. 이미 섞여버린 주제란 생각에 책 기록도 함께 올리기 시작했는데 빅데이터 때문인지 출판사 계정이 자꾸만 떠올랐다.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에 하나둘 팔로우를 눌렀는데 이제는 웬만한 출판사는 다 팔로잉 목록에 들어있다.
출판사 계정에서 신간 소식이나 온오프라인의 북 토크 일정 등을 알 수 있어 좋았다. 기다리고 있는 작가의 후속작 일정을 물어보고 싶어 며칠을 고민하다 출판사에 디엠을 보낸 적도 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서평단을 신청하여 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책을 따지지 않고 올라오는 서평단마다 신청을 했더랬다. 하지만 애정도 없이 받은 책이 내용까지 별로인데 덮어두고 좋은 평을 쓰고 있자니 마음이 힘들어졌다. 그 후로 신청할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갖고 싶은 책은 많고 쓸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다. 소장할 책은 나름의 기준에 따라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기에 항상 소장 대기 중인 책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해서 서평단으로 뽑혀 갖고 싶은 책을 소장하게 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반갑고 좋은 일이었다.
출판사가 신청한 모든 이들에게 책을 보내주는 것은 아니다. 서평단 활동의 조건이 SNS나 인터넷 서점에 서평을 올리는 것이니 계정의 팔로워 수나 글솜씨가 중요한 선정기준이 될 것 같다. 출판사의 목적은 책의 홍보일 테니 말이다.
보통 서평단에게 주는 책은 완성되지 않은 책이다. 내지에 그림이 빠져있거나, 흑백으로만 인쇄되어 있거나 오타가 완벽히 걸러지지 않은 책들이다. 드물게 A4용지로 출력한 것을 집게로 꽂아 보내는 곳도 있고 커피 쿠폰이나 굿즈를 동봉하여 보내는 곳도 있다. 이는 출판사 규모의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인데 사실 서평단 인원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적으면 3명에서 500명까지 그 인원은 크게 차이가 난다.
완성되지 않은 것에 대해 애정을 느껴 본 적 있을까? 나는 완성된 책 보다 출간 전 미완성 책에 더 애정을 느낀다. 서평단으로 받은 미완성책이 출간되면 서점에서 구매해서 두 가지 버전의 책을 소장한다. 흑백의 책과 컬러풀한 책을 꽂아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흡족해진다.
‘내가 너의 처음을 알아.’
좀 변태적으로 느껴지지만 진심이다.
(책 표지가 바뀌어도 소장하고픈 욕구가 생긴다. 성장과정을 갖고 싶은 마음이랄까.)
책을 받으면 책을 놓고 사진을 찍는다. 거실 바닥에 놓고 찍던 것이 집 안 곳곳에 사진이 잘 나올법한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가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요즘은 커피숍에 갈 일이 생기면 책을 먼저 챙긴다. 이쁜 카페에 놓고 책을 찍으면 책도 이뻐 보인다. 이쁜 책을 몇 번씩 바라보게 되니 자꾸만 책에 대한 애정이 생겨난다. (더하면 밤에 껴안고 잘 수도 있을 것 같다)
서평을 올릴 때는 필수 해시태그가 있는 경우도 있고 아이가 책 읽는 사진을 첨부해야 하는 등의 조건이 달린다. 그리고 쓴 서평의 주소를 출판사에 보내는 것으로 서평단 활동은 마무리된다.
서평단 모집 피드를 읽고, 서평단 신청을 하고, 결과 문자를 받는 동안 책에 대한 출판사 피드를 읽게 된다. 이로써 책 한 권의 제목을 못해도 4번 이상을 보게 되는 것이니 어느 순간 눈에 이 책이 익숙해져 버린다.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을 받고 서평을 쓰게 된다면 책의 완성작을 소장하고픈 욕구가 샘솟는다. 서평단이 되지 못하더라도 익숙해진 책 제목은 서점에서 매직아이처럼 눈앞에 떠오르기 마련이다.
출판사에서 서평단을 뽑는 목적이 책의 홍보라면 나는 미련할 만큼 그 시스템에 부합하여 구매 욕구를 불태우는 독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드림’이라고 찍힌 그 따스한 책도장을 본다면, 새하얀 책이 민낯을 드러내고 오직 ‘글’만을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면 나처럼 책의 ‘처음’을 간직하고 싶어질 것이다.
Main Picture
by Benyamin Bohlouli i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