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럼, 엄마는 이야기하는 게 노는 게 아니야?”
“음…”
대답하려고 코로 숨을 내뱉긴 했지만 생각이 길어진다. 내가 노는 건 어디서 어디까지이지?
한 달에 한 번 초등학생인 아들의 숲 체험이 있다.
수업이 1년쯤 지속되자 엄마들끼리 아이들을 데리고 바비큐장에 가는 계획을 세웠다. 수업이 끝나고 차량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술을 챙길 수가 없었고, 각자 가지고 올 수 있는 쌈채소나 양념, 김치 등을 챙겨 오기로 했다. 바비큐장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들은 분주해졌다. 엄마들이 모여 준비한 재료를 꺼내놓고 고기를 구울 동안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았다.
첫 번째 고기가 익기 시작하자 엄마들은 접시에 고기와 밥을 나누어 담기 시작했고 연이어 두 번째 고기를 불에 올렸다. 아이들을 불러와 앉히고 물을 따라주고 자리를 정돈하는 동안 엄마들은 별말 없이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애들 진짜 잘 먹네요."
"고기 모자라진 않겠죠?"
"진짜 고기 잘 구우시네요."
"너네 된장국 더 먹을 사람?"
"응? 물 더 따라줄게 이모가."
아이들이 자리를 떠나자 아이들이 먹은 것과 앉았던 곳을 정리하고 엄마들이 먹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한 것처럼 엄마들의 인원수대로 접시를 놓고 밥과 야채, 김치를 놓았다. 아이 때와 다른 점은 구운 고기를 가운데 접시에 놓았다는 것 정도. 배고픈 상태에서 고기를 굽고 아이들 밥을 챙겼더니 다들 허기가 밀려와서 말없이 밥을 먹었다. 간간히 “음~ 맛있네요” 정도의 말이 적막해지려는 우리를 붙들듯이 흘러나왔다.
이게 엄마들이 노는 것이었을까? 아이의 밥을 챙기고 놀거리를 챙기고 잘 있나 지켜봐 가면서 우리는 각자 지쳐간다. 대화는 아이들이 나타날 때마다 뚝뚝 끊기고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이걸 내가 노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바비큐장에 오기 전, 아이들이 숲 체험을 하는 시간에 엄마들은 커피를 마신다. 아이들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보장받은 두 시간 동안 우리는 여유롭게 대화를 한다. 이건 엄마들이 노는 것일까?
이것 또한 나는 노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이를 위해 수업 장소까지 운전하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때운다고 생각했다. 가고 싶은 커피숍이 아니라 아이를 수업 장소에 내려주기 좋은 주차장이 있는 커피숍이어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마감은 내가 아닌 아이들의 일정이라는 것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불편함은 노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니까.
한참 놀던 아이가 더 놀고 싶다고 때를 써서 긴 시곗바늘을 가리키며 ‘저 긴 바늘이 12에 오면 가는 거야. 그때까지 놀아’라고 했을 때, ‘야! 12 될 때까지 얼른 놀자!’ 하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계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쳐다보면서 불안해 전혀 놀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옥죄는 불안감은 평화로운 마음을 짓밟아놓는다. 나 또한 불안함을 느끼면 있는 시간도 허비해버리는 바보 같은 성격이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내가 노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맨 처음 내가 생각한 노는 것은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또는 아이들 걱정을 하지 않는 곳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의 대화는 항상 아이들의 질문이나 엄마를 찾는 아이들로 대화가 뚝뚝 끊기기 마련이고 깊은 대화나 긴 대화는 이어갈 수 없으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술을 마셔도 사실상 아이들 이야기가 대화의 주를 차지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 다른 주제를 말하다가도 어느새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옆에서 들을 아이가 신경 쓰여 편하게 말을 못 하니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편하게 말하고 싶을 뿐이었다. 마음이 편한 것과 편치 않은 것은 이렇듯 다른 결과를 낸다.
아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이야기가 끊기지 않을 것. 시간 제약이 없을 것.
이것이 내가 노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는 기준이었나 보다. 술이나 차가 아니라.
나의 노는 것에 대한 정의.
아이는 가끔 아무렇게나 지내온 내 삶의 구분 짓고,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엄마가 사람들과 노는 시간은 너희가 같이 있지 않을 때, 너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야. ”
아이가 묻는다.
"그럼 혼자 있을 때는?"
"엄마는 혼자 노는 것도 좋아해. 혼자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거나, 혼자 글을 쓰는 것도 엄마가 노는 방법이야."
그렇다. 맞다. 혼자 노는 시간을 더 늘려야겠다.
입으로 뱉고 나서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리가 될 때도 있다.
아이가 알고 싶어 묻는 엄마에 대한 순수한 물음이,
흐릿했던 나를 진하게 만든다.
Picture by Priscilla Du Preez i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