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와 고래, 그리고 다시 우영우.
잘 비껴가던 코로나가 둘째 아이에게 들러붙었다. 공동 격리자로 코로나 걸린 아이와 종일 방에 있다가 아이가 잠들어 넷플릭스를 켰다.
남편도, 동네 지인도, 딸도 보라고 권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 두 편을 연속으로 시청하고 브런치에 들어왔더니 그동안 언뜻언뜻 보였던 드라마 우영우에 관한 글이 무척 많이 보인다. 읽어보니 배우의 칭찬, 자폐 아이를 둔 부모들의 우려, 촬영 장소의 인파로 인한 피해 등 많은 주제들이 보인다.
나는 첫 화부터 지하철 옆을 헤엄치는 고래에 눈과 마음이 뺏겼다. 우영우가 고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귀가 쫑긋 선다.
책이나 영상에서 고래가 나올 때마다 나는 그랜트 스나이더의 카툰에세이 '책 좀 빌려 줄래?'가 생각난다. 책에 나오는 동물에 대해 작가가 한 마디씩 하는데 고래에게는 ‘고만 나오 고래'라고 쓰인 걸 보고 한참을 웃었다. 빈도수가 많긴 하니까, 고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신비로운 동물인걸 어떡할 고래!
모비딕.
모비딕은 1화에서 우영우가 언급했던 향유 고래로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의 소설에 등장하는 고래의 이름이다. 크고 뭉툭한 사각형 머리가 특징인 향유고래는 머릿속에 질 좋은 기름이 가득하고 고기, 이빨, 가죽 등 쓰임이 아주 많아 오래전부터 고래잡이 배의 표적이 되었다. 고래의 장속에서 만들어지는 용연향은 고급 향수의 원료가 되는 물질이라 비싼 값에 팔렸고 현재에도 고래에서 추출한 성분이 의약품으로써의 가치가 있다며 고래잡이 허용을 주장하는 국가도 있을 정도다. 향유고래는 원래 회색을 띠고 있는데 나이가 들수록 하얘진다고 한다.
모비딕이 고래 이야기를 담은 유명한 책이긴 하지만 고래 애호가가 좋아할 책은 아니다. 모비딕은 이스마엘이 고래잡이 배에 타게 되면서 배의 선장 에이하브가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잃게 한 모비딕을 찾아 사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래 사냥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인 데다 미친 듯한 선장 에이해브 선장이 부리는 광기에 휩싸여 이스마엘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죽음에 이르는 내용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한쪽 눈에 작살을 맞은 채 사라진 모비딕에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아이와 본 애니메이션 씨 비스트에서 괴물을 잡는 배의 선장이 눈에 안대를 차고 나온다. 복수를 하겠다며 가장 큰 레드 블러스터를 쫒는 장면에서 모비딕이 연상된다.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궁금했는데 자기가 섬기는 왕과 왕비보다 어린아이의 말을 신뢰할 줄 아는 장군 덕에 수월하게 끝이 났다. 모비딕처럼 모두를 휩쓸어 사라지진 않았다. 해피엔딩이다.
바다는 우리의 하늘이었다.
이 책은 허먼 멜빌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패트릭 네스가 쓴 책이다. 모비딕이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이 책은 고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에서 고래는 작살을 지느러미에 달고 나무로 만든 배를 끌고 다닌다. 배는 고래들의 가방 용도이고 밧세바는 삼등 항해사로서 토비윅을 쫒는 알렉산드라 선장을 따른다. 알렉산드라 선장은 이마에 작살이 꽂혀있다. 오래전 인간들의 사냥에서 그녀만 살아남았고 그런 그녀는 예언을 핑계로 복수에 나선다. 인간과 고래는 서로에 대한 전쟁을 이어가지만 그 끝에 서 있는 건 악마였다. 악마 토비윅. 인간과 고래의 모습을 가진 악마. 인간과 고래의 전쟁은 끝이 났다. 그들은 어설프게나마 평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토비윅은 인간의 모습을 선택했다.
우영우는 고래잡이 방식에 대해서 말한다. 새끼에게 먼저 작살을 쏜 후, 고통스러워하는 새끼를 떠나지 못하는 어미 고래를 사냥한다고.
덴마크에서는 700년이 넘는 전통이 있다. 그라인다드랍이라는 이 행사는 고래 사냥 축제이다. 덴마크는 유럽 연합의 고래 사냥 금지 법안에 서명했지만 이 행사가 열리는 페로제도는 자치권을 가진 곳이라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이 잡는 들쇠고래는 국제 포경위원회의 보호 어종이 아니라고.
그들은 700년 넘게 매년 이 행사를 치러왔고 붉게 물든 바다와 피 흘리는 들쇠 고래 앞에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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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타이지 마을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돌고래 사냥을 한다. 좁은 만으로 몰아 그물을 치고 작살을 꽂는다. 가족을 두고 떠나지 않는 고래들의 습성 상 한 무리의 돌고래는 크게 상처 입고 잡히거나 죽임을 당한다.
그들은 돌고래를 세계에 팔고, 고기를 팔고, 가두리에 가두어 쇼를 시킨다. 가족의 죽음을 기억하는 돌고래에게.
우영우는 고래들이 좁은 수족관에 갇혀 지느러미가 휘거나 벽에 부딪혀 뇌진탕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동물원에서 쇼하는 돌고래 이야기에 진저리 치는 모습을 보여서 돌고래 방사에 관한 기사가 뜰 때면 꼭 우영우가 수식어처럼 붙는다.
“우영우가 좋아하겠네 남방 큰 돌고래 비봉이 17년 만에 바다로” - 매일경제
“우영우가 사랑하는 고래… 고래 관광 천국은 호주”-연합뉴스
드라마 캐릭터는 어느새 동물 보호에 앞장서는 리더로 각인되고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고래는 우영우의 자폐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해답을 찾는 하나의 상징으로 쓰였다. 하지만 고래의 생태에 대한 관심을 높인 것은 물론, 많은 이들에게 동물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여전히 많은 화젯거리를 몰고 다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좌절해야 한다면 저 혼자서 오롯이 좌절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른이잖아요. 아버지가 매번 이렇게 제 삶에 끼어들어서 좌절까지 대신 막아주는 거 싫습니다
우영우도 고래도 한 번에 깨뜨릴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자신을 알렸으니 퍽 진한 발자국을 남긴 거라 생각한다.
쿵 짝짝. 쿵 짝짝.
느리지만 또렷한 발자국을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