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로 타로점을 보았습니다.
사주 풀이도 아니고, 손금이나 인상을 보는 것도 아닌, 카드를 뒤집으며 운세를 점친다는 것은 어른들의 심심풀이 화투점처럼 그다지 인상 깊지도 호기심이 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인이 말하는 그녀의 점지력은 놀라웠습니다. 1년 전 그녀가 했던 말은 거의 들어맞았으니까요.
인생의 굴곡이 있겠네요. 전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가 울립니다. 굴곡이라.. 갑자기 내 앞에 놓인 운명의 길이 요동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굴곡이 있으셨나요?
아니오. 그렇지는 않은데.
올해 하반기에 굴곡이 있을 거라고 나와요.
아, 네.
저는 신점은 아니어서요, 상황 설명을 해주시고 어떨까요라고 물어봐 주셔야 대답할 수 있어요. 그렇게 아무 말씀도 안 하고 계시면 해드릴 말이 없어요.
아, 네.. 네..
그저 신기한 마음에, 다들 보는 점을 나도 한 번은 보고 싶다는 마음에 입금을 하고 시간 약속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점에 익숙하지 않은 저는 그녀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의심을 가득 담아 대꾸만 하고 있었네요.
아이가 있는데요, 열네 살 딸인데 유학을 가고 싶어 해서요.
유학이요? 얘는 안 간다고 나오는데요? 한국에서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아이인 것 같아요. 금융권에서 일한다고 나오네요.
아.. 애가 글 쓰는 거나 기타 치는 것을 좋아해서요..
예체능이요? 예체능으로 먹고 산다고는 안 나와요. 지금은 그래도 꿈이 바뀔 거예요.
아, 네..
그녀가 답답한 듯이 말합니다.
남편 일, 건강, 아이 물어보셨어요. 더 궁금한 건 없으세요?
아.. 저... 제 건강은요? 아하하, 제 건강을 안 물어봤네요!
물어볼 것이 생각나자 긴장했던 입가가 저도 모르게 펴집니다. 점을 보는 건지, 제가 시험을 보고 있는 건지 살짝 헷갈립니다.
밥 잘 안 챙겨 드시거나 폭식하거나 하시나요?
네? 네..
놀랐습니다. 사실 화들짝 놀랐지요.
물론 아이 키우는 주부들이 끼니를 꼭꼭 챙겨 먹겠습니까, 제 주변에도 아이들 아침 먹다 남긴 것 조금 먹다 설거지하고 점심은 빵 하나, 커피 하나로 때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특히 잘 안 먹는 쪽에 속하고요.
사실 제가 놀라운 건, 이 분이 하는 말이 완벽히 틀린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완벽히 어긋나는 그런 말 말입니다. 심리적인 밀당일까요? 놀라면서도 완벽히 의심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제 목소리가 안 먹는 사람 같았을까요? 말투가 조금 예민했을까요? 해리포터에서 수정구슬을 들여다보던 트릴로니 교수가 생각이 납니다.
혹시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셨는데 전화 끊고 생각나시면 제가 내일까지는 상담한 게 기억이 나니까 문자로 보내주시면 답해드릴게요.
우와.. 요즘은 점도 추가 질문을 받고 문자로 답까지 해주네요. 점술가도 서비스업인가 봅니다. ^^
Q. 처음으로 돈을 내고 점을 볼 때 기분이 어땠냐면요,
A. 사실 돈이 아까웠어요. 제 호기심을 스스로 못 이긴 대가인 거죠.
Q. 점을 다 보고 나서는
A. 돈이 아깝지 않아 졌어요. 왜냐면요, 안 해봤으면 계속해보고 싶었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계속 생각이 났을 것 같아요.
Q. 올해에 인생의 굴곡이 세게 찾아온다면 다시 타로점을 보게 될까요?
A. 아니오. 정말 그렇게 된다면 무서워서라도 물어보지 않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이 마치 저와 제 가족 인생의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테고 단 한마디 말도 허투루 넘길 수 없겠죠.
Q. 난생처음 타로점을 보셨는데, 나에게 타로점이란?
A. 내가 이렇게 의심 많은 사람이었나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웃음)
아무리 생각해도 메시지로 보낼만한 추가 질문이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돈을 냈으니 해주시겠다는 것을 다 누려보고 싶은 마음에 창피하지만 억지로 질문을 보냈습니다. 그녀에게 답이 왔습니다.
올해 말에 금전운이 좋다고 나오네요.
올해도 연말까지는 아끼며 살아야겠네요. 연말에 플렉스 할 수 있을지 기대해봅니다 :)
Main picture by petr sidorov i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