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즐거움에 몰두할 것.
남편이 외출 준비를 하다 말고 내 옆에 앉았다.
“흰머리 좀 뽑아줘”
“숙여봐.”
나는 집중해서 양손 손가락을 이용해 흰머리가 한번 꺾이게 잡았다. 한쪽 손가락으로 잡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라 놓치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나는 머리카락을 잡고 끝까지 당겼다. 흰머리카락 하나, 반은 검고 반은 흰 머리카락을 두 번째 뽑아 남편의 손바닥 위에 놓았을 때 남편이 말했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염색 안 하면 백발 되려나? 할아버지가 완전히 백발이셨는데.”
“남편, 머리 염색 안 하면 전부 백발 돼”
“아 정말? 아버지가 대머리라 몰랐네.”
“남편도 그거 하나 사줘? 머리에 쓰는 거?”
요즘 두피 케어 헬맷을 한참 애용 중인 지인이 있어 꺼낸 말인데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아니, 나는 내 즐거움을 위해 돈 쓰는 건 좋지만 날 꾸미기 위해 돈 쓰는 건 싫어.”
남편의 즐거움은 게임과 음주이다.
여러 종류의 게임기와 게임팩이 거실장에 가득 차 있고 냉장고에는 맥주가 가득 차있다. 게임을 하는 내내 낮은 탄식과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게임 유저들 간의 대화 뒤로 깔리는 여러 종류의 게임 테마 음악이다. 게임이 끝나고 다른 게임이 시작될라 치면 ‘치익~탁!’ 하고 맥주캔 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은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있는 날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결혼하여 신혼일 때를 지나 지금까지도 매주 금요일은 친구와 함께하는 음주 데이다.
남편은 전날 일할 때 입을 작업복을 사러 갔었다. 같이 가려했는데 아직도 혼자 집에 못 있는 둘째 상전님 덕에 혼자 나갔다. 톱텐에 1+1 할 때 얼른 다녀온다고.
정말 얼른 다녀왔다. 큰 쇼핑백을 들고 온 남편에게
“쇼핑했네 남편~”
하고 웃었다. 큰 쇼핑백이 기특해서였다.
“쇼핑했지. 쇼핑한 거 보여줄까?”
남편은 기본 티셔츠 9장을 똑같은 디자인에 색상만 다른 것으로 사 와선 바닥에 주욱 늘어놓았다. 그리곤 자신도 웃기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아이와 나의 어이없는 눈빛을 느꼈던지 남편이 말했다.
“아, 옷 사는 거 너무 귀찮아!”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코로나 보복 심리인지 아닌지, 어쨌든 주변에 명품을 입는 이들이 늘어났다. 가위는 한물가고 간혹 한 번씩 눈에 띄던 과녁 모양의 브랜드가 심심찮게 눈에 뜨인다. 지난겨울에는 (닭 모양이라지만 내 눈엔) 불 안 난 산과 불 난 산이 겹쳐진 우주선 모양의 로고가 지천에 깔렸다.
그래도 적지 않은 나이인데 비싸지 않은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맘에 걸려서 한 번 물어봤더랬다.
“남편도 돌 섬 하나 사줄게 입고 다녀!”
남편은 단칼에 거절했다.
“아 싫어, 옷에 돈 쓰는 게 제일 아까워!”
남편은 며칠 동안 공들이던 ‘플레이스테이션 5’ 보상판매에 성공했고 갤럭시 탭을 새로 구매했다.
“나 월요일에는 우체국 가야 해. 갖고 있던 플레이스테이션 택배로 부치면 예약권 준대. 갤럭시 탭 케이스도 왔어. 민트색 딱 이쁘지? 이 가격보다 더 싸게 살 수가 없다니까! “
싱글벙글 웃으며 남편이 말했다.
얼마 전, 다이어트 식품에 대해 강연하던 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내분이, 옷은 자신을 위해서 입는 것이 아니라 남들 보라고 입는 것이라 했다며 다이어트해서 입은 10년 전 정장이 이렇게 멋지게 잘 맞는다고 자랑하셨던 분.
그분이 틀리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뇌에 감정을 처리하는 감정 중추란 게 있다면 그저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의 주름이 다른 모양일 거라 상상해본다. 조금 쭈글이거나 많이 쭈글이거나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쭈글이거나.
내게 옷은 내 만족이다. 입어보고 싶은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다.
커피와 수다는 근심을 날린다.
커피 한잔 값을 모아 주식에 투자하라지만 나는 그 순간의 내 평안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각자가 느끼는 즐거움은 다르다.
남의 눈을 신경 쓰는 건 내가 즐겁고 난 후 일이다.
내가 즐겁지 않으면,
화선지에 떨어진 검은 먹처럼 시커먼 원이,
내 가족부터 지인들까지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자신의 즐거움에 좀 더 몰두할 것.
따스해진 이 봄에 사나흘 피었다 지는 벚꽃을
한참 바라본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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