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이의 취향 크로쓰!
예전 어느 영화의 한 장면에서 엄마가 아이를 작은 놀이동산에 데려가는 장면이 나왔다. 엄마는 아이에게 자신도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왔던 놀이동산이라며 어릴 적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 장면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엄마의 추억을 같은 장소에서 아이가 공유하고 새로운 추억을 덧붙일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할아버지가 살던 낡은 집에서 엄마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나 글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나 엄마의 자라는 키를 새겨 놓은 어느 나무 대들보 곁에 서서 빛바랜 이름 옆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 아이의 모습은 충격이기까지 했다.
어릴때 부터 잦은 이사로 등본의 장수가 2장이 넘어가자 서류를 낼 때마다 창피했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감정으로 범벅이 된 그 장면은 여전히 기억의 한켠에 꽂혀 있었을 테다.
그런데 딸아이가 내가 한때 좋아했던 에이브릴 라빈을 좋아한다고 했다. 팬시점에서 사진을 사 와선 책상에 붙여놓고 방방 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를 줄줄 외우고서 어설픈 헤드뱅잉을 하기도 하고 일렉기타를 사달라며 졸라댄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수십 번도 더 들었던 그 노래가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에서 내 아이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에 굴복한 나는 아이의 노래에 동참하고 아이의 맛깔난 영어 발음과 나의 정직한 발음이 겹쳐진다.
2002년 Losing grip과 sk8er boi에 열광하던 나는 시간 속에 스러진 지 오래인데, 아이가 그때의 나를 복기하게 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큰 만족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왼쪽 : 하이스쿨 뮤지컬의 잭 에프론
오른쪽 : 위대한 쇼맨의 잭 에프론과 휴 잭맨)
아이는 기타와 팝송에 빠져 하이스쿨 뮤지컬이라는 미국 드라마의 음악에 심취했다가 뮤지컬까지 자신의 취향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2019년 후속 편 주연배우 올리비아 로드리고와 조슈아 바셋의 글로벌 덕질까지 손을 뻗쳤다. 하지만 나는 2006년에 나온 하이스쿨 뮤지컬의 본편에 빠졌다. 주인공 잭 에프론의 앳된 모습과 약간 촌스러운 모습에 손이 오그라드는데 웬일인지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잭 에프론의 모습에 생장을 멈췄던 연애세포가 꿈틀대는 기분이다. 하이스쿨 뮤지컬의 후속 편은 본편의 음악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와 나의 목소리는 다시 겹쳐진다.
No, no, no, no. stick to the stuff you know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네가 아는 것에나 충실해
If you wanna be cool Follow one simple rule.
쿨하고 싶다면 하나의 간단한 규칙을 따라 해
Don’t mess with the flow 흐름을 어지럽히지 마
새로운 도전 같은 건 하지 말고 하던 거나 하라는 가사의 내용인데 어찌나 욱하게 하는지 아이와 꽥꽥 소리 질러가며 부른다. 올해 40대에 확실히 입성했는데 왜 아이들의 마음이 이리 와닿는 건지 철이 덜 들었다는 말밖에 설명이 안 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는 게 아니다. 가사 뺏길까 봐 반박자 빠르게 부르기도 하고 내가 더 잘한다는 듯이 목소리에 진동을 줘보기도 한다. 딸아이는 가끔 노래를 멈추고 어떻게 그렇게 하냐며 부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는데 그럴 때면 완벽한 승리를 한 듯이 브이가 쭉 펴진다. 물론 마음속으로. 말은 “너도 크면 할 수 있어. 나보다 더 잘하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너무도 쉽게 물어본다.
“넌 꿈이 뭐야?”
아이가 내게 묻는다.
“엄마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
아이 앞에서 나의 어린 시절 꿈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아이에게 항상 채근하는 공부도, 악기도, 책도 나의 어린 시절에 비하면 훨씬 잘하는 내 아이에게 내 어린 시절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러워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문학동네 대상을 받겠다는 아이의 말도, 아메리칸 갓 탤런트에 나가겠다는 아이의 말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약간의 조소를 흘렸던 나인데 정작 아이는 글쓰기에도 열심히고 기타 연습이나 작곡에도 열심히다. 글로벌 덕질은 불이 활활 타오른다.
나의 어린 시절 꿈은 뮤지컬 배우였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느 여름에 티브이에서 피터팬 뮤지컬을 상영했었다.
내 기억으론 피터팬이 이선희였던 걸로 기억한다. 노래하며 허공을 휙휙 날아다니던 모습과 끊이지 않고 나오는 노래가 내 눈과 귀를 사로잡았었다. 네버랜드에서 해적들은 ‘엄마는 잔소리꾼, 귀찮은 잔소리꾼,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우리들을 달달 볶아대지’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아직도 멜로디가 기억이 선명하다. 테이프에 녹화해 놓고 몇 번을 돌려봤었는데 어느 순간 비디오에 걸려 테이프의 필름이 얇게 쭈그러 들었다. 툭 하고 끊어졌으면 테이프로 붙여서 다시 볼 수 있었을 텐데 길게 늘어난 테이프는 어쩔 도리 없이 버려졌다. 그래도 한참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뮤지컬 배우의 꿈을.
아이를 보며 어린 시절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왜 그리 손 놓고 흘러가는 대로 있었던 것인지. 지방에서 태어나서, 그리 특출 나지 않아서, 집이 가난해서 라는 줄줄이 달려 나오는 핑계의 줄기를 왜 끊어버리지 못했는지.
아이는 여러 가지의 꿈을 가지고 있다.
아이의 꿈은 음악과 글이라는 두 가지 단어를 품고 있고 둘은 취향이라는 막강한 망토를 두르고 있다.
어느 곳으로 날아갈지, 과연 날 수나 있을 것인지도 모르지만 망토를 두르고 있는 동안은 웃으며 머리를 흔드는 아이가 행복해하는 걸 안다.
나의 낡은 망토는 이미 오래전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로 구겨져 있었는데 아이 덕분에 먼지를 털어 걸쳐 본 뒤로 나 또한 행복하다.
아이와 함께 다시 느껴보는 나의 취향,
아이에게 고맙다.
내가 데려가 주지 못한 내 어린 시절의 놀이동산에
아이가 찾아와 준 기분이다.
Picture - Avril lavigne instagram